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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Sep 18. 2024

불행한 글이 잘 팔리는 이유


 글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건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때였다. 너무 힘든데 말할 데가 없어서, ‘배설’하듯 나의 개인사를 써 내려갔다. 주변에 밝혔다가 나를 바라보던 시선이 동정으로 바뀔까 봐, 몹시 가까운 지인 말고는 모르는 나의 어두침침한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하게 반응이 꽤 좋았다. 메인에 내 브런치북이 떠서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다. 응원의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도 있었고 책값이라며 후원을 해주신 분도 있었다. 막연하게 글을 써봐야겠다 다짐하고 혼자만의 배설을 반복하던 나에게 ‘어쩌면 나도 유명한 작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긴 계기였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꾸준히 쓰다 보면 좋은 기회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틈이 날 때마다 글을 써두었다. 글감을 얻기 위해 글 목록을 쭉 훑어보며 느낀 건 상위에 랭크된 많은 글들이 ‘이혼’과 ‘불륜’ 그리고 ‘고부갈등’에 관한 글이었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글을 보고 공감하기 마련이라 아마 비슷한 연령대 또는 비슷한 상황인 분들의 많은 공감을 샀지 않을까 싶다. 예전엔 흠처럼 느껴지기도 했던 이혼이 이제는 ‘당당하게 내 삶을 선택하고 나아가는 새로운 출발’로 여겨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결코 쉽지 않은 선택임에 이렇게 표현해도 될까 조심스럽긴 하지만, 이혼이 트렌드인가 싶을 정도로 글목록에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브런치에 틈틈이 글을 쓰면서도 종이책 말고는 이 공간에서 글을 잘 읽지 않은 이유는, 메인에 뜬 수많은 글들이 자신의 ‘불행’을 써 내린 글이었기 때문이다. 메인에 뜰 정도로 많은 관심을 샀던 불행에 관련된 글들이 꼭 출판에 선정되지는 않는 건 출판사의 구미가 당기는 잘 쓴 작품과 조금 서툴러도 공감과 위로를 많이 준 작품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보다, 또는 나와 비슷하게 힘든 사람을 발견하면 처음엔 연민의 감정을 느끼다 곧 위로를 받고, 나보다 힘든 사람도 있으니 기운 내서 일어나 봐야겠단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치부’를 털어놓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으니 당신들도 힘내서 살아가보자고. 겉으론 다들 나보다 잘 사는 것 같지만 속엔 주변에선 모르는 아픔 하나쯤은 있다고. 그러니 우리 모두 잘나고 못날 것 없이 평범하고 소중한 사람들이라는 걸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아래를 내다보며 우월감을 느끼기도 하는 존재라는 서글픈 생각도 들었다. 나보다 잘 사는 사람을 보면 처음엔 동경하다 이내 곧 질투하고, 나보다 힘들게 사는 사람을 보면 위로해 주다 위안을 얻기도 하니 말이다. 불행한 글이 잘 팔리는 걸 보며 겉으로는 ’상향 평준화‘된 우리의 삶이 사실은 썩고 곪아서 많이들 힘들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힘이 들 땐 나보다 잘 사는 사람의 ‘괜찮을 거야‘라는 한 마디보단,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의 ’나도 그래‘라는 ‘공감’이 더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불행한 글이 주목을 많이 받는다는 건 그만큼 우리가 ‘공감’이라는 위로에 목이 말랐기 때문이다. 주변에 마음 편하게 내 불행을 터놓을 사람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한들 불행을 터놓음과 동시에 내 평판에 직결이 될 수 있기에 입을 닫게 되는 이유도 있고, 이성적인 것과 무례함을 구분 못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공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흔치 않다 보니 모두들 현실에선 점점 입을 닫고 온라인 세상에서 모르는 사람의 글을 읽고 공감하고 위로받게 되나 보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어쭙잖은 위로를 건넸다 더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일 수 있고 감정이 서툰 이유일 수도 있고 그 외에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가 점점 현실에서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단 건 ‘솔직하기 어려운 현실‘ 탓도 있을 것이다. 현실 친구보다 온라인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더 따뜻한 위로를 받기도 하니 말이다. 솔직하기 어렵다 보니 우리 사회 전체가 ‘관계’에 대해 다 같이 서툴러지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솔직하게 터놓고 가까워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면 좋겠다. 고맙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 괜찮냐는 한 마디가 어렵지 않은 세상이면 좋겠다.


 퇴근하면 친구와의 연락보단 온라인 세상으로 영상과 글을 보며 현실에선 없는 나와 더 잘 맞는 친구를 찾는 이 세상이 어딘가 씁쓸하고 서글프다. 불행한 사람의 이야기를 보며 마음 아파하고 공감하고 응원하고 ‘그래도 나는 이 사람보단 나은 인생이라 다행이다’라는 생각에 묘한 우월감을 느끼기도 한다.


 ‘세상엔 생각보다 힘들지만 씩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잖아? 나도 힘내서 다시 열심히 살아봐야겠다!‘


 휴대폰을 끄면 어김없이 우리가 사는 현실세상으로 돌아온다. 주변은 또다시 겉으로 보면 멀쩡하고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투성이다. 하지만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 현실에서 터놓기 어려우니 온라인 세상에서 더 솔직할 뿐이다. 비교와 자만, 우월과 동경이 아닌 제각각 모두 환경은 다를지라도 다들 열심히 살고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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