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ple Concept Car . 출처; Motor Trend)
1899년 한성(서울)에 전차 운행이 개시되었다. 운행 며칠 후 어린이가 전차에 치어 죽는 사고가 발생하자 군중은 도끼로 전차를 부수고 불태웠다. 얼마 후 사망 사고가 또 발생했다. 잇단 사고에 화가 난 군중은 전차를 다시 불태웠다. 안전이 무시된 전차를 민중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에 대한 분노는 방화로 이어졌다. 지금도 역사는 되풀이된다.
웨이모는 언뜻 들으면 가발 브랜드인 것 같지만, 가발은 아니다. 2016년 자율주행차 개발을 위해 설립된 구글의 자회사이다. 구글은 2009년부터 자율주행 프로젝트를 시작하여, 인간이 전혀 개입하지 않는 4단계(Level 4) ‘완전 자율주행차’를 목표로 한다고 대외적으로 천명한 바 있다. 그런데, 지난달(2024. 2) 샌프란시스코에서 잇단 사고에 분노한 군중이 웨이모 자율주행차에 방화하여 태워 버렸다. 지난해(2023) 샌프란시스코시는 GM의 크루즈(Cruise)와 구글 웨이모(Waymo)에게 자율주행택시 영업허가를 주었다. 밤에 승객을 태운 자율주행택시 크루즈가 교차로에서 긴급 출동 중인 소방차의 옆구리를 들이박아 승객이 부상을 입었다. GM은 자율주행택시가 주변의 불빛 때문에 소방차를 인식하지 못해서 발생한 사고라고 해명하였으나, 방화는 웨이모가 당했다.
웨이모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안전(Safety)’이 가장 강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웨이모를 경험이 풍부한 최고 운전수로 교육시켜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나는 각종 사고를 예방하겠다는 의지가 철철 넘친다. 그러기 위해 2,000만 마일의 실제 도로 주행과 200억 마일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얻은 데이터로 웨이모의 AI를 교육(Deep Learning)시키고 있다고 자랑한다.
도로에서 시시각각 발생하는 경우의 수는 거의 무한대이다. 따라서 아무리 기계학습(Machine Learning)과 딥러닝(Deep Learning)을 시켜도 AI가 혼자 추론하여 대응하기에는 아직은 역부족이니, 인식오류로 인한 사고는 언제든지 날 수 있다. 교통사고 원인의 90% 이상은 신호위반, 음주운전, 인지 실수, 조작미숙 등 인간의 고의 또는 과실이다. 자율주행차를 개발하는 여러 이유 중 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여 안전한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구글에 버금가는 IT 공룡 애플은 기업문화가 좀 다르다. 천재 스티브 잡스 이래 비밀주의와 과도한 자신감이 만연되어 있다. 2014년부터 비밀리에 추진해 오던 자율주행차 프로젝트 ‘타이탄(Titan)’을 2017년에나 발표하였다. 그 후에도 아이폰을 성공시킨 실력으로 아이카(iCar) 정도는 언제든지 맘만 먹으면 뚝딱 내놓을 수 있다는 자신감 넘치는 태도를 보여왔다. 이제, 지난 10년 동안 13조 원을 투자하며 진행해 온 타이탄을 포기하고, 그동안 남들 다하는데 애플만 소홀히 했던 AI에 집중하겠다는 발표가 나왔다. 돈도 돈이지만, 성공의 DNA로만 꽉 찬 듯이 자신만만했던 공룡의 ‘10년 공부’가 성과 없이 도루묵 되자 그 충격의 파장은 크다. 현재까지 빅테크 역사상 최대의 실패사례로 평가된다.
이는 인간의 개입 없는 자율주행 4단계(Level 4)가 “실현될 수 없는 꿈, 아니면 오만한 인류의 바벨탑인가’’라는 회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애플의 자율주행차 포기 결정은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후 나온 것이다. 우선 작년부터 나타난 전기차의 판매부진이 그 결정에 크게 작용했다. 자율주행차는 미래 자동차로서 탄소중립과도 맞물리니 전기차로 갈 수밖에 없다. 탄소중립과 전기차에 대한 각국의 지원과 보조금은 아직은 확고하지 못하고, 상황과 위정자에 따라 흔들린다. 더구나 올해는 미국 대선과 EU 집행위원장 선거가 있는 해이다. 누가 당선되는지에 따라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 정책이 흔들릴 수 있고, 이런 분위기에서 전기차 확산의 ‘속도조절’은 피할 수 없다. 내연기관 대비 비싼 전기차의 판매가 지금까지 매년 신장된 데에는 보조금도 큰 기여를 했다. 이제, 일시적이지만 수요의 급상승은 기대 난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리비안(Rivian)은 조지아주에서 추진하던 6조 원짜리 전기차 공장의 건설 공사를 무기한 중단했다.
