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유명한 문장이라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라 생각한다.
롤리타, 제법 유명한 소설이고 인터넷상에서도 아주 유명한 소설이다. 소설로도 유명하고, 다르게도 유명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롤리타>라는 소설은 명작이라 생각한다.
굉장히 훌륭한 소설이고, 무엇보다 내가 읽은 책 중에서도 문체가 특히나 아름답다. 과장이 아니고 읽으면서 문장이 아름답다고 느낀게 이 소설이 처음이었다. 유려하고 잘 읽히면서 굉장히 예쁘다, 문장력을 조금이라도 닮고 싶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예술이 도덕성이나 윤리적인 것에 갇혀 있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잔인하고 비합리적이며 윤리적으로 어긋난 것을 가장 올바르게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도 생각한다. 우리는 살인을 저지를 수 없지만, 소설로는 트릭까지 완벽한 미제 사건을 구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소설 <롤리타>는 객관적으로 아주아주 훌륭한 명작이며, 고전으로 남을만한 작품이고 누가 읽어보고 싶다고 하면 읽어보라 할 것이다. 남한테 추천하기에는 내용이 껄끄럽긴 하다만, 나는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라는 것이다. 문장도 그렇고, 예술적 측면으로도 <롤리타>는 훌륭하다.
다만 내가 서문에 이렇게 책 칭찬을 길게 한 이유는, 나는 지금부터 롤리타의 주인공을 아주아주 대차게 깔 것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을 대차게 까는데 왜 소설을 칭찬하느냐?
그건 이 소설이 정말 철저하게 주인공 험버트의 시선으로만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이 소설은 험버트의 고백록이 되고, 오직 험버트의 시선으로만 이 책을 읽게 된다.
책의 구성이 험버트 자체이기에, 내가 주인공을 까는 것은 곧 소설 자체를 까는 것처럼 보일까봐 책 칭찬을 저렇게 길게 했다.
<롤리타>는 훌륭하지만, 주인공 험버트는 읽는 내내 제발 죽기를 간절히 기도할 정도로 천인공노할 쓰레기에 쓸데없이 자기연민만 가득한 찌질하고, 잔인하고, 공감능력따위 없는 이기적이고 되먹지 못한 놈이다.
리뷰를 쓰려고 책을 다시 읽는데도 험버트는 쓰레기였고, 동시에 옆에 있는 돌로레스는 너무너무 불쌍해서 진심으로 책에서 구출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이 소설을 슬픈 로맨스 소설이라 부르는 걸 정말 가능하다면 금지하고까지 싶다. 진심으로 나는 모든 감상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감상은 정말 공감하고 싶지 않다. 이 책은 로맨스 소렁이 아니다. 험버트는 가련한 남자도 아니다. 험버트는 슬프고 불쌍한 남자가 아니라, 아동학대범에 지 도착증을 제대로 해소하지도 못하는 머저리같은 놈이다.
책을 나누어서 이야기해보겠다.
들어가기에 앞서, 나는 험버트 곁에 있는 우리의 롤리타를 롤리타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이 소녀의 본명은 돌로레스 헤이즈다. 나는 계속 돌로레스를 돌로레스라고 부를 것이다.
간략한 순서는 이러하다.
1. 돌로레스에 대해
2. 험버트는 돌로레스를 단 한순간도 이해하지 않는다.
3. 험버트는 '돌로레스'를 사랑했는가?
4. 돌로레스의 발버둥
연인 사이 맞잖아?
실제로 돌로레스가 굉장히 도발적인 말, 유혹적인 말을 많이 한 것은 사실이다. 험버트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이기도 했고 말이다. 험버트는 그걸 바탕으로 '유혹한 것은 롤리타, 자신은 롤리타의 유혹에 넘어갔을 뿐.' 이라고 끝없이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한다. 첫번째, 돌로레스는 막 사춘기를 맞이한 12살이다. 두번째, 돌로레스는 유일한 보호자 어머니와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다. 세번째, 그리고 그런 말을 들었다고 해도 정상적인 어른은 성욕을 안 느낀다.
음, 나도 아저씨를 뭐랄까, 좋아하긴 해요.
