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헤어질 결심> 리뷰
1. 들어가기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사실 명작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아주 오래도록 미루다가 드디어 보았다.
솔직한 이야기로 영화 중반까지는 난해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서래(여주인공, 탕웨이)는 뭐하는 사람인지, 사람을 죽였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이사는 왜 왔는지. 수수께끼 같은 말만 하는 서래가 전혀 이해되지 않았고, 내용도 잘 들어오지 않았다. 후반부까지만 해도 나는 서래가 그저 해준(남주인공)을 이용하고 기만한 악인이라고만 생각했다. 특히 해준의 한 마디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와 더불어서. 나는 서래가 해준을 정말 만만하게 보는건지, 정말 해준의 심장을 떼어 가고 싶은건지 의심할 뿐이었다.
하지만 후반부, 서래의 한마디에 내 모든 것이 뒤집혔고, 크레딧이 올라가자 나는 이 영화의 제목인 <헤어질 결심>이 너무나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박찬욱이 거장이라는 데 무조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고, 경찰에 살인에 불륜까지 나오는 이 영화가 어떻게 감동적인 로맨스고 멜로 영화인지 전부 인정하게 되었다.
감히 말하건데, 사랑한다는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사랑한다'는 말을 이렇게 세련되면서도 와닿게 그려낸 영화는 없을 것이다. 어떻게 사랑이라는 말 없이 이토록 사랑을 완벽하게 그려내는지. 헤어질 결심은 내가 추구하고 싶은 모든 걸 담았고, 모든 걸 이해한 그 날 바로 내 인생 영화가 되었다. 만약 누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뭐예요?' 라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이 영화의 이름을 말할 것이다. 영화로 '사랑'을 이렇게 그려낸 작품은 본 적이 없다.
2. 줄거리 및 후기
"나 너 때문에 고생깨나 했지만 사실 너 아니었으면 내 인생 공허했다."
해준은 아주 자부심 넘치는 경찰이었다. 잠도 마다하고 범인을 잡기 위해 며칠을 잠복수사를 해가고, 사건을 철저히 분석하고 사진을 찍으며 매달리며 자연히 가정에는 소홀해지는, 그런 성실한 경찰. 하지만 그의 직업적 자부심과 사명은 우연히 만난 중국인 여자 '서래'에 의해 완전히 붕괴되어 버린다.
그는 서래와 깊은 사이로 발전하며, 그의 남편이 실족사 한 사건을 자살로 종결짓는다. 하지만 우연히 발견한 흔적을 따라 다시 조사해보자, 사실 남편은 자살한 것이 아닌 서래가 죽인 것으로 드러난다.
그런데 이미 해준은 용의자이자 살인자 서래와 너무 깊은 사이가 되어버렸다. 불면증을 앓던 그는 처음으로 서래와 숨소리를 맞추며 깊이 잠들고, 절에 가서 서래와 자신을 "같은 종족"이라 표현한다. 아내가 같이 먹자 해도 거절한 초밥도 서래와는 함께 먹었다. 해준은 서래를 사랑했다. 이미 너무 사랑해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물에 잠기듯, 잉크가 물에 서서히 번지듯.
해준은 서래가 범인임을 알고 서래에게 화를 낸다.
"우리 일? 우리 일 무슨 일이요. 내가 당신 집 앞에서 밤마다 서성인 일이요? 당신 숨소리를 들으면서 깊이 잠든 일이요? 당신을 끌어안고 행복하다고 속삭인 일이요?"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
해준의 자부심은 무너졌다. 어떻게 살인자인 서래와 그렇게나 깊게 교감할 수 있는가, 경찰인 자신이? 피의자와 경찰이 아니라, 사랑하는 상대가 되어버리면 안 되는 둘이었다. 하지만 이미 그렇게 되어버렸다. 이전까지의 삶은 붕괴되었다.
"할머니 폰 바꿔 드렸어요, 같은 기종으로. 전혀 모르고 계세요.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 깊은 데 빠뜨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
그리고 해준은 붕괴된 그 삶에서 돌아오지 못한다. 이 말을 한 순간, 경찰로서의 자부심은 이미 져버린 것일테니. 하지만 이미 서래를 사랑해버렸다. 결국 해준은 서래에게 증거 인멸을 권유하며 떠나버린다.
그리고 이포로 완전히 떠난다. 서래와 헤어지겠다는 결심이다.
남겨진 서래는 '붕괴'의 뜻을 검색해본다. 한국 사람이 아닌 그녀는 어려운 말은 잘 몰랐기에.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사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라 생각하는 게 이 두 대사다. 해준은 서래와 헤어지려 이포까지 왔지만, 어쩨서인지 또 서래를 만나고 심지어 서래의 남편이 다시 죽었다. 왜, 왜 또 이 여자를 만난걸까. 게다가 해준은 사실 이포에 온 1년 동안 서래를 잊어본 적이 없었다. 그가 어떻게든 세운 헤어질 결심은 이미 붕괴되었다.
이준은 당연히 서래가 또 살인을 저질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서래에게 따져 물으며 내가 만만해서 또 살인을 저지른거냐고 묻지만 서래는 그저 담담히 말한다.
