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은 아주 지루하며 멍청한 행동이다
내가 최근 들은 이야기 중 가장 좋아했던 말이 있다.
가장 공감하기도 했고, 혼자 고개까지 끄덕이며 읽었다.
'상상 속의 악은 낭만적이고도 다양하나, 실제의 악은 우울하고 단조로우며 척박하고도 지루하다. 상상 속의 선은 지루하지만, 실제의 선은 언제나 새롭고 놀라우며 매혹적이다.
시몬 베유라는 사람의 말인데, 이 말에 창작자로서도, 한 사람으로서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악은 전혀 매력있지 않다. 낭만적이지도 않다.
매력적인 악역이 있을지라도, 매력적인 악은 없다.
우리는 종종 선함이라는 것을 굉장히 낮잡아보곤 한다.
선함과 이타심은 누군가에게는 호구라거나, 멍청함, 손해를 볼 사람, 어리숙함이라고 불린다.
종종 그런 이들은 자신의 말이 곧 세상의 진리이고 불편한 진실이며 선함은 악에 의해 언제나 패배하고 이용당할 뿐이라고 생각하곤 하는 것 같지만, 나는 전혀 공감하지 않는데다 그 생각은 세상의 본질조차 아니다.
선은 언제나 악보다 우위에 있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선함이지 악이 될 수 없다.
악은 세상을 아주 잠깐 움직이거나 그저 한 단계가 될 뿐이지만, 선은 세상을 영원히 뒤바꾼다.어떤 것의 뿌리는 선함에 있다.
역사는 결국 선이 흐르게 한다.
애당초 악이 역사를 움직였다면, 80억이 되는 인류는 진작에 살해당하고 서로 죽이며 멸망했을 것이다.
악은 선을 이용하기 위해 선함을 늘 아주 잘 알고, 파악해야 하지만 선은 악을 알 필요조차 없다.
악이라는 것은 지천에 깔린 개미와 같이 흔하고, 누구나 쉽게 닿을 수 있으며 언제나 높이 있는 이들을 올려다 봐야 하는 존재다.
하지만 선은 그보다 더 높이에 있으며, 그들은 악이라는 벌레에게 눈길을 줄 필요가 없다.
그런 하찮은 것보다는, 자신과 같은 눈높이에 있는 이들이나 더 높은 선을 지닌 이들을 바라보며, 함께 살아가는게 더 고귀한 일이기 때문이다.
악이 선을 올려다볼 때, 선은 그저 선으로 있을 뿐이다.
악은 선을 어떻게 '이긴다'고 보여질까?
어떻게 악은 영리하고, 현실적인 행동이라 생각되어질까?
악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선은 당장에 손실을 입을 수는 있다.
사기를 당할 수도 있고, 배신당할 수도 있고, 심지어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가령 한 전세 사기 사건이 있다고 한다면,
순진하게 속아 넘어간 피해자는 더할 나위 없이 멍청해보이고, 그 사기꾼은 큰 이득을 얻었으니 아주 영리하고, 현실적이며 똑똑한 이라고 보여질 수 있다.
누군가는 '그러게 왜 그를 믿었냐' 며 피해자를 욕할 것이고, 가해자를 칭송할지도 모른다.
혹자는 그의 악을 돈을 얻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행위로 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말 중 어디에도 동의할 수 없다.
일단 가해자는 전혀 영리하지도 않을 뿐더러, 어쩔 수 없지도 않았다.
피해자가 멍청하다는데도 동의할 수 없다.
악의 동기는 대부분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 오히려 아주 천박하고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
범죄자들도 보면 '불우한 가정사, 가난, 영혼의 메마름'이 과거의 지룰 이루지 않는가. 그들이 대단한 대의를 지녔거나, 아주 큰 이득을 위해 영리하게 굴었는가?
돈과 그저 자신의 아주 개인적인 안위, 혹은 그냥 '남이 시켜서, 원래 그런거니까' 와 같은 1차원적이고, 깊이가 없으며, 하찮고 아주 단순한 것일 뿐이다. 이기심은 인간의 본성이나 본능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런 본능에 휘둘리며 전혀 통제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짐승과 무엇이 다른가?
마음 속 악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고, 절제하지 못하는 건 인간의 악한 본성이다. 그걸 따르는 건 자연스럽다. 원래 인간은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모르며, 남한테 상처를 주는 걸 즐기는 폭력적인 존재다.
하지만 그건 모든 동물이 그렇다.
악을 행한다는 것은, 더이상 인간적이지 않겠다는 선언과 같다.
나는 짐승과 다름 없는 존재라는 증명이다.
인간의 영혼과 이성은 남을 돕고, 진정으로 사랑하며 악한 본성을 끊어내는 데서 진가를 발휘한다.
악을 통해 금전적 이득이나 정서적 이득을 얻을 수 있다.
그런 이들은 종종 '영리하다', '똑똑한 것이다' 라는 찬사를 받지만, 사실 그는 전혀 지능적인 행동이 될 수 없다. 오히려 본능에 휘둘린 짐승의 행동과 다를 것이 없다.