돌로레스는 아버지는 이미 없고, 어머니 샬럿 헤이즈와 둘이서만 살고 있다. 게다가 샬럿은 험버트와의 관계에서 돌로레스가 방해된다는 이유로 여름캠프와 대학으로 그녀를 멀리 치워버리려고 하거나, 험버트의 역겨운 편지를 보고도 '어떻게 우리 딸한테 그럴 수 있냐?' 가 아니라 '그 못된 계집을 다시는 못 볼 거예요!' 라는 둥 불룬 상대를 대하듯 말한다. 샬럿은 돌로레스를 아끼지 않고, 그저 방해물로만 여기는 태도를 자주 보인다.
이런 환경에서 돌로레스 앞에 나타난 것이 바로 험버트다. 엄마와 비슷한 또래에, 나에게 친절하고 나를 잘 놀아주는 상냥한 아저씨. 같은 집에서 살기까지 하니 돌로레스는 자연스럽게 엄마에게서는 받지 못했던 '보호자'의 느낌을 험버트에게 받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돌로레스에게 험버트는 어디까지나 보호자, 내지는 아빠의 역할이었다.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어른.
돌로레스가 험버트에게 건넨 도발적인 말들과 험버트와 스킨십을 나눴던 것들 역시 굉장히 당돌하기는 했지만, 성에 민감한 사춘기 소녀가 어딘가에서 본 유혹적인 말을 '흉내' 내며 서툴게 아저씨와 가까워지려는 시도였다는 것이다. 그 나이대에 부모자식간 사랑과 이성과의 사랑이 헷갈리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다. 특히나 돌로레스처럼 부모와의 관계가 불안정한 경우에는 더더욱.
(레옹의 마틸다가 레옹에게 자신의 첫 상대가 되어달라고 하는 것도 이 맥락이다. 물로 정신 제대로 박힌 레옹은 거절했다. 그러니 험버트가 더더욱 쓰레기라는 거다.)
하지만 험버트는 그런 돌로레스의 서툰 시도를 옳거니! 하고 제멋대로 유혹으로 해석해서 그걸 빌미로 자신의 비틀린 성적 욕망을 풀기 시작한다. 그러니 '롤리타가 먼저 그를 유혹했다.' 는 것이 추악한 변명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애당초 돌로레스는 그를 단 한번도 성적으로 본 적이 없다. 돌로레스는 끝없이, 결말까지도 험버트를 아빠라고 부른다. 돌로레스가 필요했던 건 성행위가 아니라 보호자, 따스한 손길을 건넬 수 있는 믿을만한 어른이었다.
그러나 그날 6시에 그녀가 완전히 깨어났고 6시 15분에 우리는 사실상 연인 사이가 되었습니다. 먼저 유혹한 사람은 그녀였습니다.
저는 그녀의 첫 남자도 아니었습니다.
험버트는 자신이 롤리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알려주기 위해서 몇가지 근거를 들지만, 그건 하나같이 추악한 자기변명에 자기연민밖에는 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나는 험버트가 자신을 끝없이 너그럽다느니, 예의 바르고, 온순하고, 소심하다느니 하는 연약해보이는 단어로 자신을 포장하는 게 책을 읽는내내 너무너무 꼴보기 싫었다. 너는 지금 어린 여자애를 폭행하고 있다니까?)
험버트는 자신이 돌로레스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온갖 곳을 돌아다니며 여행을 다녔고, 테니스를 치게 해줬으며 학교도 보내주고 연극 동아리도 들여보내줬다며 자신이 정말 돌로레스를 신경썼다고 말한다.
이 여행의 존재이유는 오로지 입맞춤과 입맞춤 사이의 시간에 내 동반자가 그럭저럭 괜찮은 기분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었음을 유념해주기 바란다.
하지만 잘 살펴보아라, 애당초 돌로레스는 왜 험버트와 여행을 다니고 있는가? 험버트가 돌로레스를 데리고 몰래 숨어서 성행위를 나누기 위함이다. 게다가 험버트는 엄마마저 죽고 천애고아가 되어버린 돌로레스에게 나를 신고하면 고아원에 가게 될 것이라 협박까지 했다. 돌로레스에게 그 여행은 즐거운 관광이 아니라 혼자서 참고 거부할 수 없었던 일방적 폭력이었다. 그는 계속 롤리타에게 협박하고 윽박을 질러가며 그녀를 겁주고 떠나지 못하게 했다.그것을 자신은 돌로레스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여행을 다닌 것으로 말한다.
