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세상에서 널 사랑하기에

<구의 증명> 리뷰

by 디어람


71687964b97b47728fd1bfd88d290f1d.jpg?f=jpg&w=600&q=80


최진영 작가의 구의 증명, 발간은 2015년에 되었으나 본격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것은 꽤나 최근의 일인 것 같다.


나는 처음에 제목에 들어가는 '구' 라던가 '증명' 이라는 단어 때문에 수학적인 내용을 다룬 책이라 생각했었는데, 그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로맨스 소설이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둘의 사랑만을 다룬다.




로맨스 소설이기는 하나, 사실 둘이 사귀는 내용의 비중은 크지도 않고 둘의 핑크빛 연애를 다루지도 않는다.


일단, 작품의 시작부터 남자 주인공 '구'가 죽고 시작한다.

게다가 그의 여자친구였던 여주인공 '담'은 그 모습을 보곤 구의 시체를 먹어버린다.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소설의 서술을 보면 진짜로 시체를 먹는다.

굉장히 파격적이고 기괴한 설정이다.


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거야.



그리고 소설은 죽어서 영혼이 된 '구'와 그를 먹으면서 추억을 회상하는 '담'의 시점이 번갈아 나오며 진행된다.

꽉 찬 동그라미가 구, 속이 빈 동그라미가 담이다.


구와 담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만나, 사실상 인생을 함께 해온 사이다. 처음엔 구가 먼저 담이를 좋아해 담이에게 짗궃게 굴었고, 담이는 그런 그를 오히려 싫어했다.

그러던 어느 날, 둘은 골목에서 우연히 마주쳐 서로 친해지고, 마침내 사귀는 사이가 된다.


그러나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고, 성인이 되면 될수록 둘의 상황은 점차 비극적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둘은 서로를 한평생 사랑하지만, 작품에서도 몇 번 정도 계속해서 헤어졌다 재회하기를 반복한다.

심지어 구는 일하는 공장에서 다른 누나와 잠시 연애하기도 한다.



왜 그럴까?

구는 아주아주 가난하다. 단순히 돈이 없는 걸 넘어서, 부모가 죽고나서 아예 그 빚을 모두 떠안고 있는 상태다. 구는 고등학교에 잘 나오지 못하고, 공장에서 일하고 심지어 술집에서 일하기도 하며 어떻게든 돈을 벌지만, 그마저도 사채업자들에게 뜯기고 있는 상태다.

사실상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는 상황이다.


그건 구의 잘못이 아니었다. 부모가 물려준 세계였다. 물려받은 세계에서 구는 살아남을 방도를 찾아야 했다.

담이는 돈을 신경쓰지 않는다.

담이는 구가 일하는 공장에서 매일매일 구를 기다린다.

그 과정에서 '노마' 라는 꼬마와 친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노마는 트럭에 치여 죽어버리고, 둘은 서먹해진다.


구에게 돈이 없다면, 담이에게는 사람이 없다.

담이는 부모가 없고, 할아버지 손에서 자라다가 후에는 이모의 손에 길러진다.

이모는 좋은 사람이라 담이를 아주 사랑했지만, 결국 나중에는 이모마저 담이를 떠난다.

담이는 천지에 혼자 남겨진 사람이다.



구는 담이에게 이별하자고 권한다.

나와 있으면 불행해질거라고.

그러나 담이는 단호하다.


담은 내 곁을 떠나야 했다. 그게 옳았다.


우린 헤어질 수가 없어.
담이 말했다.

행복하자고 같이 있자는 게 아니야. 불행해도 괜찮으니까 같이 있자는 거지


이건 사랑이 아니야.
구가 말했다.

뭐든 상관없어.


그렇게 결말부에서도 둘은 헤어지지 않지만, 결국 구는 빚에 시달리다 길바닥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담이가 그 시체를 먹고, 서로를 계속해 기다리며 소설이 끝난다.



이게 소설의 전체 줄거리다.

몇몇 사람들은 이 줄거리에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왜 담이는 구랑 안 헤어지지?'


