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여도 괜찮을까?
50 이 넘은 내가 100세까지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운동은 뭐가 있을까?
나는 57세에 은퇴를 했다. 무작정 은퇴를 하고 보니 50 이 넘게 살아왔는데도 사람들과 만나 즐길 취미 하나 제대로 없었다. 그동안 너무 치열하게 살다 보니 은퇴 자금은 그런대로 모아 놓았지만 새로운 친구를 사귈 시간이 없어서 일로 만나던 사람들 말고는 가깝게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가 없다. 미국에서 30년을 생활하다 나는 10년에 한 번, 5 년에 한 번 한국에 왔다가도 가족들만 보고 가는 게 전부였다. 친구들에게 연락을 안 한건 선천적인 나의 게으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한국에 들어와 옛 친구들을 연락해서 만나 보니 다들 골프재미에 빠져서 골프 치는 재미로 산다는 이야기 밖에 하지 않는다. 미국에서 여러 가지로 바쁘게 살던 나는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야 하는 골프를 엄두도 못 냈다. 솔직히 하루 종일 사람들이랑 어울려 지낼 체력하고 시간이 둘 다 없었다. 그런데 한국에 와보니 만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왜 골프를 안치냐? 미국에서 아주 쉽게 싸게 할 수 있는 운동인데..'라고 했다. 나는 골프를 몇 번 해 봤지만.. 계속 골프는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친구도 많이 없는 내가 항상 4명을 맞추는 것도 힘들다는 등 변명을 늘어놓았었다. 물론 미국에서는 혼자나 둘이 서도 칠 수 있다. 하지만 난 요가 스타일, 필라테스 스타일이다. 얼마 전에 시작한 수영도 있다. 내 스케줄에 맞추어 천천히 하고 혼자 조용하게 하는 운동들. 그렇다고 열심히 했거나 잘한다는 게 아니다. 그냥 생각나면 하다가 말다가 그랬다. 많은 사람들의 권유에고 불구하고 골프는 여전히 탐탁하지 않았다. 하지만 남들이 다 하라 하니 하는 둥 마는 둥 골프 레슨을 한국에서 다시 받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 동문회가 주최하는 골프대회가 주어졌고, 대학 동문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에 우연하게 등록을 하면서 열심히 해 보기로 했다. 이때생각을 해 보니까, 골프는 혼자서도 할 수 있고, 아주 많은 사람들과도 어울리며 할 수 있는 운동이었다. 혼자 사는 내가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무엇을 할 기회가 많이 생길 수 있는 운동이었다. 모르는 사람과도 같이 할 수 있는 운동이니까. 그래서인지 갑자기 나한테 골프는 꼭 필요한 운동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골프를 시작만 하면 언제든지 아주 잘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30년 전에 미국에서 처음으로 골프 했을 때 레슨 없이도 골프 폼도 좋고 잘 친다 그런 소리를 너무 많이 들어서 나는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골프를 프로처럼 금방 잘할 줄 알았다. 그런데 30년 후에 57세에 시작한 골프가 나의 자존심을 땅바닥에 내려앉게 만드는 것이 될 줄이야.. 사실 요즘은 요가를 하면서도 느꼈던 점이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거.. 요가의 다운독 포즈를 하면, 욕이 나올 정도로 힘이 들고 화까지 났다. 미국에서 하는 요가나 한국에서 하는 요가나 얼마나 다운독 포즈를 많이 시키는지… 화가 치민다. 그래도 연륜으로 쌓은 지긋한 이성으로 화난 모습을 감추고 욕이 터져 나올 것 같은 입을 꽉 다물고 죽자고 따라 해 본다. 미국에서 시작한 요가도 딱 50이 넘어 시작했으니.. 내 몸은 50년 동안 굳을 대로 굳어 있었나 보다. 그전에는 집에서 비디오를 보며 요가도 꽤 잘했다. 하지만 40 이 넘으면서 시작했던 사업은 더더욱 바빠지고 그나마 집에서 하던 요가도 전혀 하지 않고 시간만 나면 어딘가에 드러누워야만 했다. 그렇게 시간만 나면 누워 지내던 내 체력은 알게 모르게 바닥을 치고 있었나 보다.
그런 내가 시작한 골프는 ‘내가 이렇게 운동에 소질이 없었나?’라고 의기소침해지고 나날이 늘어 가는 실력이 아니라 오히려 나날이 더 줄어드는 골프실력과 스태미나로 나는 점점 더 우울해지고 ‘이렇게 골골 한 몸으로 100 세 시대에 어떻게 혼자 잘 살 수 있을까’라는 고민까지 하게 됐다. 너무 많이 한 연습 탓으로 몸은 점점 더 뻣뻣해져 가고 있었고 온몸이 쑤시고 아프고 굳어서 몸이 수렁으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 덕에 내 마음은 자신에 대한 실망과 앞으로의 걱정으로 더욱더 우울해져 갔다.