게다가 돌로레스가 계속해서 무기력해하고 우울해하며 기운 없이 있자 돌로레스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이 성폭행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녀가 뜬금없이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답답한 모텔 방을 전전하며 더러운 짓을 해야 하느냐, 평범한 사람들처럼 살아갈 수는 없느냐고 따지는 바람에 싸웠다.
돌로레스의 선생님이 자신에게 전화를 해서 돌로레스가 성적으로 지나치게 미성숙하고, 이성에게 지나치리만큼 관심이 없다고 말하자 그냥 남자아이들을 초대해주는 선에서 그친다. 돌로레스가 열정을 보이는 연극도 험버트는 탐탁치 않게만 본다. 돌로레스의 내적인 고통과 고민에는 관심도 없고, 심지어는 감기에 걸린 돌로레스와도 성행위만 해댄다.
테니스를 치게 해준 것마저, 결국 첫사랑의 추억을 떠올리려는 자기만족에 지나치 않으면서도 그것을 자신의 배려이자 돌로레스를 즐겁게 해주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말한다.
로는 점점 더 화를 내며 토라질 뿐이었다.
결론적으로 험버트에게 돌로레스는 안중에도 없다. 이 남자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에만 급급한 주제에, 그 와중에 자기 잘못을 덮겠다고 자기 좋으려고 한 행위를 롤리타를 위한 것이었다고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바보는 내가 보여주려는 신기한 세계보다 시시하기 짝이 없는 영화 나부랭이와 진저리가 나도록 다디단 사탕 따위를 더 좋아했다.
당연하지. 돌로레스는 12살 어린애니까.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합쳐서, 험버트는 '돌로레스'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결론이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이 소설을 슬픈 로맨스 소설로 평가하는 것을 정말정말 싫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험버트가 사랑한 건 자신의 성적 판타지를 채워줄 님펫, 롤리타 뿐이다.
롤리타가 지닌 님펫의 마력도 사라져버리고 다루기 힘든 사춘기 소녀만 남을테니까 어떻게든 떼어버려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또 어떤 때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다가 혹시 운이 좋으면 그녀가 내 피를 이어받은 아름다운 님펫을 낳아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나는 이 대목에서 험버트를 정말 찢어죽이고 싶었다.
험버트는 인간 돌로레스는 단 한순간도 사랑하지 않았다. 자신의 성적 욕망을 채워주는 롤리타일때만 그녀를 사랑했고, 애당초 그가 사랑했던 건 롤리타, 그리고 님펫을 사랑하는 자기 자신 뿐이었다.
정신적인 면에서는 역겨울 정도로 평범한 계집애였다.
그녀는 단 둘뿐인 5달러짜리 방에서 나에게 약간의 즐거움을 주는 일보다 다른 활동에 더 관심이 많았다
성적 판타지가 빠진 돌로레스는 그에게는 그저 귀찮고, 이기적이고 성가시며 다루기 힘든 사춘기 아이일 뿐이었다. 험버트는 인간 돌로레스의 고민과 내면에는 관심이 없고, 끝없이 님펫의 매력만을 찬미해대며 자기 머릿속 구성된 롤리타만을 사랑한다.
험버트는 도덕관념마저 어긋나있다.
샬럿과 돌로레스가 함께 살 시절에는 '샬럿이 방해되니 돌로레스와 함께 하기 위해 죽여버리고 싶다.' 고 계속 생각한다. 샬럿이 험버트에게 구애할 시절 청혼을 받아들인 이유도 '이 집에 살면서 돌로레스와 성행위 해야겠다!' 는 이유 뿐이었다. 게다가 샬럿이 차에 치이자 '아싸! 이제 롤리타는 내꺼야!' 라는 기쁨을 숨기기 위해 애를 쓴다. 이 놈은 그냥 사회 통념에 맞추려고 티를 내지 않을 뿐, 근본부터 어긋난 쓰레기다. 그걸 롤리타한테는 감추지도 않는다.
그리고 돌로레스를 보면서도, '이 애가 어른이 되면 성가실텐데. 그 때까지 데리고 있기는 싫으니까 롤리타를 임심시켜서 님펫을 낳게 하거나(...) 치워버려야지' 라고 정말 생각한다.
