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 투어
전날, 바르셀로나를 떠나 발렌시아로 이동했다. 4시간을 투어버스를 타고 발렌시아에 위치한 투숙 호텔에 도착했다. 제법 긴 시간이었다. 머물렀던 숙소 호텔은 지중해를 마주하고 있었다.
<새벽을 알리는 지중해 바다>
이른 새벽, 붉은빛이 창문을 두드리자 눈을 떴다. 붉게 타는 듯한 빛을 보는 순간 태양신에 이끌리듯 해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다는 아직 어둠을 덜 밀어낸 듯 잿빛으로 일렁거렸다. 이때 수평선 저 넘어 강렬한 태양이 올라오는 서막을 알리는 붉은빛 하늘은 황홀했다. 태양은 회색 어둠이 사라지기도 전에 이미 자신의 존재감을 강하게 나타내듯, 이내 주홍빛으로 물들였다. 순간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연발했다. 우리나라 강화도 석모도에서 지는 해의 아름다움을 본 적은 있지만 이곳에서 본 해 뜰 때의 장면은 또 다른 세계였다.
지중해를 마주한 발렌시아, 바다 일출은 잊을 수 없는 한 장면이었다. 아름다운 빛에 한 동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순간 문득 찬 기운이 스며들었다. 삼월 끝에 매달려있는 완연한 봄으로 가는 길목인데, 지금도 이른 아침엔 기온이 쌀쌀했다. 다행히 손에 들고 있던 얇은 패딩을 살짝 걸쳤다.
해변은 조용했다. 홀린듯한 경이로움을 마음에 가득 담고, 발걸음을 조용히 움직였다. 그때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모습이 보였고, 또 다른 사람은 이른 아침 운동을 하는 듯 천천히 달리고 있었다. 그들과 마주칠 땐 눈웃음으로 가볍게 인사를 나누며 호텔 조식 식당으로 향했다.
간단히 호텔 조식과 짙은 에스페로 커피로 따뜻한 온기를 채우고 오늘 목적지 그라나다로 이동했다. 그라나다 까지는 투어 버스로 약 5시간 30분 정도 걸린다는 안내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서울남부터미널에서 부산까지 소요시간이 약 5시간으로 보면 시간적으로 꽤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발렌시아 일출>
<그라나다, 알함브라 (Alhambra) 궁전, 무어인흔적>
무어인 궁전 알함브라궁전은 스페인 여행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곳이었다. 이곳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유럽에 위치해 있었지만 명칭부터 유럽의 궁전과는 다른 느낌이 와닿는다. 아랍인들이 건축한 궁전이었다. 유럽에서 현존하는 이슬람 건축물 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곳으로, 한 때는 이곳은 무어인들이 살았던 흔적의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북아프카에서 온 아랍계 무어인들은 713년에 이베리아반도에 발을 들인 뒤 이후 1492년 그라나다가 함락되기 전까지 약 779년 동안 스페인 남부 지방 중심으로 지배하며 오랜 통치 시대를 이어갔다. 한 때는 이베리아반도의 약 70%를 차지하기도 했으며, 그들의 최대 전성기는 코르도바 칼리프국 시기였다. 그리고 그라나다 왕국은 1238년부터 1492년까지 남아 있었던 마지막 무슬림정권이었다. 이처럼 이들은 꽤 오랜 기간 동안 이곳에서 자리 잡았던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라나다를 향해 가는 길>
지리적으로 남부에 속한 지역이라 그런지 기온은 바르셀로나 보다 비교적 따뜻했다. 투어 버스 도중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낯설었다. 바짝 마른 흰 석회석인 듯한 자갈과 작은 바위로 이루어진 산과 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은 물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땅 위로 나무와 작은 풀들이 듬성듬성 자리하고 있었다. 토양이 메말라 있어 뿌리내리기 어려운 환경이었고, 식물들은 수분 부족으로 말라 버린 듯했다. 순간 나는 이곳은 비가 잘 내리지 않는 지역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동 중 곳곳에 바싹 마른땅, 높은 산에 얹혀있던 회색 바위가 시야에 들어올 때마다, 바위들이 땅 아래로 흘러내릴 것 같은 불안감이 앞섰다. 내겐 여태 볼 수 없었던 지형들이었다. 지나는 동안 사람의 흔적을 느낄 수 없는 땅이 펼쳐졌다. 이런 곳을 지나 투어 버스가 이끄는 데로 목적지로 향하던 중, 주변 지역이 바뀌는 그때마다, 그곳이 어딘지 궁금했지만 알 수 없었다. 주변은 고요했고, 버석거리는 마른 흙은 부드러운 바람에도 금세 흩날릴 듯 한 풍경들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버스를 탄 일행들도 바깥풍경을 조용하게 응시하는 듯했다. 그저 버스만 소리 내어 달리고 있었다.
