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집도 차도 변변한 직장도 없는 어느 도시에 살고 있는 삼십 대 초반의 여성이다. 카페에서 일하며 언젠가 내 글이 세상에 빛을 발할 날을 고대하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부모님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부터 내 학비와 생활에는 관심이 없으셨다. 때문에 학교를 다니며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고, 학자금을 잔뜩 안고 대학교를 졸업했다. 대학생 때 아르바이트했던 교육청에서 본 교육 공무원들이 멋져 보여서 1년 반동안 공무원 시험공부를 했고, 집구석에 앉아서 시험 준비를 하는 것이 내 적성에 맞지 않단 걸 깨닫고 뒤늦게 취업 준비를 했다. 디자인 관련학과가 아니었지만 어릴 적 그림 그리던 꿈을 엄마의 반대로 포기하면서 생긴 미련으로 디자인 공부를 했고, 어느 패션 회사에 취직해 디자이너로 일을 했다. 하필이면 내가 일하던 팀만 텃세가 심했고, 사수와 팀장의 괴롭힘에 못 견뎌 회사를 관뒀다.
‘두고 봐. 실력을 갈고닦아서 더 좋은 곳에 취업하고 말겠어.’
그렇게 공부를 병행하며 생활비를 벌기 위해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내가 진정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사람을 좋아하는 내가 손님을 대하고 가진 손재주를 발휘할 수 있는 바리스타는 애쓰지 않아도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돈을 벌면서 인간을 관찰하고 탐구할 수도 있으니 내겐 너무도 좋은 일이었다. 카페로 전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능력을 인정받아 한 가게의 점장이 되었다. 내 가게를 차릴 꿈을 꾸며 앞만 보며 열심히 일하던 어느 날, 하필이면 코로나가 터졌다. 가게를 차리려던 계획이 조금씩 미뤄지기 시작했다. 2년여간 점장으로 애지중지 관리하던 매장이 폐업하게 되었고,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또다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사람을 대하는 것을 좋아하고 손재주가 좋다. 때로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언제나 사람을 환하게 맞이할 수 있단 건 내게 너무도 행복한 일이다. 애쓰지 않아도 잘할 수 있는, ‘내가 잘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나는 사람을 탐구하고 생각을 정리하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쓴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들어와 울림이 된다면 그만큼 기쁜 일이 없다. 나는 잘하는 일로 돈을 벌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인간에 대한 탐구이다. 적은 돈이지만 카페에서 일을 하면서 인간을 탐구하고 글을 쓰기로 했다. 전업으로 일을 한다면 시간 내어 글쓰기 힘드므로 아는 분의 가게에서 일을 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삼십 대의 내가 변변한 직업도, 집도, 차도 없으면서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적은 돈을 아끼고 살며 글을 쓴다는 건, 남 시선을 과하게 중시하고 나이에 보수적인 대한민국에서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때문에 주변 지인이 결혼을 하거나, 명품백을 든다거나, 차를 몬다거나 또는 나보다 어린 사람이 집도 차도 다 가지고 풍요롭고 안정적으로 사는 것을 보면 잠시 위축되는 건 사실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모두 속 편하게 고민 없이 잘 사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구나 사정은 있다. 겉으로 티 내지 않을 뿐, 누구나 크고 작은 문제와 걱정을 떠안고 산다. 나만큼 찌질하고 구차하게 사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인간은 언제나 아래보단 위를 보는 동물이기에 나만큼 찌질한 사람을 찾기 힘들다. 나 또한 그러하다. 나만큼 안정된 직장이 없거나 새로운 시작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사람은 표면적으로 봤을 때 주변에 아무도 없다. 그래서 때론 도태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긴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나 또한 지금의 상황을 모든 곳에 오픈한 것도 아니다. SNS 속 네모난 화면의 내 모습은 좋은 곳에 놀러 가 예쁘게 꾸미고 문화생활을 즐기는 모습이기에 가까운 지인이 아니고선 내가 지금 이렇게 사는지를 모를 것이다.
찌질하고 느리고 구차한 모습은 맘껏 드러내지 않고 숨기기 마련이다. 그러니 조급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보는 네모난 사진 속 웃고 있는 모습은 그 사람의 지극한 일부일 뿐 누구나 찌질한 모습이 있기 마련이니까. 내 마음과 타협하고 자신을 받아들이고 가고 싶은 방향이 명확해진다면,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집중하고 나아갈 수 있다. 삼십 대, 사회가 말하는 결혼 적령기이기도 하니 집도 차도 없고 적게 버는 모습이 불안정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남들의 삶과 비교했을 때의 모습일 뿐이다. 나는 내 기준을 잡으면 된다. 나는 결혼을 목표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고, 나에겐 세상에 보여주고픈 메시지가 있다. 나는 그날을 위해 남의 삶이 아닌 내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다. 지금의 삶도 나쁘지 않다. 차가 있다면 모든 게 편리해지겠지만 많이 걸으면서 따로 운동을 하지 않아도 건강 관리를 할 수 있다. 좋은 집은 아니더라도 혼자 살기 좋은 꽤 괜찮은 집에 살고 있고, 사랑하는 내 반려 고양이와 사랑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 골골거리긴 하지만 꽤 튼튼해서 그 흔한 코로나도 걸린 적이 없다. 웃고 먹고 움직이고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넉넉하진 않지만 아껴살면 부족하지 않을 만큼 벌고 먹고 산다. 남들이 월요병에 허덕거릴 때 나는 여유롭게 재즈 음악을 켜고 커피 한 모금을 들이켜며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고 있다. 목표가 있기에 그것을 향해 나아갈 원동력이 있다.
인간은 누구나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에 집중하기 마련이다. 더 가질수록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갖길 원한다. 많은 것을 갖고 나면 나보다 어린 사람의 젊음이 부럽고, 되돌릴 수 없는, 가질 수 없는 것에 목메기 시작한다. 그간의 노력과 현재 가진 것들의 의미를 잊고 만다. 그동안 이뤄왔던 것들과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을 살펴보자. 부족한 것 같아도 꽤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단 걸 깨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