이 놈은 돌로레스를 사람이라기보단 자기 성욕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만 본다.
아시다시피 그녀에게는 이제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놓고서 자신은 정말로 롤리타를 사랑하고 배려한다고 목을 놓아 외쳐댄다.
험버트는 인간 돌로레스에게는 끝없이 귀찮다거나, 어린애에 지나지 않는다, 변덕스럽다, 다루기 힘들다, 못됐다, 자신을 배려하지 않는다라며 돌로레스를 성가신 아이로 보이게 함과 동시에 그가 롤리타가 아닐 때에 돌로레스를 단 한순간도 신경쓰지 않음을 보여준다. 자신의 폭행으로 당연히 지쳐가고 자신의 애무에도 흥분하지 않는 돌로레스가 차갑다며, 왜 자신에게 그렇게 대하냐며 혼자서 화를 낸다.
돌로레스는 연극 동아리에 열정을 보이는데, 험버트는 그 연극에는 추호에 관심마저 두지 않는다. 그렇게나 사랑한다는 돌로레스가 연극이 좋다는데, 그냥 '형편없는 각본이네' 하고 관심을 끊는다. 오히려 연극 연습을 가지 못하게도 한다. 그리고 자기가 연극동아리를 마지못해 허락해준 것은 자신의 굉장한 배려라고 말한다. 학교 동아리 좀 가입해준걸로 자신이 돌로레스를 배려한다고? 험버트가 돌로레스를 무엇으로 여긴건지 너무 잘 보여서 불쾌했다.
내 생각에 돌로레스는 정말로 연극에 뜻이 있었던 것 같다. 나중에 험버트에서 도망친 후 연극 단역에 설 기회를 얻어내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연극동아리에서 모나라는 친구가 편지도 보내주는데, 그 대목이 작품에서 가장 좋았다.(이 친구는 돌로레스를 돌리라고 부르는데, 나는 이 쪽이 조금 더 귀여웠다. 모나가 더 많이 나왔으면 좋갰다.)험버트가 조금만 정상적이었어도 배우로 성공했을지도 모르는데. 험버트는 사실상 돌로레스의 인생을 망쳐놓았다.
결국 돌로레스는 이 쓰레기같은 자신의 양아버지 험버트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다. 갑자기 학교를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하더니, 기회를 틈타 한 남자(퀄티)와 도망친다.
하지만 그때마저도 돌로레스는 더러운 일을 강요당하기도 하고 한 아이를 임신까지 하게 된다. 정말이지 박복한 삶이다.
그렇게 험버트는 가까스로 돌로레스와 재회한다.(험버트는 다시 롤리타를 되찾기 위해 엄청난 여정을 거쳤다.) 정확히는 돈을 빌리기 위해 도망친 돌로레스가 어쩔 수 없이 험버트를 찾았다.
여기서 나는 돌로레스가 험버트를 어떻게 여겼는지가 잘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그 말은 내가 모텔까지 따라가야만 돈을 주겠다는 뜻이군요?
없어요, 안 돼요. 자기, 안 돼요.
돌로레스는 더러운 짓을 강요당헤 거절당한 후 쫓겨나고도, 그런 남자 곁에 머물면서도 험버트와 같이 가는 것은 끝끝내 거부한다. 나는 자신을 성적으로 학대한 양아버지에게 돈을 요구하는 그 상황에서 돌로레스가 어떤 심정이었을지도 상상이 가지 않는다. 험버트가 같이 가자고 하자, 모텔에 가서 자신을 또 강간해야만 돈을 준다는 뜻으로 당연히 받아들이는 것도 그렇고 말이다.
돌로레스에게 험버트는 쓰레기같은 강간범일 쁜, 돌로레스는 단 한순간도 험버트를 사랑하지 않았고 험버트를 사랑할 수도 없었다.
애당초 험버트도 돌로레스를 사랑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님펫이라는 말과 롤리타.
이는 험버트가 대상화하는 소녀일 뿐.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을 지닌 어린 소녀 님펫따위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건 아동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는 도착증을 지닌 험버트가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말일 뿐이니 말이다. 아동에게 성적 매력을 지닌 어른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리고 그런걸 지녔다고 해도 표출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님펫과 롤리타라는 단어마저 험버트의 자기변명에 불과하다.