얼마를 달렸을까. 창밖은 점점 높은 산들이 시야로 다가왔다. 어느 지점에선가 우뚝한 산봉우리에서 중턱까지 온통 얼음으로 덮여 있었다 마치 거대한 흰 얼음덩어리가 산 위에 얹혀 있는 듯 신비로웠고 그 광경에는 거대한 힘을 느껴지는 위압감마저 들었다. 스페인 북부와 다르게 남부에 위치한 안달루시아지방에는 봄이 시작되어 비교적 따뜻한 날씨였지만, 큰 산에는 여전히 얼음이 버티고 있었다. 마침 산은, 햇빛에 반사된 두꺼운 얼음덩어리로 눈이 부실 정도로 반짝였다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그 산은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분위기를 지니고 있는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바로 얼음산(시에라 네바다 산맥)이라고 불러지는 산이었다.
차츰 그라나다가 가까워질 무렵 창밖 풍경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마르고 희뿌였던 산은 온 데 간데 없이 푸른 들판과 숲이 창밖으로 펼쳐졌다. 들판에는 주황빛 오렌지가 주렁주렁 열린 나무가 보였다. 겨울을 지났는데도 농장에는 많은 오렌지가 달려있었다. 그 풍경들이 나는 낯설었고 신기하게 다가왔다.
우거진 숲 사이엔 봄을 알리는 꽃들이 피어 있는 모습도 군데군데 보였다. 가까이에서 볼 수는 없었지만 자줏빛, 아이보리색, 핑크빛으로 수채화처럼 눈에 들어왔다. 오전이 지나자 날씨가 맑고 기온이 올라 따뜻해져 투어 하기엔 더없이 좋은 날이었다. 바르셀로나에서 발렌시아를 거쳐, 안달로시아 지방까지 이어지는 여정은, 지나는 지역마다 풍광이 다르고 그에 따라 신기하고 인상적이었다.
투어 버스는 긴 시간을 달려 드디어 알함브라 궁전 도착을 앞두고 있었다. 버스 창밖으로는 집시들이 사는 동굴형 주택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말로만 듣던 곳이었다. 그곳엔 그들이 오랜 세월 동안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온 역사가 깊은 곳이었다. 다양한 형태의 삶을 눈앞에서 보게 되었고, 그들의 춤, 플라멩코를 떠 올리게 했다. 동굴을 지나며, 그들 특유의 생활방식이 떠 올랐다. 강렬한 리듬과 감정 열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그들..... 훗날 알게 되었지만, 이 지역은 집시의 거주지인 동굴 시크로 몬테였다..
약 5시간 30분 이동 후 알함브라 궁전에 도착을 했다. 긴 시간을 이동한 것을 알 수 있다.
알함브라궁전
<알함브라 궁전>
알함브라 궁전은 그라나다 시내 동쪽 사비카언덕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언덕 위에 궁전을 세운 것은 당시는 외침이 많아 외적 침입을 방지하는데 유리한 지역이었다. 또 다른 뜻은, 높은 곳에 위치한 것은 통치자의 권위를 나타내는 목적도 있었는 듯해 보였다. 궁전은 사방에 울창한 나무들과 정원 숲으로 도심과 분리된 것처럼 느껴졌다. 순간 초록빛에 감싸인 붉은 건물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같이 동행했던 가이드분이 알함브궁전에 대한 안내를 했다.
알함브라 궁전에는 알카사바, 나스르 궁전, 카롤 5세 궁전, 헤네랄리페 정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처음 만나는 이슬람왕조 건물이었다. 중세 무어인들의 궁전이었으며, 붉은 흙벽돌로 세워져 있었다. 붉은벽은 낯설지 않고 친숙하게 다가 왔다. 순간 다른 문화를 마주한다는 호기심이 앞섰다.
