원서동의 빨래터에서

김홍도 <빨래 터>를 건너 박수근 <빨래 터>까지

by 글열음

창덕궁 담장을 따라 이어진 원서동 길을 걷는다. 높게 쌓은 돌담사이로 따사로운 가을빛이 스며든다. 담장을 따라 이어진 고즈넉한 그 길을 천천히 걸었다. 왕의 정원과 담을 둔, 낮고 오밀조밀한 집들이 바짝 다가앉아 있었다. 담 너머로 조선의 왕들이 거닐던 창덕궁 후원에는 나무 잎들이 바람에 흔들렸다.


지금 보이는 집들은 그 옛날부터 왕의 정원 옆에 민초들이 살았던 곳인지는 알 수는 없다. 현재는 이곳 주변의 집들은 왕의 정원가까이에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행운을 품고 있는 듯 보였다. 서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여기 이곳에서만,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원서동 빨래터>


걷다 보니, 뜻밖에 '빨래터'라는 표석이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그 물은 창덕궁의 정원, 후원에서 흘러나온 물줄기였다. 그 아래로 물길이 스며 나오듯 이어진 자리에 돌계단과 낮은 담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물이 흐르던 자리에 남은 흔적이 말없이 그 시절을 증언하고 있었다. 왕의 정원에서 흘러나온 물이 담을 넘어 백성들의 마을을 적셨다는 사실이 묘하게 와닿았다.


빨래터를 보며 옛 여인들은 가족들의 옷을 빨래터에서 세탁했다. 마을마다 흐르는 개천은 자연스레 빨래터가 되었고 그곳은 여인들의 일상 속 한 장면이었다.


순간 희미한 옛 생각이 떠오른다. 어릴 적 나는 시골에서 자랐다. 우리 집 근처에는 도랑이 있었다. 봄 여름 가을엔 그곳은 빨래터였지만 겨울이 되면 두껍게 덮인 얼음판으로 변했다. 겨울이 지나면 다시 달라졌다. 동네 이웃들이 모여 빨래를 했다. 그때는 빨래를 서답이라고 불렀다. 엄마는 가족들의 서답을 그 빨래터에서 씻었다.


맑은 물이 흐르고 그곳에는 빨래 씻기 적합한 납작한 돌이 깔려 있었다. 동내 아주머니들이 빨래 하는 모습이 떠 오른다. 기계적으로 되풀이되는 동작으로 방망이를 들고 위로 치켜들다 아래로 옷을 두드렸다. 이런 반복적 동작이 머리를 스칠 때 어디선가 방망이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모래 바닥까지 환히 보이던 물은 비누거품이 뿜어내는 흰 거품은 이내 희 뿌연 물감을 푼 듯했다.


지금은 세탁기가 세탁을 대신하는 시대지만 이런 모습은 먼저 살다 간 여인들의 모습이었다.


잠시 멈췄던 이곳 '빨래터'를 돌계단 따라 물이 흐르는 곳으로 내려갔다. 바로 여기, 옛 여인들이 치맛자락을 걷어 올리고 물가에 앉아 빨래를 했을 것이다. 돌 위에 옷감을 펼쳐두고 방망이로 두드리며, 물살에 비누 거품을 띄웠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 사이에서는 수다와 웃음이 피어났고, 옆에서 아이들이 물장구를 치며 놀았을 것이다. 마치 그 물에 햇살을 헹구듯이...


그 장면을 떠 올리다, 문득 김홍도의 <빨래터>와 박수근의 <빨래 터> 그림이 떠 올랐다.


김홍도 그림은, 햇살에 반짝이는 물가에서 여인들이 치맛자락을 걷어 올리고 허벅지까지 드러낸 채 빨래를 하는 장면, 한쪽에서는 아이를 돌보는 여인, 다른 쪽에서는 돌판 위에 빨랫감을 두드리는 손길이 있다. 그 옆에는 물속에 발을 담근 채 빨래를 비틀어 짜는 여인도 보인다. 그림 한편, 갓을 쓴 사내가 부채로 얼굴을 반쯤 가린 채 슬며시 그 모습을 엿보는 장면까지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그 속에는 조선의 일상이 고스란히 살아있다. 그림 속 장면과 원서동의 빨래터가 겹쳐 보였다. 조선시대 평범한 백성의 일상의 모습이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왠지 생동감과 익살이 같이 혼합해 있다.


또 다른 그림 박 수근 <빨랫터>는 근대 작품으로 전쟁이 끝난 직후 가장 어려운 시절에 남긴 그림이었다. 향토적인 서민 여인들의 삶을 그림으로 나타나있다. 자세히 보면 대부분 여인들이 허리를 굽힌자세로 빨래를 하는 장면이 보인다. 이때 손을 보면 빨래를 비비거나 두드리는 동작으로 보인다.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마치 빨래를 씻는 일에만 몰두해 있는 듯했다. 그들은 말없이 허리를 굽혀 손끝으로 물에 젖은 천을 비빈다. 그 동작들은 거칠고 느리게 보이지만 한결겉은 리듬을 지닌다. 굽은 허리 손의 움직은 반복적이다.


자세히 보면 그림 속에는 얼굴이 없다. 텅 빈 그 자리에 나는 어릴 적 기억 속 엄마의 얼굴 이웃 아주머니들의 얼굴을 하나씩 그려 넣어 본다. 문득 생각해 보니, 그때 빨래터의 엄마와 이웃아주머니들은 지금의 나보다 훨씬 젊었다. 그림을 바라보는 순간, 자연스레 엄마의 젊은 시절 얼굴이 떠 올랐다. 빨래터는 이렇게 세월을 거슬러 몇 겹의 기억을 희끗희끗하게 불러낸다.


작품 속 빨래터처럼 엄마의 세대는 힘든 시대 삶을 견디는 자세와 고요한 인내가 보였다.


빨래터는 조선시대이든 근대이든, 여인들의 '노동 현장'이었다. 시대에 따라 달라진 풍경 속에서도 그곳에는 언제나 삶을 지탱하는 손길이 있었다. 김홍도와 박수근 두 화가의 그림을 통해 서로 다른 시대의 숨결을 느끼며, 잊고 있었던 여인들의 일상을 엿보게 되었다.


원서동 빨래터, 아마 이곳에서도 여인들은 고된 일상 속에서도 수다를 나누며 웃었을 것이고, 아이들은 물가에서 장난을 쳤을 것이다. 물살에 떠 내려가는 비누거품 사이로 한 시대의 숨결이 흘렸을 것이다. 지금은 좁은 물길로, 옛사람들은 사라졌지만, 옛 여인들의 웃음소리 방망이 소리가 들리은 듯하였다.


이곳에서 만난 빨래터는 지금보다는 물길이 더 깊고 넓었을 법했다. 모든 것이 사라진 그 자리에 '빨래터'라는 이름만 고요하게 남아있었다. 하지만 담장 너머로 스미는 궁궐의 바람, 돌 위에 남은 자국이 오래된 시간을 말해준다.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왕의 정원에서 흘러나온 물이 오랜 세월을 돌아 사람들의 삶 속으로 스며들던 그 자리에서 시간의 두 물줄기가 만나고 있었다.







김홍도 <빨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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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B0%95%EC%88%98%EA%B7%BC.jpg?type=w1 박수근 <빨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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