두 번째로 고려한 상황은 자율주행차의 안전성이다. 첨단 IT 기술을 총동원하였다지만, 경우의 수가 무한대인 도로에서 안전과 관련하여, 언제나 한결같이 정확하고 합리적이며 정의로운 판단을 AI 가 내린다고 믿기에는 아직 이르다. 주지하다시피 챗 GPT 등 많은 AI 가 있지만, 그들이 내놓는 결과물에는 아직 오류가 많다. 그들이 학습한 데이터를 분류하는 기준과 가중치에 내재된 오류와 편견이 한 이유이다. 또 학습 안된 전혀 새로운 상황에 대해서는 기존 데이터에 근거한 ‘추론’만으로 판단하니 완벽하지는 않다. 주변 인식과 판단에서 오류가 있는 AI 자율주행차에 생명을 맡길 수는 없다. 미국 등 자동차 선진국에서 조사한 결과, 4단계 이상의 자율주행차를 사겠다는 소비자는 소수에 그친다. 아직은 자율주행차의 사회적 또는 시장의 수용성이 낮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주춤거리는 전기차와 자율주행차를 여기서 그냥 멈춰 세워야 하나? 왜 주춤거리는지 그 이유를 알면 답이 보인다. 그 이유는 미국의 유명한 경영학자 크리스텐슨(Clayton Christensen) 교수가 주창한 ‘점진적 혁신(Sustaining Innovation)과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 이론으로 풀어 볼 수 있다. 점진적 혁신이란 기존 제품을 점진적으로 개선하여, 더 향상된 성능을 원하는 소비자에게 더 비싼 가격으로 공급하여 시장을 장악하는 것이다. 반면 파괴적 혁신은 획기적 기술과 성능이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시장을 장악하는 것이다. 두 혁신의 공통점은 시장이 그 제품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니, 시장의 수용성이 성공의 관건이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차는 파괴적 혁신일까 아니면 점진적 혁신일까? 그 제품 개발 관계자들은 파괴적 혁신의 산물이라 주장하겠지만, 크리스텐슨의 이론에 따르면 둘 다 ‘점진적 혁신’ 제품이다. 전기차는 1900년 대 초 이미 발명왕 에디슨이 개발한 것이었고, 포디즘에 의한 대량으로 값싸게 공급된 가솔린 엔진이라는 파괴적 혁신 제품에게 패배하여 시장에서 사라진 과거가 있다. 그것이 정부의 보조금을 등에 업고 다시 등장했지만, 친환경이라는 점 외에는 시장에 크게 어필할 파괴적 기술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 주춤거리고 있다.
자율주행차도 마찬가지이다. 충돌회피 또는 차선유지 시스템 등 이미 보급된 ‘ADAS(첨단 운전자 지원시스템; Advanced Driver Assist System)’ 등의 점진적 개선에 불과하다. 위급시에만 운전자가 개입하여 통제하는 3단계(Level 3)까지는 점진적 혁신이고, 안전이 확보되어 전혀 인간의 개입이 필요 없는 4단계부터는 파괴적 혁신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파괴적 혁신이 아니라면 시장이 수용할 만한 점진적 혁신이라도 지속해야 한다. 파괴도 점진도 아니고 시장의 수용성도 낮은 데, 가격만 높은 전기차와 자율주행차는 시장에서 주춤거릴 수밖에 없다. 충전시간 및 주행거리에서 배터리의 파괴적 혁신이 실현되기 이전에는 점진적 혁신으로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대안이 될 수 있다. 세계적 컨설팅 업체 McKinsey 가 최근 전망한 대로, 자율주행차는 2030년까지는 ADAS를 장착한 3단계(Level 3)에 머무를 것이다. 소비자의 안전이 확실히 보장되는 4단계로의 진입은 2035년 이후라고 McKinsey는 예상한다. 그 이전에는 AI의 추론 판단력과 반도체의 진화가 먼저 이루어져야 하고, 그 위에 인프라 향상, 법규 정비 그리고 AI 윤리 확립으로 자율주행차의 안전 확보와 사회적 수용성이 향상되어야 한다.
애플이 자율주행차를 포기하고 AI로의 선택과 집중을 발표한 것은 초심으로 돌아가 기본에 충실하겠다는 거대 공룡의 대오각성으로 보인다.
[진의환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니스트/ 소프트랜더스㈜ 고문/ 전 현대자동차 중남미권역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