그래도 늘 그렇게 살아왔던 것처럼 ‘너 죽기 아니면 나 죽기로의 마음으로 지금은 골프채와 싸우고 있다. 그렇게 골프는 힘으로 쳐서는 안 된다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지만 … 한약도 지어먹고, 마사지도 받으면서 언젠가 이때가 지나 “아.. 나도 그런 때가 있었어. 그래도 열심히 하면 이렇게 잘 칠 수 있어”라고 나보다 늦게 골프를 시작 한 친구에게 말할 수 있는 날을 꿈꾸며.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힘들었던 때가 한두 번 있었냐고, 그럴 때마다 잘 버텨 오지 않았냐고, 그런 것들에 비하면 골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떨어진 자존심을 위로해 본다. 그러고 보니 내 고생은 국민학교 6 학년 때부터 시작했다. 버스로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으로 우리 집은 이사를 했고, 일 년 남은 초등학교를 같은 학교에서 졸업하기로 하고 한 시간 넘게 매일 버스를 타고 학교를 다니기로 했다. '버스 지옥이라는 말을 아는가?' 그때는 버스에 사람이 너무도 많던 시절이었다 특히 등하굣길 버스. 그나마 나는 거의 종점에서 종점으로 등 등교를 하면서 앉아서 다닐 수는 있었다. 그렇지만 알게 모르게 나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고, 나중에는 자꾸 책가방도 버스에 두고 내리는 건망증도 심해지기 시작했고, 얼굴은 점점 여위어만 갔다. 결국 부모님은 학교를 두 달 만에 옮겨 주셨다. 그리고 중학교 때는 산 꼭대기에 있는 학교로 종아리가 터질 만큼 걸어 다닌 기억, 하루는 학교가 이사를 가는데 나의 책상과 의자를 들고 내가 직접 걸어서 옮겨야만 했을 때 힘들었던 기억, 지금 세대 같았으면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혹사시켰다고 학교를 상대로 고소할 일이었다. 참고로 그래서 학교 이름은 말하지 않겠다. 정말 힘들어 죽는 줄 알았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이해할 고등학교 수험 시절.. 잠과의 싸움, 밤늦게까지 하던 자율 학습, 체력장시험.. 대학교 사 학년 때 약사 면허시험 준비하면서 새벽 4시에 일어나 그 어두운 학교 계단을 올라가서 도서관 자리를 잡고 마지막에는 그 겨울에 덜덜 떨면서 다녔던 기억이 난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눈이 빠질 정도로 아팠던 기억, 나날이 초췌해지고 신경은 쇠약해지고 오로지 시험 하나를 패스해야 되겠다는 마음으로 지낸 시간들… 그리고 미국 약사 면허 시험을 공부할 때도 둘째를 임신한 몸으로 책상에 앉으면 책상과 내 사이가 너무 멀어 어정쩡한 자세로 앉아서 공부하다가 그 후유증으로 등이 아파 오랫동안 고생했고, 그나마도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시험을 다 못 끝내서 아이가 태어 나자 마자 이 주만에 아이를 무릎에 안고 책상에 앉아 마지막으로 남은 약사법 시험공부를 했어야만 했다.
그때 나의 얼굴사진을 보면 정말 엉망이었다. 얼굴도 붓고, 몸도 붓고, 아이 때문에 잠을 못 자서 눈도 붓고 하지만 미국 약사 면허를 마침내 땄다고 좋아서 환하게 웃으며 찍은 사진. 그것도 잠시, 미국 약국 안에는 의자가 없다. 약국에서 하루 종일 서서 14 시간 또는 12시간씩 일했다. 처음에는 너무나 힘들었지만 그것도 곧 몇 개월 지나서 적응이 되었다. 그래도 그때는 30대였으니까. 30대를 그렇게 보내고 나는 40 이 넘어 헬스케어 사업을 시작했다. 50도 넘고 사업은 커지고 일은 점점 더 많아지고 그러던 어느 날 안 그래도 더 직원을 뽑을 판에 일을 제일 잘하는 직원이 그만둔다고 했다. 그러고는 한쪽 귀가 먹먹했다. 나중에 깨달았다. 그 한쪽 귀가 안 들린다는 것을. 병원에 가서 별의별 검사를 다하고 약을 처방받고 이것저것 하고 나서 소리는 돌아왔지만 마음이 뻥하고 뚫린 것 같았다. '이러다가 나는 죽게 될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은 더 침침해지고 운동 부족으로 집에만 오면 드러누워서 지내는 내가 정상이 아닌 걸 느끼기 시작했고. 남들은 주말에는 일을 안 한다고 놀러 다니는데 나는 주말에는 누워 있고 쉬어야 겨우겨우 그다음 주의 일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러니 언제 내가 골프 할 시간 있고 힘이 있었겠나?
그렇게 점점 커져 가는 사업과 점점 많아지는 직원들과 점점 많아지는 손님들을 감당하기 힘들어하는 그때쯤, 정말 우연하게 받은 전화로 내 사업을 정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잘되는 사업을 정리한다는데 많은 고민을 했지만., 지금까지 한일들 중에 아주 잘한 결정 중의 하나였다. 그때 내 나이 57, 젊다면 젊다고 할 나이에 나의 호르몬은 거의 다 바닥났고 어 떤 날은 힘이 없어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어떤 날은 또 하루 종일 누워 있고 또 어떤 날은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런 내가 한국으로 와서 정착하기까지의 결심과 노력에 비하면 골프쯤이야, 그 보상으로 잘 쳐야 한다는 마음은 이해한다, 모든 일들이 다 힘든 뒤에 결실이 맺듯이 골프쯤이야, 한국 와서 처음으로 세운 목표, 골프 잘 치는 건강한 나. 나는 또 잘해 낼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 지치는 마음이, 조급함과, 나이 탓에서 오는 부족이라는 걸 아는 나는 조바심을 버리고 나머지의 내 인생을 혼자 잘 즐기기로 한 마음처럼 그냥 하루하루 골프를 연습하면서 나중에 ‘이쯤이야’ 하는 날을 꿈꾸며 오늘도 여유롭게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골프쯤이야...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