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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Oct 27. 2024

말의 품격


 일을 쉬는 동안 예전에 일했던 카페에서 한 번씩 아르바이트를 했다. 어느 날, 출근길에 바로 가는 버스가 이미 가고 없어서 택시를 불렀다. 출근길에 택시 타는 걸 세상에서 제일 돈 아깝다 생각하지만 그곳은 내 집으로부터 거리가 아주 먼데다, 버스시간도 제멋대로여서 이런 날엔 여과 없이 택시를 타야 한다.


 나는 스몰 토크를 좋아하지만 출근길에 택시 안에서 기사님과 대화하는 것은 몹시 꺼리는 편이다. 대게는 행선지를 말하면 놀러 가냐 물으시기에, 일하러 간다고 대답하면 무슨 일 하냐에서부터 그런 일은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냐, 그럼 기술은 필요 없는 거네?(카페에서 일한다고 대답하면 이때부터 슬슬 말을 놓으신다.) 하는 식의 반응이다. 언중유골(言中有骨)이란 말이 있다. 직접적인 건 아니지만 뼈가 느껴지는 말에 때로 상처를 받기도 한다. 대부분의 택시 기사님들과의 대화에선 카페에서 일하는 사람에 대한 묘한 하대가 느껴져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좋아서 선택한 일이지만 이미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 어르신들을 설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십 분 남짓의 대화가 전부인 잠깐의 만남에서 내 직업과 가치관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이날도 제발 무슨 일 하는지 묻지 않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택시에 올라탔다.


 택시에 올라탄 지 1분도 되기 전에 기사님이 대화의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기사님은 내 행선지와 직업에 대해 꼬치꼬치 묻지 않으셨고 택시 일하는 것의 고충과 건강관리에 대한 얘길 하셨다. 나도 건강관리에 관심이 많은 데다 건강이 최고의 관심사인 아빠가 생각이 나서 신이 나서 대화하다 보니 어느새 행선지에 도착했다. 처음이었다. 젊은 사람에 대한 편견, 개인 신상에 대한 불필요한 질문 없이 똑같이 존중받으며 편하게 대화를 나눈 것이다. 대화 마지막까지 나를 손님으로서 존중해 주시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택시 기사님과의 대화에서 불필요한 질문 없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화한 건 처음이었다. 이런 분들만 있다면 출근길 택시기사님과의 대화가 더 이상 불편하지 않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날 기사님과의 대화에서 나는 ‘말의 품격’을 느낄 수 있었다. 품격 있는 사람은 처음 보는 상대의 신상을 꼬치꼬치 캐묻지 않고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이어서 상대의 대답에 존중을 담아 되묻는다. 자신보다 한참 어린 사람이라도 쉽게 말을 놓지 않는다. 어른과의 대화에서 모처럼 같은 사람으로 존중받았단 생각에 출근하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기사님의 말의 품격에 마음이 따뜻해진 하루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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