내가 그렇게 나쁘냐고.
사실 연인 관계에서 헤어질 결심을 몇 번이나 세우는 관계, 하지만 끝내 헤어지지는 못하는 관계는 이 마음을 전제로 한다. '쟤는 내가 그렇게 만만해서 저렇게 구나?' '쟤는 내가 만만해서 내가 주는 걸 당연하게 여기나?' '내가 그렇게 만만한가?' 연인 관계에서 어느새 더 주는 쪽이 되어버린 사람은 늘 이렇게 묻는다. 하지만 받게 된 쪽도 묻는 건 마찬가지다.
'내가 그렇게 나쁘게 굴었나?' '내가 그렇게 많은 걸 요구했나.'
난 그저, 사랑을 요구했을 뿐인데.
서래는 조상 중 독립군이 있어 어떻게든 한국으로 들어온 이민자고, 전 남편은 서래를 들여온 공무원이었지만 서래에게 폭력을 일삼았다. 가정폭력의 가해자인 저 남편을, 서래가 어떻게 사랑했을까? 어떻게 의지했을까? 결국 서래는 전남편을 그날 마침내 죽여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친절한 형사 해준을 만난다.
서래는 힘든 인생을 살아 온 '참 불쌍한 여자'다. 그녀를 책임져줄 남자는 한 명도 없었고, 결국 살인을 저지르고 나서야 마침내 의지할만한 남자를 만났다. 그 다음 재혼한 남자는 항상 서래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결국 그도 서래에게 담배를 끄라며 핀잔 주기만 하는, 그녀를 책임질 수 없는 남자다. 해준은 서래가 담배를 피워도 그저 중국 요리를 대접하며 예쁘다고 해줄 뿐이었는데 말이다.
자세한 내용은 내가 말하고 싶은 내용은 아니라서 건너뛰지만, 이번 남편은 서래가 죽인 건 아니었다. 다만 남편의 죽음을 종용한 건 맞았다. 서래는 자신이 사건 현장을 정리했다고 말한다.
"산책하고 왔더니 피 냄새가 지독해서 당신… 생각났어요. 당신이 와서 이걸 볼 텐데. 당신이 무서워할 텐데."
당연히 증거 인멸처럼 보이는 행위지만, 서래에게는 해준이 피를 무서워한다고 말한 걸 기억하고 피를 정리한 배려였다.
눈이 내리는 설산에서 마침내 둘은 이포에서 처음으로 둘만 대면한다. 서래는 마침내 좋은 남자를 찾았다며 늘 지니고 다니던 유골을 산에 뿌려준다.
"당신 만날 방법이 오로지 이것밖에 없는데 어떡해요."
"난 왜 그런 남자들하고만 결혼할까요? 해준 씨처럼 바람직한 남자는 나랑 결혼해주지 않으니까. 얼굴 보고 말이라도 하려면 살인 사건 정도는 일어나야 하죠."
"날 떠난 다음 당신은 내내 편하게 잠을 한숨도 못 잤죠? 억지로 눈을 감아도 자꾸만 내가 보였죠? 당신은 그렇지 않았습니까? 그날 밤 시장에서 우연히 나와 만났을 때, 당신은 문득 다시 사는 것 같았죠? 마침내."
"이제 내 손도 충분히 보드랍지요?"
서래는 배려받은 적 없는 여자다. 전남편은 늘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그저 말 뿐이었고, 늘 남자들의 무관심과 폭력 속에 살아왔다. 좋은 남자를 만나보겠다는 어머니와의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좋은 남자, 사랑할 만한 남자인 해준은 결국 살인자가 된 뒤에야 만날 수 있었다. 여러모로 참 불쌍한 여자다.
그 때 해준은 서래를 만나, 폰을 바다에 버리라고 했다. 아무도 못 찾게. 아주 깊숙이.
"날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죠."
한 번도 사려깊은 말 한번 들은 적 없던 불쌍한 서래에게, 자신의 직업 정신마저 내쳐버리고 증거 인멸을 종용하는 저 말은 사랑이었다. 서래에게는 해준의 저 말이 "사랑한다"는 말과 같았던 것이다. 자신을 생각해주고, 모든 걸 던져준 진짜 사랑. 해준은 자신은 서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했지만, 저게 사랑이 아니라면 도대체 뭐였을까.
"나 그거 좋아요. 편하게 대해 주세요, 늘 하던 대로… 피의자로."
"이걸로 재수사해요. '붕괴' 이전으로 돌아가요."
"난 해준 씨의 미결 사건이 되고 싶어서 이포에 갔나 봐요. 벽에 내 사진 붙여 놓고, 잠도 못 자고 오로지 내 생각만 해요."
해준은 서래와 헤어지고 싶어 이포에 왔는데, 또 서래를 만났다. 서래와 다시 경찰과 피의자로 돌아간다면 직업적 자부심을 회복할 수 있다. 도리를 다할 수 있다. 서래와 완전히 헤어질 수 있다. 서래가 건넨 폰을 다시 재수사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서래 때문에 붕괴된 일상이 돌아온다.
