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프가 되고 싶어요

by 크리스틴

“사과 하나 깍아 주세요.“

휘리릭 깎아서 흐트러지지 않게 그릇에 담은 다음 또 무엇을 도울까 물으면 개인 접시와 포크를 식탁에 놓아 달란다. 그리곤

”음악을 들으며 대기해 주세요.“

한다.

계절과 날씨에 맞는 음악에 따라 바뀌는 화면을 보는 사이 그는 커피를 내리고 계란프라이와 발사믹과 아보카도 오일을 잔뜩 묻혀서 먹을 오늘의 빵을 준비한다. 거의 매일 아침의 풍경이다.

결혼 초부터 주방의 주도권이 그에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일찍 출근해서 늦게 퇴근했기 때문에 그나마 조금 빨리 귀가한 내가 준비한 저녁식사를 하곤 하였는데 보통은 9시 뉴스와 함께였다. 결혼 전에 부엌일을 할 기회가 많이 없었던 나는 서툴렀다. 신혼부부의 식생활을 지탱해 준 건 ‘식단과 반찬 365일’과 ‘며느리에게 주는 요리책’이란 선물로 받은 요리책이었다. 초보 주부의 관심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내가 사과를 깎는 것도 한 손에 안 들어간다며 불안해했다.

하루는 그의 둘도 없이 친한 후배를 불러 저녁 식사를 같이하며 잠시 다른 걸 정리하는 사이 목소리가 들렸다.

”ㅇㅇ이가 다른 건 맛있게 하는데 고기 간이 좀 안 맞지?“

아니 뭐라고? 얼굴이 화끈거렸으나 밖으로 내보일 순 없고 속으로 이를 갈았다. 그리하여 쇠고기 한 근에 간장 10스푼, 설탕은 그것의 2분의 1이라는 일반적인 레시피를 터득했고, 단맛이 나는 양파나 파인애플, 키위, 사과나 배 등을 넣을 경우 설탕량을 줄여가면서 갈비찜이나 불고기 맛을 제법 잘 내는 사람으로 칭찬받게 되었다.


그를 안절부절하게 한 확실한 기억이 한 번 더 있는데 러시아에서 현지인들을 초대했을 때의 일이다. 장보기가 많이 어려웠지만 떡 벌어지게 한국식 한상차림을 하였다. ‘음식들이 입에 맞을까?’ 궁금해서 살펴보는데 모두들 미역국을 숟가락으로 뜨는 듯 하더니 후루룩 마셔서 그릇들이 깨끗해진다. ‘너무 잘 끓여졌나 봐!’ 기뻐하며 새 그릇에 미역국을 담아 다시 주욱 돌렸다. 어, 그런데 이번에도 똑같이 미역국을 쭉쭉쭉 들이킨다. ‘어머, 웬일이야?’ 또 한번의 서빙 준비를 하는데 남편이 주방으로 나왔다.

”이봐요, 자기. 저 사람들은 서양식이어서 국을 스프로 생각하고 자꾸 먹는 거에요, 더 가져오지 않아도 돼요.“ ”…….“

잊을 수 없는 해프닝이다.


그가 우리 가족의 세프로 나서게 된 계기는 나의 발목 부상이었다. 어느 주말 같이 길을 걷다가 대로의 움푹 파인 곳에서 발목이 꺾였는데 금방 부어오르고 아팠다. 발목 근처 주상뼈에 금이 갔다고 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정말 말을 안 듣는 담임반 학생들을 다른 이에게 맡길 수 없다는 괜한 책임감에 병가를 내지 않고 깁스한 다리를 끌고 수련 활동까지 다녀왔다. 막 사업을 시작한 남편은 몹시 마음 아파했고 출퇴근을 같이했다. 막중한 책임감과 스트레스와는 달리, 시간을 자율적으로 쓸 수 있어서 내 퇴근 시간 전에 장보기를 했고, 대부분의 날에 요리도 했다. 나는 보조였다.

”이거 다듬어 주세요“

”네, 셒!“

절대 미각을 지닌 그는 불사용도 능숙해서 원시시대에 살았더라면 족장을 했을 거란 돌려 하는 감사의 말에, 어쩐지 비가 안 오면 농사를 어쩌나 하는 왕의 마음이 있다며 좋아하곤 한다.

도전정신이 강한 그의 요리 중 모두를 감동시킨 것은 알리오올리오 파스타였다. 미리 준비됐던 편 썬 마늘을 올리브유로 볶고 스파게티면을 넣어 버무렸는데 엄지척을 받을 만했고, 비법은 며느리에게도 가르쳐 줄 수 없다며 한껏 자신감을 부풀려갔다. 또 다양한 소스를 섞어 고기 양념을 만들어서, 자신도 무엇을 얼마나 넣었는지 모를 때도 있었지만, 맛은 좋았다.

강한 실험정신으로 개발한 정체불명의 음식을 먹어야 할 때도 있었는데 조리된 음식을 보며 곤란해하는 아이들과는 달리 언제나 자신만만하게 권유했다.

”몸에 좋은 재료만 넣은 거야, 다 먹어 봐.“

브로콜리와 미역 줄기를 넣은 된장찌개, 버섯과 반숙을 곁들인 김치찌개, 이런 식이었는데 맛 자체는 무리가 없었지만 비주얼이 식탁 앞의 우리를 당황시키곤 했다. 그리고 늘 재료 준비와 뒷정리에 다른 손이 필요했다. 재료를 다듬고 적당한 크기로 준비해 놓지 않으면, 크게 듬성듬성 손으로 찢거나 썰어진 굉장한 비주얼의 음식을 식탁 앞에서 만나야 했고 어떤 때는 짜장밥의 짜장이 천장까지 튀어 있었다.

그래도 재래시장에서 질 좋은 오이와 상추, 고추 등 각종 재료를 사 오고, 그걸 활용하여 퇴직 전까지 도시락까지 매일 싸 주었다. 정갈하게 정리되지 않아 남 앞에 내놓기 민망한, 도시락통에 어수선하게 섞여 있는 반찬들과 차곡차곡 다양하게 추가된 과일들…… 그래서 그는 내가 정년퇴직하는 날 가족의 이름으로 주는 상장을 받았다. 감동의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잠시 그가 주방에 나올 수 없던 적이 있는데, 코로나에 걸렸을 때였다. 퇴직 직후여서 이때 보답하리란 생각으로 삼시세끼 2주가량 주방을 장악했었는데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철저한 소독과 정성 다한 식단으로 빠르게 가족 전염 없이 지나간 게 감사할 뿐이었다.


최근 어느 날 백화점 지하 식품부에 갔을 때였다. 남편을 보더니 어떤 판매하시는 아줌마가 ‘후또마끼’를 외친다. 늘상 가서 와이프가 좋아한다며 깎아달라고 했단다. 얼마나 자주, 인상적으로 그랬을까 하는 생각에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어느새 슬쩍 주방의 정위치에 선 그는 이것 먹어요, 저거 먹어라 하면서 애절한 눈빛과 강권의 태도를 바꾸려 하질 않는다.

"저거 흐르는 물에 씻어 주세요.“

”네!“

“사과 하나 깍아 주시죠.“

아무래도 그는 세프의 자리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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