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미국 대통령 선거의 해이다. 공화당 후보 선출 과정부터 시끄럽다. 선거 절차가 복잡하고 남의 나라 일이니 신경 쓰고 싶지 않지만, 강 건너 불구경만은 아니다. 미국 대통령은 세계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어서 경제는 우리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준다. 신고전주의 경제학의 대가 알프레드 마셜(Alfred Marshall; 1842~1924)은 “경제학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일상생활을 연구하는 사회과학”이라고 간파하였으니, 정치판의 변화는 경제의 중대한 변수임에는 틀림없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군사, 경제적 패권국가의 지위를 견고히 지키고 있다. 중국이 따라잡으려 노력했지만, 최근의 경제 상황을 보면 어림도 없다. 미국의 재화 및 서비스는 전 세계 GDP의 25%를 차지한다. R&D 지출은 전 세계의 30%이고, 국방예산은 전 세계의 39%로 미국 다음 10개국의 총합보다도 더 많다. 미국 기업의 시가총액은 전 세계의 48%를 차지한다. 다른 나라에 대한 비군사적 원조에서도 1980년 이후 2018년까지 누적금액 1조 달러를 달성하여, 세계 최대의 대외 원조 공여국이다. 그러하니 2016년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이 말했듯이 미국은 이미 위대한 나라, Great Country이다.
그렇지만 그 나라 일부 국민들은 위대한 나라라는 데 자긍심이 없고, 오히려 외세에 쫓기는 듯한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포퓰리즘 정치가는 그런 심리를 어떻게 선거에 활용할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가 주장하는 것이 MAGA 즉, ‘Make America Great Again’이다. 이변이 없는 한 공화당의 후보로 굳어가는 트럼프의 대선 구호이다. 유치한 ‘국뽕’ 같지만 그에 열광하고 지지하는 세력은 대단한 응집력을 가지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구글 그리고 아마존 같이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빅테크 기업을 지칭하는 ‘MAGA’는 아니다. 그럼 누가 MAGA에 열광하고, 또 왜 저리도 극성스러워 전 세계 경제인들에게 스멀스멀 차오르는 불안감을 주는 것일까?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이고, 독립 전 식민지 시대에는 왕정(王政) 치하의 나라였다. 초기 탐험가와 이민자들이 어떤 땅을 개척하면, 우선 그 땅은 왕의 땅이라고 선언하였다. 그런 다음, 그 땅의 소유권을 신청하면 왕은 그 개인이나 집단에게 ‘특허’로 땅을 주고, 왕은 거기에서 5%의 세금만 걷으면 만족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나라가 본국과의 세금 문제로 전쟁을 하고 독립하는 시점에서, 그들에게 가장 아쉬운 것은 구성원 모두를 묶어주는 뿌리 깊은 역사, 공통의 신화 그리고 정치적 이념과 제도의 부재였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Founding Fathers)’들은 정치이념과 체제로서 고대 로마의 공화정을 선택하여 모방했다. 현재 모든 나라가 가장 선호하는 정치이념은 ‘공화국’이다. 심지어 북한과 같이 일당독재의 공산주의도 ‘공화국’이라고 당당히 말한다. 공화정은 시간이 흐르면 타락할 수밖에 없는 권력의 속성을 예방하려는 의도에서 생긴 것이다. 왕정은 폭정(暴政)으로, 귀족정치는 과두정(寡頭政)으로, 민주주의는 우매한 다수의 중우정(衆愚政)으로 타락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를 막기 위한 혼합적 정치체계가 공화정이다.
미국은 독립선언 후 헌법에 공화정을 충실하게 반영하였다. 로마의 상원과 하원을 모방하여 의회를 만들었고, 대법원 판사를 종신직으로 하는 등 삼권분립을 명확히 한 것이 그 예이다. 아울러 개인의 총기 소유와 조지 워싱톤이 이끌던 민병대를 지금도 인정하는데, 이는 권력의 타락 시에는 민병대가 정부에 저항할 수 있다는 공화정 사상이 아직도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주요 정부 청사 및 링컨 기념관 등 정치적 건물은 로마 건축 양식을 따라 지었고, 연방의 문장(紋章)은 라틴어로 만들었으며 더 나아가 로마, 트로이, 아테네 같은 고대 지명을 도시 곳곳에 붙였다.