하지만 해준의 헤어짐은 또 실패한다. 결국 해준은 서래를 찾아나선다. 서래의 위치를 따라, 서래가 준 폰은 그냥 들고 서래와 통화한다.
"해준 씨... 바다에서 건진 전화, 그거 다시 버려요. 더... 더 깊은 바다에 버려요."
서래에게 이 말은 "사랑한다" 였다. 그리고 서래는 자신이 배운 가장 온전한 사랑의 말을 다시 돌려준다. "내가 더 사랑한다."는 서래의 고백이다. 자신이 만난 가장 바람직한 남자에게 자신이 아는 가장 바림직한 표현을.
서래는 결국 해변가에 구덩이를 파 그 안에 들어간다. 파도가 밀려들고, 서래는 그 속에 잠겨간다. 아주 깊은 바다 속으로 서래가 사라져가고, 뒤늦게 도착한 해준은 바로 밑에 있는 서래를 찾지 못하고 애타게 서래를 찾아 헤맨다.
그리고 서래에게 "깊은 데 빠뜨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라." 라는 말은 "사랑한다." 였다.
서래는 자신의 죽음으로 해준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영원히 찾지 못할 해준의 미제 사건이 되어버린다.
박찬욱 감독은 <헤어질 결심>을 '헤어지지 못한다' 는 걸 전제하고 지었다고 한다. '살 뺄 결심'이라 하면 살을 못 뺄 것 같지 않냐는 말과 함께. 정말 그렇다. 우리는 대부분 결심한 걸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다. 매일매일 공부할 결심, 열심히 살 결심, 노력할 결심, 운동할 결심을 하면서도 다음 날이면 잊어버리고, 결국 또 결심을 반복할 뿐이다. 우리가 결심한 대부분은 이뤄지지 않는다.
그래서, 헤어질 결심이라는 제목은 참 완벽하다. 함축적이면서도, 결국 두 사람은 헤어지지 못할 거라는 걸 암시한다. 그리고 주인공 해준이 피의자이자 범죄자인 서래와 몇 번이고 헤어지겠다고 결심하면서도 결국 평생 서래와 헤어지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줄거리도 전부 표현한다. 이 영화에, 이것보다 더 잘 어울리는 제목이 있었을까.
영화 내내 둘은 단 한번도 서로에게 직접 "사랑한다"고 한 적이 없다. "사랑" 이라는 글자도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래에게 사랑한다고 한 건 전 남편이지 해준이 아니다. 하지만 둘은 영화 내내 서로를 열렬히 사랑하고, 마지막까지 서로를 잊지 못하고, 끊어내지 못한다. 사랑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었고, 진심을 담은 말은 사랑한다와 같았다. 영화 내내 서래를 찾아 나서는 해준이 어떻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다고 서래를 사랑하지 않은 것이 될까. 해준을 위해서 시체를 청소하고 내가 더 사랑한다고 돌려서 고백한 서래가 어떻게 해준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둘의 사랑은 모든 걸 버리는 것이었고, 잉크처럼 물에 서서히 번져나가 깊은 바다 속에 빠져버리는 것이었다. 영화를 다 보면서, 어떻게 사랑을 저렇게 표현했을까 라는 생각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어떻게 '사랑해" "내가 더 사랑해"를 그 한마디 쓰지 않고 표현해냈을까.
사랑을 수사와 경찰로 엮어내어, 미스터리하게 풀어낸 작품은 참 독특했다. 영원히 잊지 못하고, 해결할 수도 없지만 잊혀지지 않는 미제 사건이 사랑이었다. 사랑은 사건처럼 갑자기 벌어졌고, 어느날 시작되어 영원히 종결지을 수 없게 되었다. 내가 본 영화 중, 이토록 사랑을 세련되게 그려낸 영화는 없었다. 어떻게 이 불온하고 사회적으로 비판 받을 행위마저 이토록 사랑스러울까.
왜 여주인공을 중국인으로 했는지 궁금했는데, 번역기 연출을 보며 그 의미를 차차 알게 되었다. 서래는 한국어로 말을 돌려서 표현할만큼 능숙하진 않지만, 그럼에도 의견을 솔직히 전하고 시적인 표현까지 가능한 뛰어난 감각을 갖췄다. 서래는 언제나 솔직하게 표현하고, 그러면서도 자신의 복잡하고 어려운 감정은 일부러 번역기로 표현하며 밀고 당긴다. 언어가 다르다는 게 어쩜 이리도 아름답게 표현된걸까.
경찰과 피의자 관계로도, 서로 밀고 당기는 연인처럼도 보이는 게 참 매력적이었다.
사랑은 말이 아닌 행동이었고, 모든 것이 망가져도 놓치 못하는 것이었으며 아무리 자신이 만만해보여도, 나빠지더라도 결국 빠져드는 것이었다.
어쩌면 사랑이라는 건 우리 모두의 미제 사건 아닐까.
오직 영화만이 가능한 상징과 대사, 연출로 이토록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그려내다니, 결국 헤어지지 못하는 연인의 이야기를 이렇게나 독특하게 표현한 이 영화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다.
이 영화는 물에 잉크가 번지듯, 서서히 스며들게 하는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