이 책의 제목이 롤리타 인것에서부터 험버트가 생각했던 것은 끝까지 만들어진 롤리타 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너와 내가 함께 불멸을 누리는 길은 이것뿐이구나, 나의 롤리타
책의 마지막 문장에서마저 험버트는 '롤리타'를 불멸로 남기도록 했다.
그리고 내 생각에, 험버트는 성공했다.
롤리타가 어린 여자아이에게 성적인 뉘앙스를 담아 부르는 '로리' 라는 말에 어원이 되었으니 말이다.
어린 여자아이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는 것에도 '롤리타 콤플렉스' 라는 이름이 붙었고 말이다.
영화판도 그렇고, 롤리타는 결국 '성적인 매력을 품고 있는 요망한 여자아이' 의 이미지로 굳어졌다.
책 속에서 계속해 묘사되던 인간 돌로레스는 마침내 사라진 것이다. 영화에서는 험버트의 서술대로 매혹적인 여자아이 '롤리타'를 그려냈고, 그 이름은(로리) 계속해서 매혹적인 어린 여자아이의 대명사로 쓰이고 있다.
돌로레스가 험버트에게 얼마나 학대받았고, 괴로워했는지는 사라진 것이다.
돌로레스는 결국 끝없이 대상화되는 소녀의 운명을 걷게 된 것이다.
롤리타는 영원하고 돌로레스는 고통받기만 한다.
(돌로레스는 고통이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내가 작품 롤리타를 높게 평가하는 것, 그리고 내가 로리라는 말에 반대하는 것은 모두 같은 이유이다.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험버트의 시각으로만 작품을 전개하면서도, 동시에 자세히 살펴보면 험버트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돌로레스가 얼마나 내적 고통을 겪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게끔 작품을 설계해두었기 때문이다.
나는 교훈적인 소설은 읽지도 않고 쓰지도 않는다. 롤리타 속에는 어떠한 도덕적 교훈도 없다.
나는 이 말이 왜곡되고 있는 것 같아 두렵다. 만약 이를 토대로 '로리' 라는 단어와 롤리타의 대상화에 동의한다면, 당신은 지금 롤리타의 작품성과 작가의 자질을 낮추고 있는 것이다.
롤리타에 '교훈'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롤리타가 아동 성범죄 하지 마세요! 라고 직접 주장하고 있지는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교훈이 없더라도, 충분히 험버트와 돌로레스를 따라가며 성범죄가 얼마나 끔찍한 것이고, 아동 대상 성범죄가 얼마나 불공정하고 일방적 폭력인지 스스로 알아갈 수 있다. 롤리타엔 도덕적 교훈은 없지만, 작가와 독자는 윤리의식을 갖춘 사람일테니 말이다.
작가는 충분히 둘의 관계는 매우 불공정하고, 돌로레스는 아주 많이 고통받았으며 끝내 험버트를 떼어내기 위해 발버둥치는 과정을 훌륭하게 묘사했다. 심지어 험버트의 시선을 따라가면서도 내가 험버트를 깔 부분을 이리도 많이 만들어두었으니 실로 연구될만한 명작이다.
그러니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돌로레스의 고통을 충분히 잘 표현하고 있다는 말이다. 내가 '로리' 라는 말을 싫어하는 것도 이 이유다. 오히려 이 소설을 읽고 난 후에는 혐오하게 되었다.
로리라는 단어는 작품의 의도마저 끔찍하게 왜곡하고 롤리타를, 그리고 어린 소녀를 계속해 대상화하며 고통받도록 하는 말이니 말이다.
성적 학대의 피해자, 그럼에도 벗어나려고 노력했던 이 돌로레스를 나는 롤리타로 남겨두고 싶지 않다.
그래서 이 글에서도 돌로레스를 계속 돌로레스라고 불렀다. 나는 작품 <롤리타> 속에서 '롤리타'가 아니라 '돌로레스 헤이즈'를 알아봐주는 사람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롤리타가 피해자라는 점에서 '로리' 라는 단어가 쓰이는 빈도도 차차 줄어가기를 바란다.
사람들이 인간 돌로레스 헤이즈를 더 많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썼다. 롤리타를 볼 때, 험버트가 아닌 그 속의 돌로레스에 더 공감해주는 사람이 많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