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집사 도전기

by 크리스틴

어렸을 때 우리 집은 개판이었다. 바둑이, 도꾸, 메리, 쟈크. 할머니가 키우던 네 마리의 강아지 혹은 개들은 하루 세 번 집게로 집은 개밥그릇을 개집 앞에 놓아주면 꼬리를 사정없이 흔들어댔다. 암캐였던 메리와 아주 어린 강아지였던 쟈크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으나, 나이 많던 바둑이가 하늘로 갔을 때 북받치던 감정과 개장수에게 끌려갔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도꾸의 가출은 어떤 생명체를 기를 수 없는 심리적 조건을 갖게 해 주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다니면서 일할 기회가 있었던 남편은 중앙아시아의 몇 도시를 다녀온 뒤에 먼지 알레르기와 털 알레르기가 생겼었다. 러시아 사람들의 권유에 따라 민간요법을 따랐는데, 무슨 성분인지 알수 없는 석탄 가루처럼 보이는 걸 얼마 동안 약처럼 복용하였다. 지금은 특별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 다행이지만, 피부가 간지러워지던 알레르기의 기억은 남아 있고 털이 날리는 걸 싫어하는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녹색 식물을 바라보는 걸 좋아했지만 화분 한두 개 정도 놓고 보는 정도였는데, 공기정화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되면서부터는 실내에 놓아두면 좋다는 식물을 제법 많이 들이게 되었다. 아예 꽃 시장에 가서 마음먹고 데려온 청고무나무도 있고 거실, 주방, 건조기 위 등 자리를 옮겨가며 십 육년째 가족의 많은 것을 지켜보는 스킨답스도 있다. 식물 키우기에 보람을 느끼게 했던 것은 뱅갈고무나무이다. 마트에서 오천 원에 작은 모종 둘을 사 와서 여러 번 꺾꽂이했다. 분양해서 여러 지인의 집으로도 갔고, 분갈이 후 큰 화분에서 쑥쑥 자랄 때마나 ‘와~“ 소리를 내며 신기해 했다. 둘레가 두꺼워지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청고무나무의 키와 맞먹어서 거실 창 근처에서 바깥을 바라볼 때, 선물로 받은 몇 개의 동서양 난과 조화를 이루며 함께 서있는 느낌을 준다.


그가 식집사로 나서게 된 것은 나의 게으름 때문이디. 주머니를 뒤져 꽃 한 다발 항아리에 꽂아 놓는 낭만은 즐기고 싶으면서도, 분주하고 복잡한 직장생활 업무에 힘을 쏟고 나면, 가사에 쓸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은 날이 대부분이었다. 내 희망과 욕심으로 들여온 화분가꾸기는 그의 몫이 되었다.

아주 열심히 물도 주고 영양제도 주며 잎도 닦아주었다. 분무기로 습도를 조절하는 그에게 하얀 면 수건만 있으면 완벽할 것 같았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라지, 너무 자주 물을 주어 가지와 뿌리가 썩어버려서 흐뭇하게 집 한편을 지키던, 그 자신이 제일 좋아하던 느티나무 화분을 보내버렸다. 화분 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물이 흐르고 넘쳐 마루에 물이 흥건히 고여 바닥을 교체해야 할까 봐 노심초사였다.

“주기 맞춰서 물을 적당히 주시면 좋겠어요.”

“아~ 염려 말아요. ”

물 주기에 이어 가지치기도 문제였다.

“영양이 고르게 가려면, 과감히 가지치기가 필요해서 했어요. 어때요?”

자랑했으나, 아뿔싸! 마치 바리캉을 처음 쓴 사람의 이발처럼 듬성듬성해진 녹색의 식물들……

며칠 전엔 뱅갈고무나무의 키가 너무 커져서 가지치기를 해야겠단다.

“이 가지를 자르는 게 좋을 것 같군.” 고심하며 잘랐는데 하얀 고무액이 뿜어져 나온다. (그가 손을 아예 안 쓰는 건 아니지만) 뒤처리는 나의 몫이다. 그래도 ‘이러다 천장까지 뚫어버리면 어쩌지?’ 하는 생각은 안 하게 되었다.


식집사로서 그의 찬란한 성공에 감탄하며 폰 카메라로 사진 찍어 프사로 삼았던 건 작년이었다. 난 자체는 거의 다 죽은 줄 알고 ‘녹색 잎만 보면 되지.’ 하며 기대하지 않았는데, 만천홍(서양난의 일종)이 옆으로 긴 대를 따라 수줍은 꽃망울로 며칠, 진분홍의 꽃잎을 터뜨리고는 아주 오래 머물러 주었다. 게다가 그 옆에 있던, 언제 받았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동양난에서도 품위 있는 노란 색을 띈 꽃이 피어 입가에 미소가 머물게 해 주었다. 수채화 같은 초록과 연두색의 그라데이션이 조화로운 마리안느도 꽃망울 비슷한 모양을 오래 보여 주었다.

그런데 많이 바빠져서 잠깐 한눈판 사이에 마른 동양난의 꽃대를 그는 과감히 들어내 버렸다. ‘좀 두어 보면 어땠을까?’ 지금은 아쉽고 볼 수 없을 것 같지만, 어느 날 기척 없이 찾아와 주었던 잔잔한 황홀의 기억을 기다려 보게 된다. 과감한 식집사도 그런가 보다. 부지런히 화분을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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