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은 때로는 마음을 설레게 하고 희망을 안겨주지만, 때로는 아픔과 상실감을
안겨줄 수도 있다. 그리고 가끔씩 우리에게 다가오는 첫사랑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
하고 불발로 끝나기도 한다.
처음부터 예감했던 것일까? 아니면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을까? 어떤 경우든 첫사
랑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그 순간은 정말로 힘들고 슬플 것이다. 우리는 많은 기
대와 희망을 안고 시작한 사랑이 실패하였다는 사실에 좌절감과 실망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첫사랑이 불발로 끝난다 해서 모든 것이 망가진 것은 아니다. 블발된 첫사
랑에서 배울 수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인생에선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내 첫사랑은 의대생이었다. 그 남자는 광주에 있었고, 나는 천안에서 사회인으로
살고 있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기에 가장으로 살아야 했던 내게 연애는 사치
였다. 우리의 관계는 조금 특별했다. 지역으로나 신분으로나 처응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다
광주 가로수길에는 아름다운 마로니에 나무가 힌 줄로 늘어서 있었다. 학생들은 갈
곳이 많지 않아서 주로 이 길을 걸으며 데이트를 즐겼다. 그러나 세상은 참 넓고
우리의 일상은 바쁘게 돌아갔다. 천안과 광주 사이의 거리와 시간 차이, 바쁜 일상
속에서 자주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점점 멀어져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서서히 우리 사이의 연결고리가 약해져갔다. 아
니 처음부터 연결고리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자주 만나지 못하다 보니 결국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마치 눈에서 멀어지
면 마음도 멀어진다'라는 말처럼 우리 사이의 연결은 점차 사라져갔다. 하지만 아
직도 광주 가로수길에 있는 마로니에 나무를 보면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의 기억
들이 생생하게 다시금 떠오른다. 그 언제나 함께 걷던 길 위에서 풀덩어리 같은 웃
음과 대화, 서로를 지켜보며 흥미롭게 이야기하는 순간들. 모든 게 아직도 잠시 멈
춘 듯한 상상 속에서 살아 있다고 해야 할까?
물론 지금은 얼굴조차 희미하다. 기억조차 가물거린다. 다만 매번 마로니에 나무를
보면 그렇게 추억으로 돌아가곤 한다. 그런 날은 아직도 주춤거리며 서성거리게 된
다. 아쉬움 때문이 아니라 그저 흘러가버린 가엾은 내 청춘에 대해 머물거리게 된
다. 마로니에 나무는 아스라이 사라져갔던 추억들을 다시금 소환한다. 사랑과 함께
장시 스쳐지나 인연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마로니에 나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