알함브라궁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정의의 문 위에 새겨진 다섯 손가락 문양을 볼 수 있었다. 이 손가락 흔적은 신비롭게 보였다. 그것은 단순한 장식용이 아닌 깊은 종교적 문화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는 문양을 유심히 바라봤다. 이 문양은 '하므사' '파티마의 손'이라고도 한다. 다섯 손가락은 이슬람의 다섯 기둥을 상징을 하며 신도들에게 신에게 이르는 즉, 다섯 가지 실천 뜻하는 것으로 신앙고백. 기도. 자선. 단식. 성지순례의 뜻을 포함하고 있었다. 또 그 속에 담고 있는 상징성은 수백 년에 걸친 이슬람문화의 깊은 지혜와 정신이 깃들어 있었다. 처음에는 신기했지만 다섯 손가락의 의미를 알고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알함브라 궁전은 유럽 궁전들과는 달랐다. 유럽 왕궁은 흰 대리석으로 미끈하고 웅장한 건물들이다. 여기에 있는 궁전은 장밋빛 같이 붉고 낮은 궁전 건축물이 눈에 들어왔다. 흙벽돌과 낮은 건축물은 극히 동양적이었다. 알고 보니, 붉은 흙은 철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는 흙의 성질로 붉은 흙이라고 했다.
<벨라의 탑>
먼저 알카사바 벨라의 탑 또는 붉은 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다. 탑에 대한 가이드분의 해설이 있은 후 탑을 살펴보았다. 벨라의 탑은 13세기 나스르 왕조시대의 원형을 상당 부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벽돌과 석재로 구성된 방어용 건축양식은 중세 이슬람 건축의 전형적인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었다. 세월을 잘 이긴 탑이었다.
이 탑은 알함브라 궁전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한 때, 감시와 방어를 위한 군사의 요새였다. 탑 위를 오르는 길은, 제법 좁은 흙 계단을 구불구불 올라가야 했다. 탑 위에 오르자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전망대 탑 아래로 넓게 펼쳐진 그라나다 평야가 눈에 들어 왔다.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알바이신지구가 한눈에 들어왔고, 눈 앞의 도시는 오밀조밀한 붉은 집들로 들어서 있었다..
알바이신지구를 보며, 스페인 작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인상과 풍경>한 구절이 떠 올랐다. "하얀 집들이 줄지어 언덕 위를 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 독특한 선 리듬을 따라 상자처럼 언덕 위로 하나씩 포개어져"라는, 이곳 풍경을 글로 남겼다. 책에서 처럼, 탑 위에서 보이는 알바이신지구 집들이 줄지어 오른 집과, 상자처럼 하얀 집이 포개진 듯 펼쳐져 있었다.
궁전과 마주하고 있는 저곳에서 이곳을 바라보면 궁전은 어떤 모습일까. 는 생각을 잠시해 본다. 빽빽한 집들 사이에 높이 솟은 가톨릭 성당 건축물이 우뚝 서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파란 하늘엔 흰 구름이 제 멋대로 모양을 내었다가 흩어지곤 했다. 옛 무어인 병사가 여기서 방어를 했던 곳, 때론 침입자를 발견하기도 했을 것이고, 어쩌다 무어왕들이 탑 위에 올라 사방을 둘러봤을 법한 상상을 해 본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알바이신지구>
전망대 위치를 옮겨서 전경을 살폈다. 시야 너머로는 멀리 울창한 숲과 높은 산이 펼쳐져 있었다. 멀리 보이는 산들은 회색빛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푸름은 올리브나무인지 확신을 할 수는 없었지만, 푸른 숲이 남부 지방 안달루시아 지방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풍요로움이 다가왔다..
전망대에서 사방을 둘러보며 나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벨라 탑은 무어인들의 왕국의 안전과 연결됨을 알 수 있었다. 또 위치적으로는 알함브라궁전 서쪽 끝 가장 높은 지점에 위치해 있었고, 그라나다 시 전체와 주변 산악지형을 한눈에 살피수 있었다. 또 외부 침입 반란 군사 이동 등을 조기에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위치로 느껴졌다.
이렇게 사방이 탁 트인 전망대는 궁전을 지키는 요새로서 중요했음을 알 수 있었다..
벨라탑은 이처럼 단순한 건축물이 아닌 당시 왕국의 안보 군사 전략, 권력의 상징이 결합된 국가의 존속을 위한 아주 중요한 설치물이었던 것을 느꼈다. 그것은 국가의 영원성을 바라는 그들의 방식이었다.
탑 위에는 십자가와 종이 걸려 있었다. 무어인 왕궁의 탑 위에 십자가란, 그곳에서 늘 염원했던 그들의 영원성이 무너졌음을 알리는 것을 직감을 했다. 무어인들의 한숨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곳을 정복한 승리자였던 기독교 세력이 단 종 탑이었다. 폐배자인 그들은 떠났고, 지금도 매년 1월 2일 그라나다 시민들은 이 종을 울리며 레콩키스타 기념일을 축하한다고 한다. 오랜 세월 동안 폐배자와 승리자를 가르는 탑이었다.
