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어렸던 나의 사계절과 반딧불이

다신 돌아가지 못할, 그때 그 온도.

by 봄 원


난 어릴 때부터 햄버거, 피자보다는 청국장, 김치가 입맛에 맞았다.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자라 그런가?

할머니 할아버지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고물상을 20년 넘게 하고 계시는데, 어린 시절 나는 우리 고물상 마당에서 노는 걸 특히 좋아했다.


봄과 여름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마당을 자전거를 타고, 페달을 힘껏 밟아 끝에서 끝까지 내달리곤 했다.

낙엽잎이 떨어지는 가을에는 바람에 살살 흔들리는 은행나무 밑에 쪼그려 앉아, 떨어진 은행들을 바지 주머니에 고이 넣어두곤 사무실로 뛰어들어갔다. 겨울을 대비해 설치해 둔 연탄난로 위에 주머니 속 고이 넣어둔 은행들을 난로 위에 얹어놓는다.

몇 분이 지나고 은행들이 입을 벌리면, 호호 불며 뜨거운 은행을 까먹는다.

그 쪼그만한게 얼마나 맛있던지.

마지막으로 눈이 내리는 추운 겨울이 되면 마당에 쌓인 눈을 모아 눈사람을 만들었다. 하트모양, 별모양 그리고 3단 눈사람까지. 눈사람이 거의 다 만들어져 갈 때쯤 할머니는 서랍 깊숙이 박혀있던 장갑을 찾아 꺼내 내 손에 끼워주었다. 눈사람이 완성되면 조심히 바닥에서 떼어낸다음, 사무실로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할아버지와 소파에 앉아 리모컨을 들고 있는 할머니한테 짜잔! 하고 보여주었다.

아, 이제야 알겠다. 어린 시절 나는, ‘3단 눈사람 멋지게 완성하기.’가 목표가 아닌 ‘열심히 만든 3단 눈사람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자랑하기.’가 목적이었다는 걸.

그 추운 날 날이 어둑어둑 해질 때까지 볼이 빨개지고선, 입김을 후후 불어가며. 며칠 뒤면 다 녹아있을 그 3단 눈사람을 왜 그렇게 열심히 만들었는지 이제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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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난 반딧불이가 참 좋았다.

마치 움직이는 별을 보는 기분이랄까?

그날도 아주 평범한 날이었다.

어두운 밤, 나는 마당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었고 할아버지는 마당 끝에서 일을 하고 계셨다.


시간이 흐르고 심심해진 나는 마당 한 구석에 자전거를 대충 세워두고 있었다.

그때 할아버지가 두 손을 포개어놓으시곤 어둠 속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내 이름을 부르면서 말이다.


난 대답을 하며 싱글벙글 할아버지 앞으로 뛰어갔고

할아버지의 눈앞에 내가 다다랐을 때쯤, 할아버지는 포개어 놓고 있던 두 손을 열었다.


할아버지의 두 손이 열리자, 그 안에 들어있던 작은

반딧불이가 모습을 보이며 작지만 강한 불빛을 내뿜었다.

난생처음 본 반딧불이였다.


할아버지는 뿌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고 난 그 반짝이는 반딧불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난 그날들의 밝기, 감정 그리고 그때 그 온도 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생생히 기억한다.


그때 그 시절엔 별 거 아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딱 한 번만 돌아가보고 싶은.

다신 돌아가지 못할, 그때 그 소중한 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