'구는 왜 개인회생 신청을 안 하지?'


'왜 저렇게 불나방마냥 저러고 있지?'


'지들끼리 왜 저래?'



이해한다.

나도 솔직히 책을 읽으면서 그 생각을 꽤나 많이 했다.


사실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는 스토리는 아니다.


구는 그렇게까지 메달리며 사랑할 만큼 좋은 남자처럼 보이진 않는다.

일단 돈이 없을 뿐더러, 작중에서 다른 여자랑 연애하기도 한다. 개인적인 불안으로 말도 없이 담을 떠나버리고, 사채업자한테 쫓기는 상황이다.


담이가 그 모든 걸 감당하면서 함께해야 할만큼, 특별한 매력도 보이진 않는다.

그런데도 담이는 계속 구만을 바라보며 구를 계속 기다린다.


나도 읽으면서 몇 번정도 '왜?' 라는 생각을 했다.

차라리 담이는 구를 만나지 않는 편이 더 행복했을 거라는 들었다.

담이는 딱히 빚이 있다는 서술도 없고, 성격에 문제도 없어보여서 구가 없다면 다른 남자랑 잘 살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흔히 이 소설을 비판할 때, '노란장판 감성' 이라고들 한다.

가난하고, 비극적이고, 처절하고, 그 속에서 사랑을 하려 하지만 가로막힌다.

등장인물들을 끝없이 불행으로 몰아넣는다.

시체를 먹는다는 감성도 파격적이지만 아름다운 설정은 아니다.



다만 나는 이 소설은 로맨스 속에서, 그 안에 자본주의에 대한 아주 극단적인 형태의 비판을 담고 있다고 바라본다.

일부러 불행을 최대한 과장하고, 그 안에 가장 순수한 사랑을 대비시켜서 문제점을 부각시킨다는 것이다.


이 소설을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관점으로 다시 보고자 한다.




아이는 물건에도 인격을 부여하지만, 어른은 인간도 물건 취급한다.


일단 나는 작가분이 정말로 개인회생 제도를 몰랐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일부러 그런 현실적인 방안을 배제한 것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담이의 헌신적인 캐릭터성은 '가장 순수한 사랑' 이라는 걸 부각시키기 위해서로 보이고, 구의 미칠듯 가난한 상황또한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장 밑바닥에 몰려 있는 사람' 을 하나 보여주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왜 담이는 구를 안 떠날까?

구가 담이 자신을 떠나야 한다고 판단한 가장 큰 근거는 역시 돈이다.

자신은 빚이 많고, 그 때문에 자유도 박탈당했으니 적어도 담만큼은 자신과 함께 고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돈의 노예가 된 사람들.

돈은 인간적 가치보다 우선시되고, 어떠한 인권보다도 귀중한 것으로 취급된다.

구는 돈의 관점에서 인간보다는 그 밑의 무언가로 취급받는다.

자신의 의견도 없고, 자유도 없다. 인간보다는 짐승에 가깝다.



담은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구가 돈이 없는 건 구의 잘못이라고 볼 수 없다.

부모가 구에게 돈을 물려준거니까.


가난을 마치 질병과 같이 취급하는 현실에 서글퍼하며, 담이는 그런 가치보다도 구를 훨씬 더 우선시한다.

사실 담이는 단 한번도 돈을 신경쓰지 않는다.

그녀에게 돈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돈보다는 사랑, 구의 가치가 더 우선시 되니까.



하지만 돈 앞에서 둘은 절대 행복할 수 없다.

노마랑 함께 하는 동안, 노마는 마치 그들의 아이와 같은 역할을 한다.

둘이 결혼해서 자식을 가졌다면 저런 모습이었을까.

하지만 가난한 둘에게, 아이를 낳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나 하나 살기도 벅찬데.


그렇게 노마는 그들의 눈 앞에서 죽고 만다.



그들은 왜 잘 만나지 못하는가?

왜 담이는 구를 계속 기다리는가?

돈이 없기 때문이다.

담이는 그보다 구를 더 우선시하기에 계속 기다려준다.