미국은 전통문화와 가치관 없이 다양한 민족의 집합체로 출발하였으니, 어렵사리 한 번 이룬 합의를 바꾸는 일은 되도록 기피한다. 그래서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싫어하는 속성이 어느새 배어 있다. 그 결과 미국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연방제 국가이며 입헌공화국이다. 1788년에 제정된 헌법을 아직도 그대로 쓰고 있다. 헌법개정이 필요한 경우에도 원문은 그대로 두고 수정조항(Amendment)을 첨부하는 형식을 취한다. 그래서 미국 헌법을 수정헌법이라고 부른다. 많은 문제를 노출시킨 대통령 선거인단 제도와 개인의 총기 소유를 바꾸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824년 민주당이 창립되고, 곧이어 공화당이 창당되어 양당제가 확립되었다. 양당제의 영향으로 경제도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과 타협 속에서 성장하였다. 전통적으로 사업가, 자본가, 고학력자 등 고소득 보수층은 공화당을 지지하였다. 한편, 저소득 저학력자, 노동자와 진보층이 주로 민주당을 지지했다. 그러다가 1960년 대에 들어서면서 판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반전(反戰) 운동을 민주당이 주도하자, 고학력자와 이민자들이 민주당 지지로 돌아섰고, 반면 저학력 백인들이 공화당 지지 세력으로 응집하기 시작했다.
현재 극렬한 MAGA 지지자들은 농업, 공장 근로자 등 육체 노동자들이 주축인 저소득, 저학력 백인층으로 미국 내에서 이들은 햇빛에 목이 탄 ‘Red Neck’이라고 불린다. 그들은 1960년 이후 제조업의 해외 이전과 다양성(Diversity) 정책으로 이민자와 소수인종이 사회적으로 부상하자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끼며 소외되었던 계층이다. 그들은 전통적으로 민주당의 텃밭인 Rust Belt(디트로이트 등 제조업 쇠퇴지역)에서 돌변하여 공화당의 트럼프를 지지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또 2021년 트럼프 패배 후 의회 진입 난동 사건을 벌이고, 트럼프 재판의 검사와 판사를 협박한다. 이는 공화정의 유산인 민병대의 저항과 같은 것이라 생각하며 당연시하니 문제이다.
포퓰리즘 정치가는 대중의 적대감과 분노를 선거에 활용한다. 현재 미국 지식층은 당파를 떠나 위대한 나라의 고립주의와 보호무역주의로의 회귀를 우려한다. 공화당의 MAGA와 민주당의 BBB(Build Back Better)에서 나온 IRA(인플레이션 방지법)는 ‘오십보백보’로, 결국은 경제에 ’America First’를 확보하려는 이기적 고립주의와 자유주의 무역의 부정이다. 따라서 이미 Great Country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MAGA와 BBB를 외치는 것은 급격한 사회 변화를 싫어하는 미국 공화정의 뿌리 깊은 문화와 그를 활용하는 정치적 포퓰리즘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이나 급격하게 밀려오는 이민자에 대하여는 늘 적대감을 표시하였다. 자유주의 무역을 주장하지만, 급격한 무역적자와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 상실에는 반감과 분노를 표하여 관세 인상 등 보호무역주의적 조치로 대응한다.
일찍이 알프레드 마샬이 말했다. “경제적인 힘과 종교적 힘은 줄곧 세계의 역사를 창조하는 중요한 두 요인이다.” MAGA와 BBB는 미국의 경제적 힘을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인 포장 언어일 뿐이다. 이제 변화를 싫어하는 그들의 문화와 경제적 이기심을 염두에 두는 것도 기업 경영의 일상이 되었다.
끝
(진의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