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American Factory’가 진정 하고
싶은 말은 무 엇인기?
요즘 미국 티비를 틀면 뉴스는 온통 민주당 대선 후보인 바이든 대통령에 관한 것이다. 공화당 트럼프와의 공개 토론에서 완패한 그가 후보 사퇴를 해야는지 말아야 하는지, 한다면 그 대안은 누구인지 등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펼쳐진다. 바이든 대통령은 2008년 오바바 대통령의 런닝 메이트로서 부통령에 취임했다. 바이든이 스스로 물러난다면 오바마의 부인 미셀이 대안으로 회자되기도 한다. 그만큼 아직도 오바마의 평판과 인기는 높고, 그는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 중 한 명이다. 60이 되기 전에 대통령직 연임을 마치고 야인으로 돌아온 오바마는 ‘일(Work)’이라는 주제에 꽂혀 있다. 8년 동안의 대통령직 수행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들은 결과, 대부분의 인생에서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느낀 것이다. 그리하여 퇴임 후 2018년 부부는 콘텐츠 제작사 ‘Higher Ground Production’을 설립하고, 다큐멘터리를 통해 일에 관한 메세지를 전파하고 있다.
오바마 부부가 네플리스를 통해 처음으로 전 세계에 뿌린 다큐 영화가 2019년의 ‘American Factory’이다. 이것은 2020년 아카데미 장편 다큐 부문 수상작이다. 미국에 생산공장을 운영하는 경영자라면 꼭 봐야할 작품이다. 이야기는 리만 브라더스 사태가 야기한 금융위기의 여파로 미국 경제에 찬바람이 불던 2008년부터 시작된다. 흔히 ‘UAW’라고 알려진 전미 자동차노동조합이 미국의 Big 3자동차 메이커를 좌지우지한 결과, 그들은 고임금과 ‘Legacy Cost’ 라 불리던 높은 복지비용 때문에 금융위기에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미국의 자존심 GM은 오하이오 주 데이턴(Dayton) 시에 있던 한 조립공장을 폐쇄했다. UAW는 GM 공장 폐쇄 소식을 심각하게 전달했고, 종업원 2,400명은 졸지에 실업자가 되어 그들의 생활은 비참해졌다.
8년간 폐허로 남아 있던 자동차 공장을 중국의 한 사업가가 인수하여 자동차 유리공장으로 개조했다. 이른바 브라운필드 프로젝트(Brown Field Project)로 아무것도 없는 초원 위에 새롭게 공장을 짓는 그린필드 프로젝트(Green Field Project)와 대조되는 개념이다. 오하이오 주는 디트로이트를 중심으로 하던 제조업이 쇠퇴하는 이른바 ‘러스트 벨트(Rust Belt)’ 지역에 속하고, 노조의 입김이 센 곳이라서 한국의 자동차메이커와 부품업체는 신설공장, 즉 그린 필드 프로젝트의 공장 입지로서는 꺼리는 지역이다. 8년간 문닫은 공장을 선택했다는 것은 중국인다운 계산이 기저에 깔려 있다. GM에서 시간당 29달러를 받던 실업자들을 그 절반도 안되는 12.84달러에 2,000명을 고용할 수 있고, 지방정부로부터 투자 인센티브까지 받으면 거의 공짜로 공장을 인수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한 것이다. 그렇게 되면 본사가 있는 중국 공장보다도 더 싸게 생산원가를 맞추어 여러 자동차회사에 유리를 공급할 수 있다는 대범한 생각에서 실행한 것이다.
중국 회장은 미국 공장에 자주 출장 와서 현지 지도하였다. 영어를 못하는 그는 영어 잘하는 중국인 비서를 대동해 업무지시를 한다. 그 과정에서 우선 미국인 사장과 간부들이 문화충격을 겪는다. 회장이 지시하면 법이나 합리적 이유는 무시하고 무조건 실행해야 한다는 압력을 느낀 것이다. 그러면서 미국인 근로자 2,000명과 중국인 200여명 간의 갈등과 이슈는 점차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이 다큐는 중국인들의 눈에 비친 미국인 그리고 미국인의 시선으로 보는 중국인을 하나씩 객관적으로 조명한다. 이들간 문화 차이에서 나온 이슈는 미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에게도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타산지석(他山之石)이다. 중국인들은 미국 근로자들이 너무 규율이 없고 자유로워 느리고 게으르며 거기에 손가락까지 살쪄 두꺼우니 일을 민첩하게 하지 못한다고 불평한다. 반대로 미국인들은 중국인들은 안전과 복지에 뒷전이고, 합리적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면서 무조건적으로 일을 지시한다고 불평한다. 한 미국 직원의 말이 정곡을 찌른다. “중국인들은 공장 안에만 들어오면 여기가 중국 땅으로 착각하고 행동한다.”