구는 자본주의의 폐해 한 가운데에 서있는 사람, 담이는 순수한 사랑의 화신과 같은 존재다.

때묻지 않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사랑.

돈보다 사람을 더 우선시하는, 가장 이상적인 관점.


담이는 그런 존재다.

이 소설은 자본주의와 그 속에서의 순수한 사랑의 대비를 다루고 있기에, 담이는 구를 떠나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비춰지는 것이다.



돈 앞에서, 사랑은 영원할 수 있을까?

사람은 그 가치를 유지할 수 있을까?

작품은 그런 물음을 계속해서 던진다.


구는 돈에 의해 지워지고, 사람 취급 되지 못하는 존재다.

사랑마저 마음껏 하지 못한다.


돈은 정말 인간보다 우위에 있는 것일까?

돈이 인간보다 우선되는 시대에서, 순수한 사랑이 허락되기는 하는 걸까?




결국 안타깝게도 결말은 현실적으로 끝난다.

구는 죽어버린다. 그것도 길바닥에서.

담이의 잘못도 아니고, 구의 잘못도 아니다.

사인은 철저히 돈이다.


전쟁통에서 총을 쏘고 총을 맞는 사람들이 그 전쟁을 일으킨걸까.



담은 결국 구를 먹고, 그와 한 몸으로 아주 오랫동안 살아가기로 한다.

자신의 존재가 곧 구의 존재다.

자신이 존재함으로서 구의 존재가 증명된다.

구의 증명이다.

돈이 아니라, 철저히 사랑으로 이루어졌다.


구는 길바닥에서 죽었다. 무엇이 그를 죽였는가. 나는 사람이길 원하는가.


자본주의에 희생된 이를 순수한 사랑이 먹으며, 마치 더이상은 고통받지 않도록 지켜주는 느낌도 든다.

더이상 상처 받고, 때묻지 않도록.



재미있는 점은 둘의 어린 시절을 다루는 장면에서는 돈의 문제는 전혀 묘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스크림 사 먹을 돈이 없어 설탕을 찍어먹으면서도 둘은 행복하다.

둘의 순수한 사랑을 보여준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사랑을 원하던 그들은

철저히 어른의 세계에서 상처입고 죽어간다.


이는 과연 잘못된 것일까?

순수함과 사랑을 원하는 건 죄가 되는걸까?

죽을만큼의 잘못인가?


돈 앞에서 사람은 사랑할 수 없는걸까?


나는 너를 먹을 거야.
너를 먹고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을 거야. 우리를 사람 취급 안 하던 괴물 같은 놈들이 모조리 늙어죽고 병들어 죽고 버림받아 죽고 그 주검이 산산이 흩어져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진 다음에도, 나는 살아 있을 거야. 죽은 너와 끝까지 살아남아 내가 죽어야 너도 죽게 만들거야. 너를 따라 죽는 게 아니라 나를 따라 죽게 만들거야.
네가 사라지도록 두고 보진 않을 거야.
살아남을 거야.
살아서 너를 기억할 거야.


담이의 순수한 사랑에 대한 해법은

결국 구를 먹어서

그를 보호하고, 하나로 살아가는 것이었다.





나는 이 소설이 순수한 로맨스라기보다는, 사회 비판과 로맨스를 대비시키며 극적인 효과를 유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순수한 사랑의 해법은 그를 먹어서 그의 존재를 증명해주는 것.

지나치게 순수하니 오히려 기괴하기도 하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둘의 사랑과

그들을 가로막는 돈.



나는 이 소설은 사랑 소설보다는 사회 비판적 관점으로 봐야 진정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아주 극단적으로 상황을 설정한다. 돈도, 사랑도.



이 책은 사랑보다는 인간성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도 보여진다.

구는 인간 취급 받지 못했고, 담이도 가장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그를 추모한다.

돈 앞에서 그들은 인간이 아니게 되는걸까.



사랑이라는 비유를 통한 자본주의를 향한 날카로운 우화.

그게 이 책에 대한 나의 한줄평이다.


이전 01화'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그 모든 말을 전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