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도저히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옛날에는 좋은 글을 읽으면 나도 좋은 글을 쓰고 싶었다.
좋은 아이디어가 샘솟으면 표현하고 싶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아예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를 않았다.
근래에 들어 가장 많은 책을 읽었다.
소설은 물론이고, 철학과 심리학 서적까지 읽었다. 특히 몇몇 책은 스마트폰을 대신해 읽을 정도로 몰입했던 것 같다.
글을 읽는다는 건 꽤나 즐거운 일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글을 읽고 싶지, 쓰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던 것 같다.
멋진 문장을 생각해내는 것이나, 이미 있는 내용에 내 생각을 섞어 나름의 추론을 내놓는 것, 혹은 작품의 주제 의식이나 소재를 떠올리는 것은 사실 언제나 가능하다.
멋진 문장은 가끔 떠오르는 걸 적으면 되고, 이미 있는 내용은 캐릭터나 설정, 세계관과 스토리가 이미 다 잡혀 있는 거에 내 생각을 조금 더 섞을 뿐이다. 사실 이런 쪽이 나에게는 가장 즐겁고 쉽다. 남의 창작물을 인용하거나 빌려오는 것.
아마 이미 무언가 결과물이 존재하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그 모든 걸 연결해서, 나만의 무언가를 만드는 건 솔직히 쉽지 않다.
즐겁지도 않다.
사실 어렵고 고된 일이다.
다른 것은 그저 새롭게 고쳐낼 뿐이지만, 나만의 무언가를 쓰겠다는 것은 맨 땅에 농사를 짓겠다는 것과 다름없게 느껴진다.
원래는 없는 것에 나만의 참신함을 담아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 것은 막막하다.
그래서 최근 영감이 떠오르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단순히 소재를 떠올리는 것과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내가 '밑바닥 인생들의 데스 게임' 이라거나 '학교폭력 피해자의 복수극' 이라는 소재를 떠올렸다고 해도 거기에 나름의 세계관이나 어울리는 캐릭터와 주제 의식, 개연성을 담아 하나의 스토리를 만드는 것은 훨씬 까다롭고 복잡한 과정이 들어간다.
최근에 소설을 하나 집필하려 하는데, 영 골치가 아프다.
어떻게 해야 독자들의 마음에 들지, 어떻게 해야 납득이 될지, 인물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내가 작가인데도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작가는 절대로 신이 될 수 없다.
하나하나 모든 것을 짜임새 있게 넣으려면 신이 아니라, 같은 인간이나 독자의 입장에서 봐야 한다.
안 그러면 개연성이 엉망인 편의주의적인 전개가 나오거나 도저히 납득 불가능한 감정선이 나온다.
나는 그런 평가는 받고 싶지 않다.
창작은 즐거운 것이지만 아주 고통스럽다.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섬광처럼 계속해서 번뜩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나는 아주 빠르게 소설을 하나 만들고 싶은데, 아주 더디게 걸릴 것 같다.
왜 작가들이 글을 쓸 때 15년씩 걸리는지 알 것도 같다.
소설 출판의 꿈은 멀고도 험한 것이고, 성공할 보장도 없는 것이다.
예술을 하는 모든 이들은 다 이 고민을 하고 있을까?
넘치는 상상력을 가지고 일에 뛰어들어도, 곧 내 상상력은 아주 유한하며 경험에 의존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럴 때면 자부심을 잃는 기분이 든다.
창작의 즐거움보다 고통을 먼저 느끼고, 심지어 고통이 아주 길다.
길고 고되다. 지루하기까지 하다.
소설을 쓴다는 건 매력적인 일이지만
구상은 오히려 지루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일이 이런 것 같기도 하지만.
사실 모든 일이 고되다가 즐거워지는 것일지도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