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지 어느덧 3주가 지났다. 준비된 게 아닌 덜컥 해버린 퇴사인지라 거창한 계획은 없었지만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미뤄왔던 것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내가 쉬어도 세상은 여전히 바삐 굴러가고 있으니 나도 나름대로 바삐 움직여보기로 했다.
사람 좋아하고 교류하는 걸 좋아하지만 하고 싶었던 것들은 죄다 집에서 혼자 하는 것이기에, 정신없이 나름의 해야 할 일들을 처리하다 문득 사람 안 만나고 산지 꽤 시간이 흘렀단 걸 깨달았다. 혼자 있어도 할 일은 쳇바퀴 굴리듯이 매일 수두룩 빽빽한데, 교류 없이 지내다 보니 심심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사람이 그립다. 자고 일어나 움직이고 다시 눈을 감기까지 온 하루가 혼자 시작해 혼자 끝난다. 일할 땐 몰랐던 허전함이 몇 배로 느껴진다. 친구와 나누는 하루 한두 통 남짓의 메시지가 그날의 소통의 전부이다. 문득 견디기 힘든 외로움과 공허함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이러다 영원히 도태돼 방구석 히키코모리가 되는 건 아닌지 겁이 나기도 한다. ‘잠깐만 쉬려다 영원히 쉬어버리면 어떡하지?’, ‘다들 차곡차곡 돈 모으고 사는데 이렇게 쉬어도 되나?’ 머릿속에 온갖 잡초들이 비집고 들어와 뿌리를 쥐어 잡고 흔든다. 조급하면 안 된다. 쉬어가는 시간을 중요히 여기자.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사람은 역시 몸이 바빠야 하나 보다. 육체적 노동을 쉬다 보니 이 틈을 타 잡다한 생각이 쉴 새 없이 나를 뒤흔든다. 낮은 여전히 볕이 뜨겁지만 해가 지면 제법 선선해지길래 이참에 저녁마다 걷기로 했다. 걸으면서 바빠서 구석 한켠으로 밀어두었던 내 주변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어느 순간부터 친한 친구는 고정이 되었고 새로운 만남이 있다 해도 그게 꼭 친구관계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다 보니 친구관계는 늘 그대로고 그마저도 다들 바쁘다 보니 가끔 외롭고 힘이 들어도 기대기도 미안하다. 어느 순간부터 힘들다고 말하는 것도 짐을 지어주는 것일까 봐 말을 아끼다 보니 얘기할 사람이 없어졌다. 외로움의 주기는 큰 포물선을 그리며 위로 올라가기도, 아래로 내리꽂기도 한다. 바쁠 땐 뒤로 미뤄뒀던 인연들을 필요할 땐 그리워한다. 나도 참 어쩔 수 없는 이기적인 사람인가 보다.
심심해서 정신이 나가기 일보직전에 드디어 친구를 만나고 왔다. 같이 일했던 동료나 남자친구를 제외하고는 세 달만의 사적인 만남이었다. 그런데 그토록 그리던 만남이었건만 돌아오는 내내 느낀 건 공허함 뿐이었다. 어느 순간 친구라 생각했던 사람들도 아득히 멀게 느껴질 때가 있다. 대화가 통하지 않거나 일방적인 공감과 맞춰주는 식으로 만남이 끝나기도 한다. 슬슬 내 주변 사람들도 변해가기 시작하나 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진정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가 사라지고 있단 생각에 서글퍼진다. 기쁘면 기쁘다. 슬프면 슬프다 미주알고주알 얘기하고 감정을 교류하던 시절이 그립다. 애써주고 생각해 주는 최소한의 필요한 노력은 어느새 감정소모가 돼버리고, 표현하지 않아도 그러려니 알아차려야 하는, 감정의 영역이 바싹 말라버린 건조한 어른의 세상은 나처럼 관계욕구가 큰 사람이 살아가기에 너무 버겁고 힘들고 외롭다. 관심이, 애정이, 공감이 그립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주변 사람들의 성격이 고착화되는 게 느껴진다. 특히 주로 보이는 양상은 본인 얘기는 실컷 쏟아내면서 상대방의 말엔 관심 가지지 않는 것이다. 관계는 일방적인 게 아니라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인데 들을 준비가 안돼있으니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 어릴 땐 친구관계가 최고의 관심사였지만 나이가 들 수록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아지고 친구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다 보니 관계가 조금씩 변한다. 점점 타인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고 자기중심적으로 바뀐다. 타인에게 감정을 내보이는 걸 창피하게 여긴다. 솔직한 속내를 드러내는 걸 자신의 치부를 들키는 것이라 여긴다. 갈수록 말은 아끼고 지갑을 열어야 사회에서 잘 지낼 수 있단다. 그러니 감정을 교류할 곳은 없고 어딘가 외로우니 나이 들어서 갑자기 관심도 없던 모임과 동창회를 기웃거리는 것이다.
나는 나이가 들 수록 타인을 이해하는 너그러운 마음과 문제가 생겼을 때 차분하게 해결할 수 있는 지혜가 자연스레 생기는 건 줄 알았다. 그게 내가 어릴 적부터 생각해 왔던 멋진 어른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갈수록 감정을 교류할 수 있는 사람은 줄어들고 있다. 마음을 열고 필요한 관심을 가지고 솔직하게 대화하는 게 쉽지 않다. 모두들 본심을 감추다 보니 점점 본심을 잊고 만다. 마음 깊은 곳에 꽁꽁 숨겨놨던 감정에 다가가기 어려워지고 되려 미숙해진다. 나이 먹은 아이가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어른으로 살아가기 위해선 사람에 큰 ‘기대’를 갖지 않고, 들어오면 들어오는 대로 따뜻하게 환영해 주고, 나가면 나가는 대로 나이스하게 보내줘야 하나 보다. 하지만 제아무리 독립적으로 잘 산다 해도 인간은 반드시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순간이 온다. 갑자기 퇴사해 버린 내가 지금 외로움에 사무친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한 번도 감정에 대해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 경주마처럼 바쁘게 살다 보니 저 멀리 묻어두고 잊어버린 감정에 대해 생각하고 함께 교류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으면 좋겠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 모두
이렇게 살다간 외로워 죽을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