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유리조각 위 한줄기 빛을 보여주는 것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쓰기에 대한 조언이 있다.
'달이 빛난다고 말해주지 말고, 깨진 유리조각 위에서 반짝이는 한 줄기 빛을 보여줘라.'
안톤 체호프라는 작가의 말이다.
글쓰기를 하다 보면 작가가 '말'을 많이 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온다.
내 감정,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정말 말그대로 '전부' 글에 담으려 하는 순간이다.
특히 소설을 할 때면, 이 등장인물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저게 무슨 말인지,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전부 말로 구구절절 묘사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 이 장면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될까, 혹시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알려주고 싶고 설명해주고 싶다. 내 머릿속에 가득한 이 반짝임을 글로 전부 전달하고 싶다.
나는 이 설명에 대한 욕구를 얼마나 적절히 조절하고, 얼마나 적절하게 글로 표현해내는지가 좋은 글과 그렇지 않은 글을 결정짓는다고 생각한다.
과하리 만큼 많이 설명하면, 오히려 글은 글만의 매력을 잃어버린다.
재미없는 글이 되어버린다.
우리는 남들과 대화할 때도, 결국 스스로 생각하고 싶어한다.
독서라는 것은 작가와, 책 속 등장인물과, 독자간의 대화와 같다.
우리가 대화할 때 말을 많이 하고 싶어하듯, 흥미 있는 이야기만 골라서 듣고 재미 없는 이야기는 적당히 흘려듣기도 하듯 독자도 책을 그렇게 대한다.
독서와 대화가 다른 점은, 대화는 재미없는 대화도 관계 유지를 위해 어느정도 들어줄 필요가 있지만 독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글이 재미 없다면 독자는 언제든지 책을 덮고 다른 재밌는 책으로 떠나버릴 수 있다.
독서의 주체는 엄연히 독자이기 때문이다.
글에서 지나치게 설명을 많이 하고, 지나친 묘사를 하는 것은
친구가 관심도 없는 자기 애인 자랑을 하거나, 남이 그다지 궁금하지 않은 군대 이야기나 무용담을 꺼내는 것과 같다.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정보다. 물어보지도 않았고, 흥미도 없다. 그런데 내용은 많아서 알아야 할 건 많다.
그럼 자연스럽게 독자는 '뭐 어쩌라고. 그래, 그랬구나... 어... 알았어...' 와 같이 영혼을 잃고, 글을 읽을 이유와 감흥을 잃어버린다.
그렇다고 너무 설명해주지 않고 신비주의를 유지하는 것도 과하면 문제가 된다.
그러면 정말 말 그대로, 무슨 말을 하는건지 몰라서 독자가 흥미를 잃어버린다.
이게 무슨 장면인지, 등장인물은 왜 저러는지, 무슨 감정인지 갈피를 못 잡으면 독자는 길을 잃어버린다.
이 상태에서 새로운 사건이나 등장인물이 나오고, 이야기가 결말로 향한다고 해도 독자는 이미 글이 무슨 말을 하는건지 이해할 수 없다.
모든 등장인물은 다 의미 없는 인물이 되고, 아무리 공들여 쓴 클라이맥스도 마치 모르는 외국어로 된 글을 읽는 것과 같은 감흥만을 줄 뿐이다.
글을 쓴다는 것, 그 중에서도 소설을 쓴다는 것은
글로 된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
글의 아름다움, 언어와 문장의 아름다움을 아주 잘 조각하고 그려내며 독자를 이야기로 매혹시키는 것이 가장 핵심이 된다.
소설은 그 '아름다움'을 최대로 끌어올려야 한다.
나는 영화 중에 <헤어질 결심> 이라는 영화를 가장 좋아한다.
내가 본격적으로 이 영화를 이해하고, 빠져들게 된 건 이 장면에서 부터였다.
"당신 목소리요. 나한테 사랑한다고 하는."
"내가 언제 당신한테 사랑한다고 했어요?"
"날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죠."
"해준 씨... 바다에서 건진 전화, 그거 다시 버려요. 더... 더 깊은 바다에 버려요."
그리고 그 다음에, 이 장면이 나온다.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 깊은 데 빠뜨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
스마트폰에는 남자와 여자가 헤어지기 전 나눈 남자의 마지막 말이 녹음되어 있었다. 여주인공은 그 말을, 당신이 나에게 사랑한다고 하는 목소리라고 표현했다.
경찰이고, 직업에 대한 자부심 넘치는 남자는 왜 범죄자인 여자에게 증거 인멸을 제안했을까?
그녀를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여자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았고, 그러니 그 말의 무게를 알았다.
여자는 그 말을 '사랑한다'는 고백으로 듣게 되었다.
그리고, 여자는 마지막으로 남자에게 그 말을 다시 들려준다.
더 깊은 바다에 버리라고 한다.
여자에게 '폰을 깊은 바다에 버려라 = 사랑한다' 였다.
그러니 저 말을 다시 해석해보면, '내가 더 사랑한다' 는 여자의 사랑고백이 된다.
저 장면에 직접적인 '사랑한다'는 고백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다시 돌이켜보면, 남자조차도 그 말을 '사랑한다'는 말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독자가 스스로 그 의미를 찾게 한 것이다.
너무 아름답지 않은가?
그런데 우리는 그 등장인물을 자세히 보아왔고, 저 말이 나온 시점은 우리가 등장인물들을 충분히 파악한 결말 시점이었다. 우리는 남자 주인공의 직업적 자부심을 안다. 그리고 여자의 사랑한다는 말에서, 우리는 모든 말 뜻을 알게 되며 저 말은 훌륭한 사랑 고백이 된다.
그걸 알아챈 순간,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감동 받았다.
그 순간부터 이 영화가 얼마나 사랑을 섬세하게 표현했는지, 어떻게 사랑한다는 말 없이 사랑을 저 정도로 표현하는지 모두 알게 되었고, 몇 번이고 돌려볼 정도로 좋아하게 되었다.
이 장면은 정말 '깨진 유리 조각을 보여주는' 표현의 정수다.
충분히 설명을 해주면서도, 독자가 스스로 그 의미를 찾게도 해주는, 적절한 설명과 표현이 어우러지며 독자가 이야기에 진심으로 빠져들게 한다.
내 소망이 바로 이런 글을 쓰는 것이다.
독자가 스스로 그 진정한 말 뜻을 알아차리고, 놀라기도 했으면 좋겠다.
깊이 빠져들고, 독자가 의미를 직접 찾도록 하면서도 충분한 힌트를 주고 싶다.
장면의 묘사와 진정한 말 뜻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싶다.
늘 글을 쓰다 보면, 많은 걸 직접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달이 얼마나 빛나는지 상세히 묘사하고 싶다.
하지만 저런 은유적인 표현과 뜻을 다양하게 내포한 말이
진정한 언어의 아름다움 아닐까.
나도 언젠가는 꼭 저기에 도달하고 싶다.
사랑한다는 말을
'폰을 바다에 버려라' 라고 표현하는 것이
내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