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기억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by 디어람

나는 강아지를 한 마리 키운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데려와서 어느새 고등학생이 되도록 키우고 있다. 나는 이 아이가 갓 태어난 아기일 때부터 데려와 키워왔고 그 후부터는 매일, 매 순간을 함께 보내고 있다. 초등학교 4학년이면 정말 어린 나이였는데, 사실상 이 강아지와는 인생의 반 정도 함께 나눈 게 아닐까.

우리 강아지는 인간은 아니지만, 엄연히 가족이다. 우리 가족은 여행을 가기 전에 이 강아지부터 챙기고, 걱정하며 끝내는 여행을 취소해 버린다. 이 강아지를 두고 어디를 갈 수 있겠냐는 말이었다. 가족의 일원을 언급할 때면 당연히 언급하며, 같이 살며 거실과 이 집을 자유롭고 아주 당연하게 활보한다. 강아지는 우리 집의 일원이고, 내 인생의 일부이며 당연히 가족처럼 사랑한다.



그런데 강아지는 수명이 짧다. 15년 정도 산다고 하고 그마저도 못 채우고 떠나기도 한다. 설령 오래 살아 17년을 산다 해도, 20년을 산다 해도 어쨌든 이 강아지는 나보다는 훨씬 일찍 죽는다. 나는 17살이니, 이 강아지가 죽을 때쯤이면 나는 20대 후반이나 30대일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수명은 80년 정도 된다 하니, 나는 강아지를 떠나보내고도 50년 정도를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다고 내가 이 아이를 잊어버릴까?

15년 동안의 기억은 앞으로 내가 살아갈 50년 동안 다시는 떠올리지 않을까?

그렇지 못할 것이다. 이미 마음 속에 들어온 것은 그저 마음을 열어준 것이 아니라, 마음 속 자리에 그 이름을 새긴 것이다. 절대로 지워지지 않도록, 아주 깊게 심장을 파고들어 새긴 글자는 영영 지워지지 않는다. 강아지 이름은 '슈가'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만난 슈가는 지금까지 늘 사랑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며, 이 아이가 떠나는 모습을 본 그 순간에도 나는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나는 문득 두려워진다.

이미 마음 속에 새겨진 이 아이가 내 눈 앞에 없는채로, 나는 어떻게 생을 더 이어가야 하는걸까.

나는 앞으로 비슷하게 생긴 강아지를 볼 때마다 반드시 슈가를 떠올릴 것이며, 털이 흰 강아지를 보면 괜히 슬퍼질 것이고 아기 강아지가 애교를 부리는 모습을 보면 초등학교 4학년 때의 그 작은 털뭉치를 떠올리며 눈물 흘릴 것이다. 내 평생의 강아지는 모두 슈가가 될 것이고, 모든 강아지가 슈가라는 단 두 글자에 덮일 것이며 강아지가 존재하는 한 나는 슈가를 잊지 못할 것이다.


새 강아지를 데려올 수도 없다. 새 강아지를 데려온다 한들 그게 어떻게 내가 사랑했던 슈가이겠는가. 슈가는 대체할 수 없다. 이제 영원히 강아지는 슈가 하나일 것이다. 나는 10년이 넘는 세월을 키운 강아지를 평생 가슴 속에 안고 50년은 더 살아간다. 모든 강아지를 볼 때마다 슈가를 떠올리겠지만 슈가를 볼 수는 없는채로.


어떻게 그 짧은 시간 동안 함께한 추억이 평생을 가는걸까.

누군가의 기억에 평생 남는다는 건 축복인걸까, 저주인걸까.

내가 누군가를 평생 기억하며 살아가는 건 축복일까, 저주일까.

왜 나는 그 짧은 15년을 잊지 못하는가. 인생의 반도 안 되는 그 세월이 어찌 내 가슴에 평생 새겨지는가.


늘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떠나지 않고, 그냥 한 침대에서 함께 자며 쓰다듬고 싶으면 언제든 쓰다듬을 수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게 안된다.

언젠가 나는 이 아이를 쓰다듬지 못하게 되고, 침대에 남은 그 은은한 강아지 냄새는 그저 좋은 향이 아닌 저주의 잔향처럼 남아 나를 울리겠지.

그리고 그 추억을 나눴던 엄마와 아빠도 언젠가 죽겠지. 죽어서 내 곁을 떠나겠지.


죽는다는 건 대체 무엇인지 나는 늘 고민한다.

불교에서는 인간은 죽으면 다시 태어난다고 한다. 윤회라고 하던가.

기독교에서는 신을 믿고 회개했는지에 따라 천국이나 지옥에서 영혼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과학에서는 죽으면 의식이 사라지고, 신체 기능이 정지한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궁금한 건 그게 아니다.

죽으면 나는 어떻게 되고, 내가 사랑한 모든 것은 어떻게 되는가.


나는 죽음을 보고 싶다. 누군가 죽음 이후를 알려주기를 바란다.

영혼이 존재하는지, 사후세계가 있는지, 아니면 그런 건 인간의 믿음과 망상인지 헷갈리기만 한다.

세상에 죽은 그 많은 사람들은, 무얼 생각하며 죽었을까. 그 많은 사람들은 죽어서 어떻게 되었는가. 그저 사라졌는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건가?

죽으면 그 사람은, 존재는 사라지는걸까. 내 기억 속에 영영 잡을 수 없는 환각이 되어 마음 속에 대못처럼 박혀 있는 것 뿐일까.


나는 알고 싶다.

그냥 누가 좀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명쾌히 알려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는 두렵다.

강아지가 죽고, 내가 사랑한 대부분이 떠난 후, 그 모든 걸 기억하며 살아가는 나는 어떻게 되는걸까.

그저 그리며 살아가는 건가.

인생의 일부를 한 평생 기억하며 그저 살아가는건가.


짧다면 아주 짧고,

길다면 길었을 그저 일부를 인생의 평생을 가져가는걸까.

월, 수, 금,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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