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성이라는 새로운 희생량을 선택한 광인의 기호
2장 - ‘미쳤다’의 기호
‘광인’, 혹은 ‘미친 사람’이란 무엇인가?
‘정신병’ 이란 무엇인가?
흔히 우리가 쓰는 ‘미쳤다, 돌았다’라는 단어는 무슨 의미인가?
정신병, 정신병자, 정병, 미쳤다, 머리가 돌았다, 맛이 갔다, 정신이 나갔다... 등등.
실제 일반인들이 쓰는 이런 표현들과 이 표현에 투사된 성분들은, 실제 정신건강 분야의 전문가들이 임상에서 경험하는 증상들과는 거의 관련이 없다. ‘싸이코(psycho)’라는 단어를 연상시키는, 의학 용어로서의 정신병(psychosis) 혹은 정신병적(psychotic)이라는 단어는, 정신과 의사에게는 ‘환각’과 ‘망상’을 의미한다.
즉 전문가들은, 존재하지 않는 자극을 감지하고(환청이나 환시), 현실과 다른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는(피해망상이나 과대망상) 사람을 정신병이라고 정의한다.
고대부터 이어져온 광(狂,maniac)이라는 문자와 그 의미는, 고대 어느 조그만 마을에 살던 젊은 남자가, 어느날 갑자기 목소리가 크고 빠르게 지껄이거나, 침묵하며, 눈 앞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갑자기 달려가거나 멈추고, 의미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리거나, 허우적거리는 모습이다. 이웃이나 가족들이 다가가서 왜 그러냐고 물어도 대화가 되지 않고 횡설수설하며, 보이지 않는 어께 너머의 것을 보거나 잡으려하면서, 그런 모습을 말리려고 하면 오히려 무서워하거나 화를 내는 장면일 것이다.
이렇게 평소에 멀쩡했던 사람이 갑자기 이런 모습을 보이는 증상을, 정신병리 용어로 '조증적 흥분(manic excitement)'이라고 한다. 그렇게 흥분해있다가 순식간에, 아무런 반응도 없이 움직이지 않는 상태로 전환되기도 하는데, 이런 상황은 긴장성 혼미(catatonic stupor) 상태라고 한다.
광(狂)은 영어로도 maniac 이라는 단어로 상호 번역되는데, mania 가 바로 지금도 쓰이고 있는 조증(mania)의 의학 용어이다. 과거 중세시대까지의 사람들이 보기에, 얼마전까지 멀쩡했던 사람이 갑자기 저런 모습을 보이는 경우는 대부분 조울병이었을 것이다. 조현병에서도 발작적으로 흥분하며 이상 행동을 보일 수 있지만, 조울병에 비하면 훨씬 드물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전혀 치료 받지 않은 조현병은 급속도로 진행하여 결국은 적절한 거동이나 언어 표현 자체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의 생각과 달리 조현병은, 주로 20살 전후로 발병하여, 계속 진행하면서 환각이나 망상 외에도 점차 전반적인 인지기능의 저하를 유발시키는 신경퇴행성질환이다. 그래서 조현병은, 정신분열(schizophrenia)이라는 용어가 확립되기 이전, 19세기까지는 조발성 치매(dementia praecox)라고 불렀다. 조현병은 적절한 약물 치료 없이 방치하게 되면, 여러차례의 편집증이나 환각에 시달리다가 결국은 증상이 악화되어, 파과증(hebephrenia)라는 자아의 분열, 즉 중증의 치매 노인처럼 대화하거나 외부현실을 지각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다. 이 수준에 이르면, 언어 표현이나 식생활, 수면 자체가 어려워지니, 고대에는 만성 조현병 환자가 광적인 흥분이나 공격성을 보일 여유가 없었으며, 결국은 기본적인 생활 자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영양실조로 사망했을 것이다.
그리고 광(狂) 외에, 고대인들이 자주 확인할 수 있었던 정신의학적 질환은 섬망(譫妄, delirium)과 간질(癎疾, epilepsy) 이었다.
고대에는 항생제가 없고 영양상태가 불량했기 때문에, 환자들은 모든 종류의 전염성 질환에 취약했다.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의해, 각종 사소한 신체 말단의 감염으로 시작해서도, 전신적인 패혈증이나 뇌수막염으로 악화되는 경우가 흔했다. 그렇다고 열을 낮춰줄 해열제나, 탈수를 막아줄 수액요법도 없었으니, 그로 인한 섬망이 무척 흔했을 것이다. 고열에 시달리면서, 자신이 어디에 누워있는지 모르게 되고, 헛것을 보면서 팔을 허우적거리고 소리를 지르고 식은땀을 흘리는 것이 바로 섬(譫)인데, 이 역시 과거의 사람들은 마음이나 영혼의 문제로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간질은, 선천적인 뇌의 손상이나 후천적 감염증의 후유증으로 인한 전신 근육의 경련장애인데, 부분성 경련 장애와 달리 전신적인 근간대성 발작은, 그 증상을 처음 보는 사람을 다소 무섭게 할 수 있다. 간질은, 굳이 '질(疾)'이라는 어미를 붙였을 만큼, (정신병에 대한 편견 만큼이나) 좋지 않은 오해와 낙인이 찍혔었고, 지난 세기까지 곧잘 공포 영화에서 남용된 전력이 있는 질환이다.
보다시피 이 세가지, 광증과 섬망과 경련성 질환 모두, 현대의 정신병, 즉 환청이나 피해 망상을 주로 동반하는 조현병과는 다른 병리의 질환들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이러한 정신병에 대한 의학적 개념들과, 맨 처음에 나열했던 혐오스러운 욕설들을 전혀 구분할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제 정신과 환자들을 접해볼 기회가 없고, 실제 그들의 모습에 대한 윤곽조차 그리지 못한다. 그리고 자기들 나름 정신병자 집단을 창조하여 자신들이 갖고 있는 괴이하고 무서운 이미지, 즉 광인의 기호를 투사한다.