마침 종탑 근체에는 네 개의 깃발이 바람에 펄럭였다. 스페인 국기, 안달루시아 깃발, 그라나다 시 깃발, 그리고 그중 푸른색 깃발은 언듯 보기에는 유럽연합의 깃발처럼 보였다. 이 네 개의 깃발이 말해 주듯, 이제 이슬람 왕조의 역사는 흔적으로만 머물러 있었다. 다시 흙벽 내부 계단을 내려오던 도중 청소년인 학생들과 같이 내려오게 되었다. 그들은 살짝 미소를 보이며 좁은 계단길에서 양보를 했다. 청소년들이 단체로 그곳에 온 듯했다.
나스르 궁전이 궁금했다. 실제 왕이 거주하던 나스르 왕조의 궁정이었다.
아름다운 궁정은 정교한 아라베스크 문양과 아름다운 정원으로 유명하다. 이곳은 메수아르궁, 코마레스궁, 사자의 궁이 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나스르 궁전엔 들어가지 못했다. 현지 사정에 따라 일부 궁전만 관광할 수 있었다.
pexel
아름답다던 나스르 궁전 안타깝게도 사진이나 책으로 보는 것으로 마음을 달래야 했다. 이곳 알함브라를 방문한 미국인 워싱턴 어빙은 궁전의 아름다움을 글로 남겼다.
"이 몽환적인 옛 궁전의 독특한 매력은 흐릿한 공상들을 피워 올리고(....) 환상의 옷을 입혀 주는 힘이다"
<알함브라 궁전의 이야기> 워싱턴 어빙
어빙의 글처럼 궁전 내부를 보는 순간, 누구나 자기 방식대로 몽환적인 상상의 날개를 펼 수 있는 곳으로 걸음을 멈출 것이다. 언 듯 <아라비아나이트> 이야기가 생각이 날 법하였다.
궁전 안 뒤편을 걷고 있던 중 초록 사이프러스는 하늘을 향해 뻗어 있고, 봄을 알리는 보라색 꽃이 나를 반겼다. 자세히 보니 보랏색 봉우리가 몽글몽글 달려있었다. 기다림에 멍이 든 듯한 짙은 보라색은 마치 무어인들의 아픔을 조용히 전하는 듯했다. 어느 날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린 옛 주인이 그리운 듯, 그들이 떠난 자리에 계절의 부름은 잘 따르고 있었다.
카롤 5세 궁전
<칼롤 5세 궁전>
알함브라 궁전 안에는 또 다른 궁전 건물을 볼 수 있었다. 순간 지금껏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몽상 속에 빠져있던 나를 끄집어냈다. 따로 떼어 놓은 듯한 건물이 세워져 있었다. '이런 건물이 왜 여기에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카롤 5세 궁전이었다. 카롤 5세가 만들었다는 건축물은 1527년 착공이 되었고, 르네상스 양식의 궁전이었다. 외관상으로 보면 각이 분명한 사각형으로 건축되었다. 내부는 원형으로 둥글게 지어져 있었고, 1층은 도리아식 기둥, 2층은 이오니아식이었다.
이 궁전은 무어인들이 떠난 궁정에 가톨릭 기독교 군주의 권위를 나타내려고 지어졌다. 한 때는 이곳에서 투우경기를 한 장소로 이용되기도 했다는 이곳은 제법 넓은 원형을 하고 있었다. 소들의 울음소리가 들릴법한 이곳은 현재는 알함브라 박물관 미술관 공연장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주변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이 궁전은 알함브라 궁전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자연과 잘 어우러져 부드럽고 유기적인 동양적 건축미를 지닌 알함브라 궁전과는 달리, 칼롤 5세 궁전은 각이 분명한 건물로 위압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누구나 이 건축물을 보면 아쉬움으로 와닿을 듯 한 건물이었다. 이곳에서도 패자와 승자의 위치가 이런 건가,라는 생각에 젖었다.
파르탈 궁전의 연못
파르탈중정의 연못 앞에 우뚝 솟은 포르티코 건물은 5개의 둥근 아치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직사각형으로 되어 있는 연못 속에 비친 물속에는 또 하나의 궁전이 있는 듯한 이곳은 '귀부인의 탑'이라고 한다. 물에 비친 궁전은 실제 궁정과 물속에서 반사 거울처럼 건물이 하나의 일체감을 주었다. 검은 기와가 촘촘하게 얹혀 있었고 자세히 보면 다섯 개의 아치 벽면에 새겨진 오밀조밀한 문양이 이채로웠다. 거기에 더해 가느다란 기둥은 특이했다. 무어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건물은 동양적인 단아하고 기품 있는 여성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건축물은 자연적 조화로움으로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 듯했다. 특히 물을 통한 신앙적 상징성은 그들이 추구하는 의미를 더 깊게 와닿았다. 그곳에서 한참을 서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자동적으로 '아름답다'는 말을 되뇌게 했다.
