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하지만 놓치고 싶지 않은,

작은 기록

by 봄 원


(배경 사진 속 주인공은 멋진 우리 할아버지이다.)

오늘은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좋지 않은 꿈을 꿔서 그런가 이상하게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괜히 걸을 때도 뒤꿈치로 바닥을 쿵쿵 찍으며 걸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사무실로 성난 코끼리 마냥 걸어가 소파에 털썩 앉았다. 냉동실에 있는 바나나맛 메로나를 꺼내 먹었는데도 입 안에 바나나향이 가득한 것 말고는 변한 건 없었다.


내 기분이 안 좋다는 걸 눈치챈 할아버지는 나에게 소고기를 먹으러 가자고 제안했다. 그 말에 나는 금세 기분이 풀려 옷을 입고 나갈 준비를 했다. 그 과정을 옆에서 모두 지켜본 할머니는 역시 손녀 기분 풀어주는 도사라며 깔깔대며 웃었다.

고깃집에 도착한 세 명은 짠 것처럼 움직였다. 할아버지는 입구에서 고기를 고르고, 할머니와 나는 팔짱을 낀 채 자리를 골랐다.


밑반찬과 고른 고기가 나오고, 직원분이 오셔서 불을 넣어주실 때까지 할아버지는 포장된 소고기를 접시에 꺼내 먹기 좋게 하나하나 자르고 있었다. 그때 뜨겁고 무거워 보이는 불을 직원분이 가지고 오셨다. 그 직원분은 능숙하게 불판에 불을 넣으며 고기를 자르고 있는 할아버지에게 먹기 좋게 자르시는 거냐며 세심하다고 칭찬 아닌 칭찬을 온도조절이 끝날 때까지 하셨다. 직원분의 말이 끝나자 할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 사람은 항상 이렇게 잘라놓고 본인이 다 구워서 자기는 고기를 구워본 적이 없다며 어깨를 으쓱였다.


요즘 갑자기 1년 전에 신경치료 했던 이가 또 아프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내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게 귀신도 좀비도 아닌 치과인데... 이빨은 초반에 아플 때 가야 하는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증상이 더 심해지기 전에 치과를 가야겠다고 눈물을 머금고 다짐했다. ‘아, 지금 내 이빨이 아프다.’라고 느꼈을 때가 토요일 저녁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픈 이빨로 하루를 더 버텨야 했다.


아팠지만 소중했던 일요일이 지나가고 월요일 오전. 아빠와 함께 치과로 향하는데 갈까 말까를 1000번은 고민했던 것 같다.

1년 전에 신경치료 했을 때 3번 정도 갔었는데 3번 전부 기절하겠다 싶을 정도로 아팠어서 이번 목적지는 전에 갔던 치과가 아닌 다른 동네에 있는 치과를 가기로 했다. 그래도 무섭고 긴장되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여기는 안 아플 거야, 안 아플 거야, 하며 치과로 향했다. 왜 이렇게 빨리 달리는 건지, 운전하는 아빠와 자동차가 괜스레 원망스러웠다.


주차장에 들어가 차를 주차하고 치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너무 긴장하고 있는 나를 보고 아빠는 웃으며 아픈 상태로 오래 방치해놓고 있던 게 아니라서, 치료만 살짝 하고 끝날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날 다독였다.

기다리던 엘리베이터가 도착했고, 엘리베이터는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내 맘도 모르는 엘리베이터는 2층에 도착하자 2층이라고, 도착했다고 밝은 목소리로 떠들어댔다.

긴장하고 예민하니 별 것도 다 신경 쓰인다며 툴툴대고선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가자 문에 달려있던 종들이 띠링~ 하며 울려댔다.


(다음날)

오늘 아침은 간단하게 시리얼로 시작했다. 정신없이 다 먹고 나니 식탁 구석에 있는 아침약을 발견했다. 원래 나는 밥을 먹기 전에 약을 먹는 편이다. 맛있고 배부르게 먹고 나서 먹기 싫은 약을 목구멍에 물과 함께 넘기는 게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아서이다.

약까지 다 먹고 한 손으로는 든든한 배를 어루만지고, 또 한 손으로는 핸드폰을 들고 부엌을 빠져나왔다. 침대에 누워 핸드폰에 충전기를 꽂고 유튜브에 들어간 후 영상을 하나 골라 틀고선 보고 있는데 하품이 연달아 나와 도무지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영상을 끄고 1시간 타이머를 맞춰둔 뒤 꿀 같은 낮잠을 청했다. 선선한 에어컨 바람과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밝기에 이불을 덮고 있으니 지상낙원이 따로 없었다. 잠이 막 들려고 할 때쯤, 핸드폰이 요란한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깜짝 놀라 엎어져 있던 핸드폰을 화면이 보이게 다시 돌려보니 아빠한테 전화가 오고 있었다. 전화를 받으니 내가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도미노 피자를 포장해 집으로 갈 거라고 이야기했고 나는 기쁜 마음으로 아빠를 기다렸다.


아빠의 자동차가 우리 집 마당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자 사무실에 있던 강아지 사랑이와 들레가 마구 짖기 시작했다.

아빠에게서 피자를 받고, 부엌은 너무 더우니 거실에서 먹자는 언니의 말에 동의한 다음, 언니와 나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나는 상을 펴고, 언니는 부엌에서 일회용 장갑과 콜라를 담을 컵을 가져왔다.

오랜만에 먹는 피자는 너무나 꿀맛이었다. 피자를 먹으며 아빠와 언니와 전에 보던 게임 유튜브를 재생시켰다.


피자를 다 먹고 쓰레기도 버리고 상도 깨끗이 치운 다음, 아직 끝나지 않은 게임영상을 마저 봤다.

영상이 끝나고 언니는 소화를 시켜야 한다며 이어폰을 들고 산책을 나갈 준비를 했다. 마침 보던 게임 영상도 끝나 심심해진 나는 언니를 따라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