순간의 돈과 행복이 무슨 대단한 의미를 가질까? 당장의 쾌락 이상으로, 자신의 영혼과 삶 그 자체에 영향을 끼칠 무언가를 제공할까? 애당초 돈이라는 것은 그저 인간이 정한 가치에 불과하며, 개인에게 의미를 가지고 변화의 계기가 될 순 있어도 그를 넘어설 수는 없다.
인간이 돈을 위해 태어나지도 않지 않았는가.
그의 행동은 전혀 영리하지 못할 뿐더러 오히려 자신의 더 큰 이익을 져버리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선만큼 자신에게 큰 이득을 주는 활동도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선을 통해 얻는 이득은 악이 가져다주는 이득을 전부 합친 것보다도 훨씬 크다.
적선과 기부는 돈의 낭비로 보여질 수 있다.
남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믿어주는 것은 그저 순진함이나 무지로 비칠지도 모른다.
세상을 살기 위해, 우리는 악해져야 하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이성과 판단 능력은 선을 원한다.
남에게 친절하고, 가장 숭고한 사랑에 도달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영혼은 선으로 이루어지고 싶어하며, 악해지는 순간 때로는 존재마저 거부한다.
우리는 선을 행하며, 돈과 여러 사사로운 욕망을 넘어서 우리의 진정한 영혼과 자아에 도달해, 마침내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
삶 전체, 인간 전체에 영향을 끼치고, 다정으로 스스로와 세상을 통제할 권한을 지닌다는 말이다.
1차원적인 것을 넘어, 인간의 영혼이라는 더 큰 것을 노릴 수 있게 된다.
길가의 노숙자를 비난하고, 돌을 던지며 조롱하는 것은 아주 쉽다.
하지만 그에게 도움을 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건 내 시간과 마음을 써야 하는 아주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의 영혼은 거기에서 진정한 쾌락을 느끼고, 그를 조롱하고 싶은 본성을 넘어서 진정한 인간적 가치에 다가선다.
선은 본성을 이기는 일이다.
그를 통제하고, 적절히 활용할 때 우리는 인간이라 불릴 자격을 얻으며, 진정으로 칭송받고 스스로를 훌륭하다고 자부할 자격을 얻는다.
악은 뿌리뽑을 수도 없고, 인간이 존재하는 한 범죄는 늘 함께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악은 어쩔 수 없는 것도 아니고 전혀 영리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악은 인간의 가장 큰 권한인, 자아의 실현과 영혼이 채워지는 기쁨을 영영 져버리는 멍청한 행동이다.
그 자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세상에 '하느님'이 있어 그의 영혼이 영원히 지옥에서 들끓지 않더라도 이미 자아와 영혼을 더럽혔으며, 스스로를 망가뜨릴 뿐이다.
선의 가치는 그 모든 걸 이겨내는 굳건한 의지에서 나온다.
우리가 숭고하다 말하는 사랑과 믿음, 그리고 사소한 친절과 다정은 삶을 풍요롭게 하며, 진정으로 단단한 마음을 가져 우리가 나를 들여다보게 하는 용기를 준다.
인간에 도달할 수 있게 한다.
이기적이라는 것은 결국 이득을 얻기 위한 마음이다. 이기적이라는 건 나쁜게 아니다.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우며, 언제나 가장 나에게 큰 이익을 보겠다는 오히려 바람적한 마음이다.
그러니 선이라는 것은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이기적인 행동이 된다. 선만큼 우리 자체에게 큰 이득이 되는 건 없으니. 선은 남에게만 도움이 된다 여겨지지만, 사실 선으로 가장 크게 구원받는 것은 나 자신이다.
나는 개인적 선, 이기적 선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하며, 세상을 바꾼 것도 결국 이것이라 여긴다.
관계와 관심, 애정을 갈구하는 마음, 그렇게 쌓은 관계가 세상을 영원히 뒤흔들었다는 말이다.
성선설과 성악설을 아는가?
많은 사람들이 성악설을 훨씬 더 자주 언급하고, 더 타당하다 믿는다.
인간은 저렇게나 잔혹하고, 어린아이마저 저렇게나 이기적인데 어떻게 인간 본성이 선하냐는 말이다.
하지만 그건 성선설을 아주 잘못 이해한 말이다.
성선설은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 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선하지 않은 이는 인간이 아니다.' 가 사실 더 본질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성선설을 조금 더 지지한다.
어린아이는 당연히 악하다.
당연하다. 그는 아직 인간이 되기에는 너무 어리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이라는 건 조금 더 고차원적인,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이상향에 가깝다고 본다.
우리는 일단 인간이라는 종을 타고났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우리가 진정한 의미의 인간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린아이가 잔혹한 것도, 세상 사람들이 그리도 이기적인 것도 당연하다.
'인간'은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은 언제든지 선하고 다정할 수 있다 믿는다.
환경과 타고난 성정을 떠나서, 누구나 선에 도달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인간은 결국 누군가에게 다정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 여긴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관계를 쌓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 사람에게만은 다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다정이 언제나 세상을 바꿨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악한 본성이 있다.
하지만 거기에 휘둘리지 않고, 이성으로서 통제하며 선을 추구해야 한다.
우리는 '인간'에 도달할 수 있다.
악한 짐승이 아닌, 선한 인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