정원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이프러스 나무로 잘 꾸며진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왕족의 여름 별궁이라고 불렸다.
사이프러스는 천국을 잇는 상징적 나무로 여겨지며, 신성한 의미를 지닌 존재로 잘 가꾸어져 있었다.
큰 키에 질서 있게 늘어선 나무가 눈길을 끌었다. 조용히 서 있는 나무를 보며 나는 아름다움과 신비감에 빠져들었다. 높이 하늘을 보고 서 있는 나무를 보는 순간 "신을 먼저 맞이하려고 저렇게 높이 자란 걸까?""신의 소리는 들었을까?"라는 엉뚱한 생각에 잠겼다.
주변을 둘러보던 중 수선화가 막 피어나는 곳이 있었다. 노란색 하얀색 수선화가 초록사이에 수줍은 듯 얼굴을 내밀었다. 이때 핀 수선화는 주변을 더욱 생기를 불어넣었고, 정원 한편에 무리 지어 피어 있는 모습이 새로웠다. 누군가가 심지 않았는데도 들판에 피어난 듯한 그 모습은 청초했다. 따뜻한 온기를 느끼고 그들의 계절임을 알고 피어나는 수선화가 정원을 돋보이게 했다.
몇 걸음을 옮기는 순간 노란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나무가 앞길을 막아섰다. 자세히 보니 오렌지 나무였다.
과일이 풍성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오렌지는 어디든 볼 수 있었다.
장소를 옮겨, 아세키아 안뜰에 있던 헤네랄리페 정원으로 갔다. 여름, 한 더위를 식히기 위해 만든 별궁이었다. 멀리서 보이던 얼음산에서 눈이 녹아 마침내 여기까지 흘러 들어오는 물이라고 했다. 이곳은 유명한 프란시스코 타레가 의 기타곡 <알함브라의 추억>이 떠 오르는 궁전의 분수대가 있는 곳이었다. 지금도 길게 뻗은 수로와 양쪽 분수에서 줄지어 길게 솟아오르는 물방울은 춤을 추었다. 물의 요정이 수정구슬로 변한 듯, 솟아오르다 떨어지는 모습은 나의 시선을 끌었다. 아름다웠다. 이때 떨어지는 물소리는 정원을 가득 채웠다.
떨어지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마치 기타 연주가 들리는 듯했다. 타래가는 바로 이런 공간의 잔잔하고 끊이지 않은 물소리에 영감을 받은 것일까. 기타의 트레몰로 연주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애잔한 감정을 흔드는 선율이 영혼을 흔들었다. 분수의 물소리와 어우러진 음률은 순간, 무어인들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한 환청에 사로잡혔다.
작곡 당시 달 밤에 영감을 얻었다는 타래가의 연주곡을 생각하며, 정말 달밤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상만 해도 굉장할 것 같은 느낌이 와 닿는다. 분수대 수로를 따라 흐르는 물결이 일렁이며 내는 소리,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바람이 일렁이는 소리, 자연의 소리는 사람의 언어가 필요하지 않은 소리의 세계, 어쩌면 이런 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움 인지도 모른다. 소리가 음악이 되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달빛이 환한 밤엔 이곳에서 달빛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언 듯 나는 여태 살아오는 동안 자연의 소리를 조용히 귀 기울인 시간이 얼마나 되었을까?라는 생각에 잠겼다. 평소 산책길에서 마주했던 물 흐르는 소리를... 역시 예술인들의 자연을 관조하는 그 깊은 시선은 내가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세계라는 생각에, 아름다운 광경 앞에서 한참이나 발걸음을 멈추고 서 있었다.
알함브라 궁전을 돌아보며 궁전 주변에 물을 채운 연못과 정원에 있던 수로가 눈에 들어왔다. 이처럼 무어인들에게 물이 특별했던 이유는 아마도 그들이 건너온 메마른 땅의 기억과 연관이 있었지 않았냐는 개인적 생각을 해 봤다. 생존을 경험한 이들에게 물은 곧 생명이자 신의 은총이었을 것이다. 안달루시아 정원과 수로는 물이 그들에게 얼마나 특별한 의미를 지녔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투어를 마치고 되돌아서 정원을 나오는데, 숲에서 새소리가 들렸다.. 맑고 아름다운 색을 가진 새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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