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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Oct 26. 2024

고양이와 세계평화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도망치듯 집으로 향했다. 전장을 치르는 장군처럼 붐비는 퇴근길을 치열하게 뚫고 왔지만 막상 집에 와도 딱히 기쁘고 행복한 일은 없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짧은 휴식을 가진 뒤 다시 밀린 작업을 시작한다. 일상이 피로 누적이다. 할 일은 얼마나 많으며 시간은 어찌나 빨리 가는지! 갈수록 시간이 빠르게 느껴진다고는 하나 이건 너무 심한 게 아닌가! 눈 깜빡하면 하루가 다 가버리니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이러니 날이 갈수록 신경이 예민해진다.


 ‘야-옹’

 

 혼자 사는 집의 적막을 깨는 건 항상 이 귀여운 녀석이다. 8년째 함께 하고 있는 반려 고양이가 하루 종일 늘어뜨렸던 몸을 일으키며 반갑다며 부빈다. 따뜻한 온기와 부드러운 감촉이 전해진다. 하루 종일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나와 다르게 이리저리 뒹굴며 몸을 부비고 낮잠을 자는 녀석은 참 행복에 겨운 한량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춥거나 덥거나 이 작은 집을 벗어나면 세상이 얼마나 변화무쌍하고 치열한지 이 녀석은 알 길이 없다.


 이 작고 귀여운 생명체는 자기가 얼마나 귀여운지를 모른다. 자꾸 만져달라 하고 관심 가져달라는 이 녀석을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이 금방 간다. 역시나 고양이는 작업에 해롭다. 조금만 쓰다듬다 다시 집중해야지! 부드러운 털뭉치를 몇 번 쓰다듬으니 그릉그릉 골골송을 부르며 꼬리를 이리저리 흔든다. 그게 귀엽고 좋아서 한참을 바라보다 부드러운 털 뭉치에 얼굴을 파묻는다. 뽀송하고 꼬릿한 향기가 지치고 날카로워졌던 내 안의 모든 감각을 따스히 감싸준다. 하루의 피로가 마법처럼 사라진 기분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모두 다 알 것이다. 이 거부할 수 없는 뽀송하고 꼬릿한 향기가 주는 마음의 평화와 안도감이 얼마나 황홀한 지를! 귀엽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을 보고 매만지다 보면 ‘고양이를 국회로!’라는 우스갯소리가 떠오른다. 이 순간만은 모든 곳에 고양이를 배치해 놓으면 세계평화가 가능할 것만 같다.


 고양이는 그새 졸리는지 눈을 감고 내 옆에 엎드렸다. 그 자그마한 얼굴을 바라보다 나도 그만 달콤한 잠에 빠져버렸다. 얼마 뒤 깨어보니 서로가 같은 자세로 자고 있다. 어쩌면 행복은 이렇듯 일상에서 오는 작은 평화와 안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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