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불안이라는 감정을 가지고 산다. 자신의 불안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부모님이 이혼하신 건 대학교 4학년 무렵이었는데, 이제야 그로 인해 가지게 된 불안에 대해 찬찬히 곱씹어보게 되었다.
부모님은 두 분 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잘 몰라 서툴렀다. 엄마는 아빠와 나를 소유물처럼 생각했고, 속박하고 통제하는 게 사랑의 방식이었다. 반면 아빠는 있는 그대로 응원해 주는 게 사랑의 방식이었다. 엄마의 사랑은 숨통을 조였고, 아빠의 사랑은 너무 헐거워서 닿지 않았다. 그들은 사랑을 건강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고, 갈라서고 나서도 자신을 추스리느라 바빴던 것 같다. 두 분 모두 이혼은 처음이었으니, 혼자의 삶으로 돌아가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타지에서 혼자 적응하느라 가족의 도움이 많이 필요했지만 상의 없이 이혼을 통보받은 데다, 아무도 날 신경 쓰지 않고 방치했다는 생각에 큰 상처를 받았던 것 같다.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혼자였고,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고립된 느낌이 들어 커다란 벽을 치고 고군분투하며 버텨왔던 것 같다. 그때의 부모님의 입장도 생각해 보니 그 영향으로 변한 나에 대해서도 조금씩 알게 되는 것 같다. 나는 독립적으로 혼자 지내는 것보다 누군가와 함께 사랑하고 울타리를 만들어서 사는 게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글을 쓰고부턴 평소라면 흘려보냈을 잡다한 생각들을 붙잡아 반추하곤 한다. 그러다 보니 나와 나를 둘러싼 것들을 이전보다 더 많이 이해하게 되고, 매번 새로운 나와 마주하곤 한다. 어느 날 주변사람들에게 가장 두렵고 불안한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관계에 대한 불안,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불안, 일에 대한 불안 등 다양한 대답이 나왔다. 그중 대다수는 사랑하는 가족의 건강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꼽았다. 불안에 대해 묻다 보니, 신기하게도 그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알게 되었다. 불안은 가장 소중한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열망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나는 ‘관계’에 대한 애착이 강하고, 앞으로 내가 꾸리게 될 ‘가족’에 대한 열망이 크다. 그래서 혼자 남겨지는 것에 대한 불안이 있다. 형제가 없고 부모님과의 유대관계도 깊지 않기에 결혼을 통해 새로운 가정을 꾸리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지금처럼 혼자 살아야 할 것이다. 아주 어릴 적엔 다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데, 나는 혼자서 척척 잘 해낸다고 생각했다. 지금 와서 보니, 도움이 필요해도 요청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사람은 누구나 부족한 미완의 존재이기에 기댈 줄도 알아야 하고, 어깨를 내어줄 줄도 알아야 한다. 하지만 난 기댈 줄도 모르고 짊어질 줄만 아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나는 쉽게 관계를 정리하곤 했다. 사실, 관계에 대한 애착은 강했지만 혼자 남겨질까 두려워 작은 마찰에도 쉽게 돌아서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가 발동했던 것 같다. 버려질까 두려워 먼저 관계를 내친 것이다.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지만 상처받기 싫어 ‘내 사람’이라는 경계를 두고 더 이상 가까이하지 않았던 나를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믿는 구석’에 대해 종종 생각하곤 한다. 가족과 건강한 유대관계를 가진 사람들은 힘들 때 언제든지 그들이 나를 도와줄 거라는 강한 믿음이 있다. 그 믿음이 있기 때문에 불안하지 않다. 반면, 나에게는 그런 믿는 구석이 없기에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고, 고꾸라지면 다시 혼자 일어나야 하므로 무언가를 실행하기에 앞서 두렵고 불안하다. 실패에 대한 책임도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큰 것이다.
내가 나를 알면 알 수록 모자란 부분이 많다는 것을 깨닫는다. 혼자서도 제법 잘 헤쳐나가고 있다 생각했는데 한 번씩 다 내려놓고 포기하고 싶을 만큼 깊은 절망감을 느꼈던 것을 떠올려보면, 내가 느끼고 있던 부담과 불안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이미 벌어진 일을 돌릴 수 없듯이 내 결핍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라도 기대어보려 한다. 그간 지독히도 외로웠으니, 기댈 줄도 알고 부족함을 인정하며 건강한 관계를 형성해 보려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을 약속을 하고, 따뜻한 관계 안에서 난생처음으로 포근히 잠드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불안은 우리가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를 보여준다. 불안은 나를 성장하게 하고, 더 깊고 의미 있는 관계를 향한 갈망의 원동력이 된다. 불안을 인지함으로써, 서로의 결핍을 이해하고 보완하고, 사랑을 주고받는 건강한 관계 속에서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다. 혼자여서 불안했지만 함께여서 온전한 존재로 나아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