'미쳤다. 돌았다. 제 정신이 아니다'라는 말들은, 보통 사람들이 심한 분노에 사로잡혀 누군가를 야단치거나 비난할 때 쓰는 말이다.
미성년인 딸이 덜컥 임신을 했는데 이 애를 낳아서 기르겠다고 할 때,
중년의 나이에 갑자기 직장을 그만두고 2~3년의 세계 일주를 하겠다고 할때,
김대리가 갑자기 사장님이나 팀장님에게 대들 때,
불륜을 저지른 후에 들통이 나자 오히려 자녀를 버리고 집을 나갈 때,
전 재산을 갑자기 털어서 코인이나 주식에 투자했을 때 등등.
심지어, 일진 불량배들이 나를 협박하며 돈 내놓으라고 하는데, 어느날 갑자기 내가 거절한다면 그때도 ‘너 미쳤냐?’라고 할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관에 심하게 위반되는 타인의 행동을 볼 때 그렇게 욕한다. 그의 가치관이란, 바로 그 사회에 종속된 인간이라면 마땅히 그래야한다는 믿음, 즉 관습과 규칙(rule)이다.
내가 오래 전 정신병원에서 당직 근무를 했던 어느날 밤, '갑자기 분가해서 남자친구와 동거하겠다'는 20대 초반 여성을 온 가족이 데리고 와서, 입원시키고 치료해달라는 요구를 한적이 있다. 물론 말도 안되는 상황이라, 상담하여 그녀가 '정신의학적으로' 정상임을 확인하고 돌려보냈지만, 그때 흥분하였던 그 아버지인지 삼촌인지 하던 남자의 말이 아직 기억난다.
‘얘가 지금 제 정신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왜 치료를 안 해줍니까? ’
즉, ‘너 미쳤냐? 제 정신이냐?’ 라는 비판은, ‘너는 내가 엄수하고 있는 규칙을 왜 지키지 않느냐?’ 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러한 ‘도덕적 비판’과 ‘정신과 질환’의 구분이 극단적으로 안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임상에서 정신과 환자들을 보면, '정신병환자, 정신병적인 사람들, psychosis, psychotic, 정신분열(schizophrenia)'이라는 그들은, 환청과 망상을 포함하여, 인지기능과 지남력이 손상된 사람들이다. 일반인들이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그래도 묘사해보자면, 그들은 어눌하고 엉뚱한, ’노인성 치매’의 이미지에 더 가깝다. 그리고 정신과 의사들이 대부분 동의하는 사실인데, 임상적으로 정신과 의사가 가장 대하기 편한 환자군 중 하나가 바로 조현병 환자들이다.
소쉬르는 언어가 사람의 생각을 규정한다고 했다. 비언어적인 개념(기의)이나 이미지에, 우연히 붙은 발음과 소리(기표)가 단어(기호)를 만든다. 그리고 사람의 사고는, 그 기호로 인한 편견과 체계를 극복하기 어렵다. 즉 안타깝지만, 지금 정신과의사로서의 경험을 갖고 글을 쓰는 나와, 일반인 독자인 당신과는 정신병의 기호에 대해, 절대 소통할 수 없는 간격이 있다.
우리가 집단에 소속되어 억눌리고, 규칙에 종속되고 억압되어 있는 한, 저항하고 규칙을 어기는 자에 대한 분노가 무의식에 자리잡으며, 이러한 집단적 무의식은 항상 그 투사의 희생양을 찾는다. 그래서 현실적인 우리 정신과 환자들을 참되게 규정할 수 있는 기호 자체가, 언어학적으로는 없다. 만들어 놓아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과거 '정신분열병'이라는 단어가 갖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의사회에서 주도하여 조현병이라는 용어로 바꾸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조현병 환자'의 이미지도 딱히 긍정적이지 않다. 일반인들에게 '조현병 환자'는 아직도 '잔인하고 예측할 수 없는 무서운 자'라는 이미지다.
미국에서도 psychopath(psycho+path : 정신+병)라는 용어는 연쇄살인범을 말한다. 언젠가부터 미국인들이 psycho 라는 단어를 쓰기를 자제하고 insane, crazy, mad 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지만, 역시 모두 혐오적인 용도로 변질되었다. 20세기 초에는 정신박약을 뜻했던 단어들, idiot, moron 모두 지금은 욕설이 되었고, 미국정신지체학회는 20세기 내내 20~30년 주기로 협회명을 바꾸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사람들은 정신과 환자들을 오해하고 있다. 그 착각은 단순한 사회적 편견이 아니라, 끊임없이 능동적인 시대적 기능으로 보인다. 지역 사회가 아무리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편견을 계몽해도, 광인에 대한 무의식의 이미지들은 또 다른 기호의 모습으로 태어나서, 여전히 그들에게 투사된다. 사람들은 비이성의 광기, 죄책감과 수치심을 우리 정신과 환자들에게 투사하고 있다. 내과 환자, 이비인후과 환자, 피부과 환자...뭐 이런 종류의 집단적 이미지는 없지 않은가?
그렇게 항상 사람들은 정신질환자를 오해한다. '미쳤다'라는 기호는 우리 평범한 이들의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미친 사람들이 우리 안 보이는 곳에 따로 모여 있다고 상상하고 싶어 한다. 정신이 일반인과는 다른, 유해한 특정 집단이 있다는 상상. 그리고 그 환자군에게 집단적으로 투사되는 이미지는, 부도덕하고 위험한 악당들의 이미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