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고개는 늘상 10도 정도 앞으로 기울어 있다. 생각과 행동이 급해서 머리가 항상 앞서 나간다. 어느 정도 그런 것이 아니라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2, 3분이라도 주시하면 쉽게 발견하는 특징이다. 덕분에 허리에 무리가 되는지 저녁 식사 후에는 허리를 이리저리 돌리거나 위험천만하게 골프채를 휘두르며 허리를 펴 본다고 한다.
연애 시절부터 둘째가 태어나고도 한참은, 보조를 맞추어 주었는데 시간의 덧없음과 더불어, 우리의 걸음걸이는 많은 차이를 낸다. 한 번은 재래시장에 간 적이 있는데 이리저리 둘러보는 호기심 만발한 나를 두고 그는 아주 멀리 앞서가 버렸다. 잠시 그를 찾았는데 보이지 않았다. 또래 중에는 제법 키가 커서 쉽게 눈에 띄었는데 신세대들의 평균 신장을 기억해 두지 않았던 나는 당황했고 인파 속에서 겨우 그를 찾아 뛰어갔다. “제 속도를 고려해 주세요.” 그는 웃으면서 “ 내가 없어질까 봐 놀랐군요, 하하, 알겠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는 약과다. 수십 년 전 러시아 VVO에 주재할 때의 일이다. 후따라야 레치카 바자르라 불리우는 시장에서 열악한 식재료를 사가지고 집에 들어서는데 군인 복장의 경비원이 나를 부르더니 “이거 너의 무쉬(남편) 거다.”라며 아침에 출근할 때 입고간 양복과 셔츠, 구두를 주었다. 오, 주님, 이게 무슨 일인가요? 갓난아기인 둘째를 안고 남편의 옷을 받아 우리가 살던 3층으로 올라가면서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스토리는 이렇다. 남편은 그날도 빨리빨리 모든 것을 해치우는 전투적 스타일로 일과를 보내고 있었고 며칠 동안 오다가 말다가 쌓인 눈이 녹다 말고 얼음이 돼 버린 길에서, 러시아 사람을 배웅하고 나서 돌아설 때 일이 벌어졌다. 아마 중국 무술영화의 어떤 배우처럼 홱 돌아서서 착지하는 흉내를 냈을지도 모른다. 굉장히 빠른 속도로 돌아설 때 인도 표면에 눈이 쌓이고 있었지만, 그 속으로 심해의 물들이 다른 층을 형성하듯, 단단하고 날렵하게 미끌거리는 빙판이 있었던 것이다. 머리로 떨어지지 않고 팔로 짚어 지지했다고 한다.
어린 딸들을 러시아 할머니에게 맡기고 병원에 도착했을 때 그의 팔은 허공으로 들린 채 쇠 막대기가 끼워져 고정되어 있었다. 오른쪽 팔꿈치부터 어깨 사이의 뼈가 완전히 90도로 두 조각 났단다. 근처의 영사관 사람들과 주재원들은 비행기를 태워 서울로 가서 수술받게 해야 하나, 그냥 그곳에서 수술받아야 하나 소집회의까지 했고, 그 상태로 비행기 타는 것은 무리이며, 러시아가 눈이 많이 오고 빙판이 많아서 정형외과가 발달되어 있다는 정보에 따라 현지에서의 수술을 감행하기로 하였다. 다행히 최고 실력의 의사를 만나서 스테인레스 심을 넣는 수술과 1년 뒤에 빼내는 수술을 잘 받고 재활까지 잘 된 상태로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그 도시에 하나밖에 없던 스테인레스 심을 사러 다니던 것과 병원에서 사각거리던 바퀴벌레의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겠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남편의 오른팔 뼈가 부러져 꺾인 X-레이와 수술 후의 일렬로 붙은 X-레이 사진이, 전문가가 아닌 내가 보기에도 아주 모범적으로 잘 되어 담당 주치의가 자신의 저서에 사례로 써도 되겠냐고 허락을 구했고 ‘다(에스)’라고 했다는 것이다. 21세기인 지금 러시아의 어떤 정형외과 전공의들은 남편의 X-레이를 보며 공부하고 있을 것이다.
팔을 들어올리기 힘들었던 잠시 동안 주춤한 것 같았던 걸음걸이 속도는 되돌아간 지 좀 되었다.
“제발 건널목에서 초록불이 켜지면 곧장 건너지 말고 하나, 둘, 셋을 센 다음에 건너기 시작하세요.” “네! 알았어요, 걱정하지 말아요 ” 집을 나설 때 자주 주고받지만 습관을 고치기는 정말 어려운가 보다.
이 또한 최근의 일은 아니지만 무단횡단 범칙급 통지서를 받은 적이 있다. 횡단보도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서 차가 없길래 횡단하던 그를 잠복해 있던 경찰이 불러서 주민등록증을 달라고 했단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보여 주고 ‘OK’ 기한 전에 납부하였다.
“이제 속도를 줄여야 할 나이에요. 천천히 걷고 매사에 같이 기다려야 돼요.”
“네,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오늘도 나는 주문을 걸어본다. “ 제 속도를 고려해 주세요, 조금 천천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