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믿느냐고 하면 대답은 'yes'. 왜 이렇게 노력해도 자꾸 고꾸라지고 힘에 부치나 싶어서 보면 어김없이 삼재(三災)였다. 올해까지가 원숭이띠의 삼재라고 한다. 십이 년 전에도 그랬고 나는 유달리 또래 친구들에 비해 삼재를 지독히도 앓는 것 같다. 그래도 늘 버틸 수 있었던 건 ‘인생의 총량법칙’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기쁨도 슬픔도 ’총량‘이 있으니 나는 젊을 때 이만큼 고생했으니 이 힘든 시기만 잘 견뎌내면 그 후엔 편해질 운명이라 믿으며 버텼다.
올해는 초반부터 이직문제로 너무 힘들었다. 잘해보려고 한 결정에 더 큰 고난이 따랐고, 몇 번의 좌절이 반복되니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한 직장에서 오래 머물 땐 더 이상 성장할 길이 보이지 않아 더 늦기 전에 새로운 경험과 도전을 하고 싶었는데, 막상 첫 발을 디뎌보니 그게 욕심이었나 싶을 만큼 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발전은 없어도 안락하던 때가 그립기도 했다. 한해의 절반이 지나가고 가을이 시작할 무렵 다시 새로운 일자리를 구했고, 과연 이곳이 나의 한동안의 벌이를 보장해 줄 안락한 둥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어찌어찌 지내는 중이다.
겨우 숨 돌리고 있는데 아빠에게서 연락이 왔다. 다니기로 한 직장이 새 단장을 하느라 잠깐의 휴가가 생겼는데, 한번 놀러 오라는 것이었다. 이윽고 덧붙인 말.
‘남자친구도 같이 오면 좋겠어.’
아빠가 남자친구를 보고 싶어 한 건 처음이었다. 내가 결혼적령기가 되니 이젠 만나고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셨을 테다. 그렇지만 남자친구가 나보다 많이 어리고 아직 취업 준비 중이어서 결혼하기엔 아주 많이 멀었다고 미리 말씀드렸었기에 아빠의 말이 매우 갑작스럽게 느껴졌다.
이윽고 들었던 생각은 보통 사람들이 먹을 만한 음식도 별로 없는 데다 같이 식사할 수 있는 테이블도 없는 집에 갑자기 사람을, 그것도 내가 진지하게 만나고 있는 남자친구를 초대하려는 점이 몹시 불편하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남자친구에게도 아빠가 자연인처럼 특이하게 산다고 소위 말하는 ‘밑밥’을 많이 깔아놓긴 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아빠가 살고 있는 집을 공개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빠가 사는 허름한 임대 아파트를 공개하자니 냄새나는 화장실이 바로 떠올랐다. 나 또한 아빠 집에서 하루 묵고 오기를 꺼려했던 가장 큰 이유였던 문제의 화장실은 자세히 보면 오물이 변기에 덕지덕지 묻어있고 따로 청소를 하지 않아 불쾌한 냄새가 났다. 아빠와 같이 살 때도 이게 가장 문제였다. 매일매일이 한 번의 사용만으로도 더럽히는 자와 늘 깨끗하게 유지하고 싶어 하는 자의 창과 방패의 대결이었다. 도저히 같이 더러운 화장실을 쓸 수가 없어서 도망쳐 나온 그때가 떠올라 몸이 덜덜 떨렸다. 사람을 초대해 놓고는 보통 사람들이 먹을 만한 것을 준비한다던가 그들이 불편하지 않게끔 미리 신경 쓰는 배려를 모르는, 자기 사는 방식 그대로를 서슴없이 보여주는 아빠가 사는 집을 도저히 보여줄 자신이 없었다.
이어서 든 또 다른 걱정은 남자친구가 아직 취업 준비도 제대로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상태로 아빠와 대면하게 한다면 “그래. 취업준비는 잘하고 있고?”라는 질문에 남자친구는 “네” 말고는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나마 가끔 하는 공부도 내가 진지하게 몇 번이고 뭐라 해서 하는 것이다.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젊은 청춘을 허송세월 낭비하고 있는 게 너무 아깝다. 내가 이 사람의 나이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해보고 싶은 게 무궁무진하게 많을 것 같은데, 왜 저렇게 탱자탱자 쉬면서 보내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신나게 놀기라도 하면 그것 또한 경험이 될 테지만 그냥 아르바이트만 하고 집에서 쉬며 나이만 먹고 있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순수하고 나를 많이 사랑해 주고 마음씨도 고운 정말 사랑하는 남자친구이지만 늘 이 점이 나를 고민케 한다. 다 좋은데 취업 준비를 하지 않는 이 녀석의 내면만 바라보고 계속 가는 게 맞나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 딸이 결혼 적령기에 만나고 있는 남자친구가 주말 아르바이트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백수인 걸 알았을 때 아빠는 괜찮을까? 차라리 뭐라도 제대로 열심히 준비하고 있을 때 둘을 만나게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아빠는 한 마디를 던졌을 뿐인데 나는 수천 수가지 생각을 하느라 기가 쭉 빠져버렸다.