생산성이 오르지 않고 적자가 계속되자 중국 회장은 한 아이디어를 냈다. 미국 공장 간부들을 중국으로 불러 중국 공장의 근로자들이 어떻게 일사불란하게 빠르게 움직이는 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작업 시작 전 미팅은 마치 군대 점호를 연상케 한다. ‘차렷, 열중쉬어’ 자세는 기본이고 출근 인원 파악은 군대식 ‘옆으로 번호!’하면 자동적으로 튀어나온다. 결국 중국 경영자가 보여준 것은 중국 공산당식 획일주의와 집단주의 의식이었다. 미국으로 돌아온 미국 간부들이 이를 현장에 적응하자 갈등은 더욱 고조된다.
문화 차이와 안전사고 등으로 인한 갈등의 골은 결국 노조설립 운동으로 이어졌다. 중국 회장은 노조를 극도로 혐오했다. 중국에서는 공회(公會)라는 노조가 있지만, 이는 공산당의 한 조직으로서 어떻게 보면 사용자에게 아주 편리한 조직이다. 그렇기 때문에 회장은 미국 공장에 노조가 생기면 공장을 폐쇄하겠다고 말하며 노조를 저지하도록 미국인 사장에게 명령했다. 그러나 노조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UAW 운동원의 본격적 활동이 시작되자 회장은 미국인 사장을 해고하고 대신 문화적 공감대가 확실한 중국인 사장을 내세웠다. 중국인 사장은 “산 하나에 두 마리 호랑이는 있을 수 없다”며 노조화를 저지한다.
그는 노조 찬반 투표를 얼마 앞 두고 시급을 2달러씩 대폭 올려 노조화 저지에 성공했다. 결론적으로 문화차이에 의한 경영 미숙과 안전 소홀에 대한 대가를 시급 인상으로 치룬 것이다. 그 후 그 공장은 흑자를 기록하고 더 많은 자동화에 투자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조화 저지 이후 그들의 시급은 시간 당 14달러에 머물러 있다고 다큐는 특별히 언급한다. 또 자동화는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아 갈 것이라고 경고한다. 결국 다큐의 끝은 “자동화가 사람의 일자리에 좋은 것일까”라는 화두를 던지고 끝난다.
오바마의 이 다큐는 중국에 대한 시선과 미국인에 대한 시선에서 양쪽의 말을 다 넣어 줌으로써 중립을 지켰다. 이는 서민 중심적인, 약간은 사회주의적 색채를 띤 그의 대통령 재임중 정책과 맥을 같이한다. ‘최저 임금을 상회하는 한 최대한 많은 일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다수의 서민에게 좋다’라는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 미국의 민주당은 노조편이다. 그는 민주당 출신이기에 친(親)노조 성향이지만 무조건 그에 동조하지는 않는다. 노조가 생겨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보다는, 무노조이면서 일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다수의 서민에게 더 좋은 것이라는 그의 생각도 다큐에서 읽어 낼 수 있다.
미국 앨라배마에서 조지아로 이어지는 ‘K자동차 벨트’는 무(無)노조 지역이다. 이 지역에 요즘 UAW가 공격을 준비 중이다. UAW의 노조화 공세를 막아 내려면 임금인상 보다도 먼저 문화적 갈등을 해소하여 소통을 강화하고 안전 등 미국 근로자에 대한 배려와 관심에 더 집중해야 한다.
[진의환 매경 경영지원본부 칼럼니스트/ 소프트랜더스㈜ 고문/ 전 현대자동차 중남미권역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