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잠시 살았던 동네에는 오래된 연못이 하나 있었다. 이사 갔던 당시는 겨울이었는데, 연못 너머 정자와 둘레의 산책길이 참 멋져서 이사오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날이 풀리고 앙상하던 가지에 새싹이 돋고 이파리들이 자라면 계절마다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겠단 생각에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계절이 지나 봄이 되니, 노인들이 연못 주위를 빼곡히 자리 잡고 담배를 피우며 바둑을 두고 있었다. 알고 보니 이곳은 추운 겨울을 제외하고는 노인들의 성지였다. 하루 종일 그곳에서 시간을 때우다 해가 지면 바둑판으로 자리를 맡아두고 사라졌다가, 다음날 각자 맡아둔 자리에 앉아 똑같이 담배를 피우며 바둑을 두는 것이다. 자리 옆 통로까지 그들이 가져온 의자가 나와 있고, 나뒹구는 술병과 뿌연 담배연기로 인해 통행하는 사람들은 그곳을 빙 둘러 지나와야 했다. 벚꽃이 피고 지고 초록잎으로 온 세상이 청량함으로 가득 차는 계절이 와도, 그곳만은 유독 춥고 어둡고 그늘져 눅눅했던 기억이 난다. 멀리서 보면 그들은 마치 검은 까마귀 떼 같았다. 운동을 하다 그곳을 지날 때면 어김없이 검은 얼굴들의 시선에 포착되는데, 초점 잃은 그들의 멍한 시선이 불쾌해 서둘러 자리를 뜨곤 했다.
매일 같은 자리에서 담배를 피우며 바둑을 두는 그들을 보며 문득 ’희망‘에 대해 생각해 본다. 공동이 사용하는 아름다운 연못은 대낮부터 자욱한 담배연기와 함께 술병이 뒹굴어 평범한 시민들은 좀처럼 이용하지 않는 곳이 되어버렸다. 마땅히 갈 곳이 없기에 늘 그곳으로 걸음을 향하는 검은 얼굴들의 삶을 떠올려 본다. 그곳은 희망 없는 그들의 시간을 흐르게 해주는 유일한 희망의 공간이었다.
연못 근처에는 도서관이 있다. 역시나 그곳에도 노인이 많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은 연못 주변의 노인들과는 사뭇 다르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책을 가득 쌓아두고 독서 삼매경인 이들과, 공용 컴퓨터 앞에서 자판을 두드리거나 인터넷 강의를 듣는 이들의 얼굴은 희망으로 가득 차있었다.
가로등 없는 어두운 시골길을 달빛에 의지하여 걷던 어느 밤이 떠오른다. 희망은 어둠 속의 달빛과 같아서 세상을 헤쳐나갈 등불이 되어준다. 살다 보면 가끔 무엇을 향해 아등바등 살고 있는 건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슴속에 희망을 품는 것이다. 그 희망 하나가 우리의 삶을 비춘다. 내 삶의 희망은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