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퇴사 초년생입니다
내 판은 내가 짠다더니 얼씨구
죽을 때 죽더라도 나로 좀 살자
출근을 시작한 지 두 달을 채워갈 때쯤 되어서 드디어 일에 적응했다. 아니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래봤자 사무실의 공기와 온도를 파악했다는 것일 뿐이다. 어깨를 무겁게 하고 숨쉬기 답답한 사무실의 기운을 말이다.
무엇보다 나는 여전히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신령의 한마디 한마디는 언제나 묵직한 내공이 느껴지는 장풍이어서 늘 나를 초긴장 상태로 만들었고, 언제 갑자기 채워질지 모르는 텅 빈 하루 일과표는 나를 무한대기 상태로 만들었다.
애당초 나의 선언은 너무나 헛된 것이었나. 무림을 떠나기로 작정했을 때 나의 결심은 이랬다.
‘내 판은 내가 짠다. 질질 끌려가는 삶을 더는 살지 않겠노라.’
하루하루 목숨 걸고 싸워야 하는 무림에서는 내 방식대로의 삶이 어려우니 재야로 나왔던 것이었다.
그래놓고 나오자마자 선택한 이 사무실에서 이리저리 휘둘리니 내가 너무도 한심했다. 재야에서도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는 걸 왜 몰랐을까. 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나. 은퇴해도 그 삶에서는 또 초년생이라는 걸.
그래도 최선을 다해 실수를 줄여갔다. 그것이 내 자존감을 찾을 수 있는 길이었다. 이 사무실 누구도 내 존재감에 관심이 없다 하더라도 나는 내 자존감을 지켜야 하니까.
반백(半百)이 내일모레이건만 이 나이가 되도록 쭈그러진 존재감으로 있어야 한다는 건 애석하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더니,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
그런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했다. 집에서도, 친구들에게도 웃으며 이야기했다. 그냥 우스갯소리처럼 말했다.
“완전 장풍 쏘는 사무실이야!”
힘든 내색은 해도 내 무너진 자존심까지 들키고 싶진 않았다. 그 덕에 사무실에서도 사무실밖에서도 나는 온 힘을 다해 나를 지켜야 했다.
그러다 보니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하루를 마칠 때면 몸이 부서질 듯했다. 무너지려는 마음을 부여잡다가 결국에는 몸이 무너지고 말았다.
업무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서다가 어이없이 몸이 휘청하며 발목을 다쳤다. 발목이 나을 즈음에는 퇴근길에 혼자 나자빠지며 양 무릎을 깨먹었다. 움직이는 일을 줄이고 몸을 돌보는데도 눈에는 다래끼가 났다.
이 정도로 약한 인간이었다니 새삼 내가 한심해 헛웃음이 났다. 그래도 별수가 있나. 재야의 미생은 꾸역꾸역 사무실로 출근했다.
서로에게 워낙 관심 없는 사무실이다 보니 발목에 보호대를 하고 다닌 지 2주일쯤 지나서야 누군가 내가 발목에 두른 보호대를 발견했고 하나둘 내게 물었다. 옷에 가려 발목 깁스쯤은 잘 안 보일 수 있으니 그렇다 치지만, 진심 서로에게 관심이 없구나 다시 한번 확인사살을 해주는 말들 뿐이었다.
“다쳤나봐요.”
“축구하세요? 안그래도 요즘 ‘골때녀’가 인기던데요.”
“보호대를 하면 골프할 때 중심이 안 흔들려서 좋다던데 나중에 한번 해보세요.”
몸이 상하고 나니 마음을 부여잡을 힘도 없었다. 게다가 이런 말까지 듣고 보니 허탈한 마음이 하늘을 찔렀다. 질질 끌려가는 삶은 싫다며 재야의 미생이 된 나는 그날 퇴근길에 불편한 발을 질질 끌며 다짐을 했다.
‘뭐가 그리 부족하다고 찌그러져 있었을까. 앞으로 신령의 장풍은 그냥 맞고 말지. 죽을 때 죽더라도 그냥 나로 좀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