참 답답하다. 당장 나만 해도 새로운 도전을 하려다 연거푸 고꾸라져서 힘든데, 남자친구도 아직 애기지, 아빠는 사람을 초대할 만한 환경엔 관심도 없으면서 남자친구 얼굴을 보고 싶어 하지 정말 총체적 난국이다. 둘 다 그 상태로 아무렇지도 않은 걸 보면 자존감 하나는 박수쳐줄 만하다. 헛웃음이 터져 나오는데 눈가엔 이슬이 맺히는 건 기분 탓이겠지?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는데 세상에서 딱 두 사람의 시간만 느릿느릿 여유롭게 흘러가는 것 같다. 적당히만 신경 써도 혼자 이렇게 골머리가 아프진 않을 텐데, 이런 생각을 늘어놓는 나만 속물 같다.
문득 느리게 가는 삶을 택한 나에 대해서도 돌아본다. 삶을 다시 돌릴 수 있다면 나는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을까? 커피 내리고 사람 상대하는 게 좋다고 카페에서 일하기로 마음먹을까? 또래보다 아주 느리게 하고 싶은 것을 향해 가고 있는데, 주변 상황도 답답하니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런데 한참을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떤 길을 갔건 결국 나는 다시 이 길로 들어섰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하고 싶은 걸 꼭 해야 하는 사람이고, 내 소신이, 자유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남들 다 가는 길로 갔더라도 다시 돌아왔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남자 둘도 이런 나의 느린 삶을 존중해 주고 나 자체를 믿고 사랑해주고 있는데, 나만 그들을 향해 ‘보통’이라는 쉬운 단어로 나쁜 잣대를 들이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라 함은 적당한 대학을 졸업하고 적당한 나이에 적당한 곳에 취업해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사는 것일까? 거기서 소소한 행복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 또한 평범으로부터 오는 행복이라 할 수 있겠다. 사람을 대하고 커피 내리는 게 재밌다고 이 나이 먹고 최저시급을 겨우 넘는 월급 받으면서 살고 있는 나는 평범한 행복을 누릴 수 없는 사람일까? 또래는 직장에서 체급을 불리고 있는데 나는 몇 년이 지나도 최저시급이 오르지 않는 한 연봉이 올라갈 일은 없는 직업이다. 모으는 돈은, 받는 월급은 평범에서 한참 못 미칠지 몰라도 내가 그때그때 느끼는 행복과 보람은 그것과 비례하지 않는다. 나는 나를 잘 안다. 몸 편하고 마음 편한 일은 내 심장을 뛰게 할 수 없다는 걸. 나에게 삶은 ‘존재의 이유’를 찾기 위해 과감히 뛰어드는 심장 터질 듯한 ‘돌발행동’이다. 나는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느껴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이다. 그래서 느리지만 명백한 꿈이 있기에, 하고 싶은 걸 제때 하면서 살고 있다.
사회가 명명하는 평범한 삶은 아닐 수 있지만 나 같은 사람도 있기에 사회가 모두 똑같지 않고 조화롭게 흘러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삶을 택함으로써 가끔 힘들고 지치지만 저마다의 삶의 방식인 걸. 모두에게 인정받을 필요도 없고 각자마다 가진 행복의 기준치대로 사는 게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꿈이 있다는 것, 목표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오늘을, 내일을 살아갈 명백한 이유가 되기에 오늘도 나는 느리게 살아간다. 그리고 내 선택이 중요하듯 주변 사랑하는 사람들의 선택도, 그들의 느리게 사는 삶도 존중해 주기로 했다. 다른 모든 것들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아빠는 살아가는 방식이 다를 뿐 멋진 내면을 가진 사람이고, 내 남자친구도 누구보다 착하고 다정하고 마음이 단단한 사람이다. 내가 그들을 사랑하는 이유는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겉면이 아닌 변하지 않는 단단한 내면 때문이란 걸 잊지 말아야겠다.
빠르게 가는 사람도 있고 느리게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속도가 다를 뿐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삶은 없습니다. 우린 편하고 빠르게 갈 수 있는 열차에서 내려 맨발로 걷기로 한 사람입니다. 내가 딛게 될 땅이 진흙길이 될지 자갈길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발끝에서 느껴지는 거친 표면의 질감을 마음껏 느끼고 싶은 사람도 있습니다. 언제 도착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아주 오래 걸리겠지요. 하지만 변함없는 사실은 ‘나는 그곳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