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의 세레나데: 그의 목소리(대화 편)

by 크리스틴

왠 낭만이냐고 물으신다면 뒷목을 잡는 이야기일 수도 있음을 밝히고 싶다.


우리 집 오디오 지분의 50% 이상을 내가 가지고 있다. 남편과 딸은 내가 말이 많다고 하는데 내 입장에서는 그들이 말이 없기 때문에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애쓰는 거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나는 털어놓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가족끼리 모여서 그날 있었던 일들 얘기하고 나누며 기쁨도 나누고 속상함은 삭히는 게 좋다는 나와 달리 가족들은 각자의 어려움을 가족에게 전가시키고 싶어 하지 않는다. 어느 편이 옳은지 단정할 순 없겠으나, 이런 가치의 차이로 쫑알쫑알 떠들고 좋아하고 슬퍼하는 쪽은 언제나 엄마의 역할, 아내의 역할이 되곤 한다. 심지어 나 본인은 진지한데 듣는 이들은 그렇지 않아서 웃기고 만만한 대상으로 등극한 지 오래다. 심리적, 사회학적으로 얕은 단계가 아닌 깊은 단계의 대화를 나누고 싶을 뿐인데…… 소울 메이트가 되는 길은 참 험난하기만 하다.


사실 그의 목소리는 좋은 편이다. 예전 같진 않지만 아직도 말할 때의 중저음 목소리는 신뢰를 줄 만큼 호소력 있게 들린다. 그래서 예전에, 결정해야 할 일이 있을 때마다 논리정연함을 곁들인 그의 목소리에 변주된 의사를 거의 다 따랐고, 이제 와 비밀도 아니지만, 후회하는 것이 있기는 하다.


남성의 목소리에 대해 두 가지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하나는 청각에 예민한 여성의 특성을 그대로 가져서 좋은 목소리에 긍정적 반응을 한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굉장한 대형 스캔들을 터뜨렸던 남자 배우에 대한 것이었다. 다시는 대중 앞에 설 수 없을 것 같은 대형 스캔들을 탁월한 연기력으로 돌파한 것은 남자 배우의 목소리가 매우 좋았기 때문이라고. 작품에 녹아드는 눈빛과 동작들을 받쳐주는 목소리가 ‘그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지금과 다른 결말에 다다랐을 거라고 결론을 내렸었다.


아무튼 그(남편)는 좋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그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좋아하고 즐겨 듣는다. 클래식과 재즈, 히사이시 조의 영화음악, 대중가요와 팝, 라틴음악까지 서치하고 수집하고 준비하고 들으며 들려주고 싶어 한다. 노래도 잘 할 것 같았다.


결혼 전에 노래를 연습해서 불러주겠다던 약속을 30년 넘게 걸려서 몇 년 전에 지켜주었다. 신청곡은 ‘일곱 송이 수선화(Seven Daffodils)’였는데 그의 하나밖에 없는 싱글 트랙에서는 존 레논의 ‘Oh My Love’가 나왔다.


눈부신 아침햇살에 산과 들 눈뜰 때 그 맑은 시냇물 따라 내 마음도 흐르네

가난한 이 마음을 당신께 드리리 황금빛 수선화 일곱 송이를 (일곱 송이 수선화 가사 일부)

대신


Oh my love for the first time in my life My eyes are open ~~

I see the wind, oh I see the tree~~ (Oh my love 가사 일부)


의 노래를 들었다. 성격 급하고 일할 때 저돌적인 추진력으로 한다고들 하지만, 선천적으로는 사색형이며 안으로 안으로 향하던 내향의 시간대를 지날 때에 연습해서 심지어 가늘게 떨면서 부르던 노래… 가사에 주목하는 내게 일곱 송이 수선화’ 보단 못하지만 그래도 괜찮아, 인생 후반부를 같이 살기로 할만 한 이유 하나가 돼 주었다.


좋은 목소리로 노래를 얼만큼 잘 불렀냐고요? 음~ 그는 모든 노래를 트로트풍으로 소화한답니다.


지금은 맡은 역할에 따라 다른 자리에서 예배드리는데, 전에 한 번 예배 시간에 웃음을 참을 수 없었던 적이 있다. 그가 거룩한 찬송가에 뽕끼를 넣어 크게 부르는 소리가 바로 옆에서 크게 들렸기 때문이다. 웃을 수 없어서 배가 아팠는데 이상하게 나도 그 뒤 한동안은 같은 창법으로 찬송가 부르는 마법에 걸렸었고 지금은 돌아왔지만 완전한 지 알 수는 없다,


어릴 때 아버지가 부르시던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를 좋아한다고 해서 공감대 발견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정말로 그가 즐겨 부르는 노래가 일제강점기의 트로트들일 줄은 몰랐다, 코로나 때 집에서 유튜브로 노래방 반주 틀어 노래 부를 때마다 어김없이 ‘귀국선’이란 노래를 부르는 그를 보며 ‘이분은 몇 세기의 인간이신가?’ 쳐다보았으며 아이들은 질색을 하였다. 지금도 그는 한때 즐겨보던 ㅈ 여가수의 음악 유튜브를 가끔 찾아보곤 한다. 쇼스타코비치나 쇼팽 사이 사이, 슈베르트의 세레나데 사이 사이에 말이다.


그가 감상하는 음악 취향과 노래하는 음악 취향은 다른 색깔이다. 그리고 겉으로 드러나는 언행과 내면의 모양도 정말 다르다. 금요일 밤의 세레나데 ‘Oh My Love’에 더 큰 감동의 리액션 날리지 못한 걸 계속 반성하는 나는, 그래도 그에게 오디오 지분을 좀 넘기고 싶다. 질문을 하면 단답형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으니, 너무 어색하고 어렵지만 연습해서 미소를 날리며 부추겨 볼까? 이마에 손을 짚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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