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의환 Mar 09. 2024

 경영자를 교도소 담장 위에서 내려오게 할 수 있을까?


배신(背信)은 어쩌면 인간의 보편적 본성에 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심국지의 작가 나관중은 위연(魏延)에게 반골(反骨)이 있다고 설정하여 그를 배신의 아이콘으로 만들었고, 배신할 사람은 언젠가는 꼭 배신한다는 경고를 후대에까지 전하고 있다. 현대의 조직생활에서도 믿었던 상사, 부하 그리고 동료의 갑작스러운 배신은 늘 조심해야 할 사항이므로 이를 경고하는 말들이 많다. 면종복배(面從腹背), 토사구팽(兎死狗烹), 구밀복검(口蜜腹劍), 견리망의(見利忘義) 등등이다. 배신을 당한 사람에게 그 트라우마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치유되지 않는다. 그래서 ‘배신은 용서할 수 있어도 잊을 수는 없다’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


단순한 믿음, 신뢰 또는 짝사랑처럼 일방적으로 의지하던 마음 등이 깨지는 비경제적 배신에 대해서는 사적자치(私的自治)의 원칙에 따라 형벌이라는 공권력이 개입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배신에 경제적 이익 내지 손실이 연결된다면 공권력이 개입하여 형법상 배임죄(背任罪)로 용서하지 않고 처벌할 수 있다. 우리 형법상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또는 제삼자가 취득하게 하여, 믿고 맡긴 사람 또는 조직에 손해를 가한 경우’에 성립하는 범죄이다. ‘타인의 사무처리’를 업으로 하는 사람에게는 ‘업무상 배임죄’가 되고, 그 배임의 결과 생긴 손해액이 5억 원 이상이라서 도저히 용서할 수도 잊을 수도 없을 정도라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이 적용되어 형이 더 무거워진다.


사인(私人) 간의 배임에 대해서 미국은 형법상 처벌 대상으로 하지 않고 당사자간의 계약 문제이니 알아서 해결하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독일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 형법은 배신행위로부터 보호해야 할 타인의 재산상 이익이 있다고 보고 처벌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배임죄 중 기업에서의 업무상 배임죄는 많은 이슈를 불러일으킨다. 현대 경제활동 주체 중에서 기업의 비중은 점점 커지고 있다. 기업가, 전문경영자, 대표이사 CEO, 이사회(BOD)의 구성원 그리고 기업집단의 회장 등은 타인 즉, 그가 속한 조직의 의사결정과 그 집행을 업으로 행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하루하루의 경상업무(Daily Operation)에서부터 회사의 사활이 걸린 대규모 투자까지 결정해야 할 전문적이고 심도 있는 업무 때문에 스트레스받는다.


그들이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 보좌진은 당시로서는 이용가능한(Available) 모든 정보와 분석을 제공할 것이다. 사안에 따라서는 어떤 결정에 앞서 약간의 위험(Risk)이 있다는 분석도 나올 수 있지만, 그에 대해서는 충분히 예방과 Control 가능하다는 기업가적 확신이 있으면 조직 전체의 더 큰 이익을 위하여 과감히 결정하고 추진할 것이다. 그러나 고의와 사익추구가 없는 선한 결정이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결정 이후의 예측 못한 상황으로 기업과 조직에 손해를 끼칠 수도 있다. ‘그때는 옳았으나 지금은 아니다’로 판명되는 경우이다. 이때 그 결정에 관여한 사람들을 모두 업무상 배임죄로 몰아 법적으로 용서받지 못하게 하는 것이 과연 정의인가의 문제가  부상한다.


지금도 우리나라에서는 계열회사나 관계회사 지원, 신규 투자, 유상증자나 합병 시 주식 가치 평가, 보증 그리고 자산 매각 등을 집행한 후, 어느 시점에 보니 그것이 회사에 손해로 평가되는 경우, 과거 그 의사결정에 관여한 경영자를 배임죄로 처벌해야 하는지에 대한 재판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이런 경우 영미법에서는 경영판단의 원칙(Business Judgement Rule; 이하 ‘BJR’이라 약칭)’에 의해 일정 요건을 만족하면 처벌이나 손해배상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BJR은 18세기 영국, 그리고 미국에서는 19세기 중반부터 판례로 확립된 회사법상의 원칙이다. 그 성립 요건은 의사결정권자인 경영자가 선의이고, 이해관계가 없으며, 이용가능한 모든 정보를 가지고, 합리적이고 적절한 절차를 거쳐 의사결정을 했다는 점이 모두 충족되어야 한다.
다행히 우리 대법원도 ‘현대의 복잡한 경영환경에서 기업을 운영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Risk Assumption)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하에 업무상 배임죄의 판단에 BJR을 2004년부터 받아들여 민, 형사건에 적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영자 단체는 BJR의 좀 더 적극적인 적용을 요구하고 있다. 그 이유는 배임죄의 형사 건에서 BJR이 부인되는 경우가 많아 투자 등 혁신적 결정에서 기업가와 경영자를 심리적으로 위축시킨다는 점이다.


기업의 규모가 크든 작든 간에 불확실성을 극복해 나가는 기업가 정신을 우리는 경제 발전의 견인차로서 찬양하고 지원하고 있다. 역사상 수많은 기업가들의 성공 요인을 분석한다면 공통적으로 3가지가 있다. 섬광같이 왔다 가버리는 기회를 순간적으로 포착하는 순발력과, 정확하고 기민한 판단력 그리고 그것을 주저 없이 실행하는 강인한 추진력이다.


우리나라 법원이 BJR을 적용한다고는 하나 아직은 소극적이고 일관성이 떨어지니 기업가나 경영자들은 어떤 판단에 앞서 후일 배임죄에 해당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법률 전문가를 불러 검토하는데 상당한 비용과 시간을 쓰고 있다. 거기에 요즘은 ‘중대재해처벌법’까지 가세하여 경영자를 교도소 담장 위에 올려놓은 상황이다. 적극적인 BJR의 적용 그리고 ESG 경영에 따라 투명한 의사결정 과정은 교도소 담장 위를 조마조마하게 걷는 경영자를 내려오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진의환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니스트]

작가의 이전글 MAGA,  왜 거기서 나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