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st is yet to come
아침저녁 창문을 열면 선선한 바람이 허락하지 않아도 들어오고 같은 말을 중얼거린다.
“여름이 가네~.”
뜨거운 여름의 열기를 대하기 쉽지 않았음에도 아쉬움이 있는가 보다. 그리고 가을로 가는 창밖 햇살을 받으며 ‘인디언 썸머’를 생각해 본다. ‘다시 한 번 타오르는 불꽃 같은 시간’이란 의미로 저장된 단어는 쓸쓸한 인디언들의 모습을 데리고 온다. 인디언 썸머라는 말 자체가 인디언 부족에게서 유래했기 때문일까?
먼저 생각나는 인디언은 ‘늑대와 함께 춤을’이란 영화의 주인공이다. 남북전쟁 중 북군 장교였던 그는 서부개척지로 가게 되어 원주민들과 접촉하면서 동화된다. ‘늑대와 함께 춤을’이란 그의 인더언식 이름인데 배경이 된 부족의 땅에서 백인언어로 소통할 수 있는 여주인공 ‘주먹 쥐고 일어서’와 결혼하게 되고, 그를 품어주거나 경계하는 ‘발로 차는 새’, ‘돌 송아지’ ‘머리 속의 바람’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인디언들과 부족의 편에 서서, 자신을 보낸 문명의 군대와 맞서 싸우는 쓸쓸한 고뇌의 인디언이었다.
또 다른 인디언은 호주 시드니 근교 블루마운틴에서 보았던 원주민이다. 사실 오세아니아 대륙은 그들의 것이었는데 다 빼앗기고, 원주민인 에보리진이 많이 모여 사는 시드니의 레드펀은 대표적인 우범지역으로 보고될 만큼 가장 열악하고 처절하게 살아가고 있다. 작은 그랜드캐년으로 소개되는 블루마운틴의 광장 한가운데에 따가운 햇살을 맨살로 맞아가며 디저리두(전통악기)를 길게 불어 연주하는 에보리진이 있었다. 폐활량이 많이 필요한 연주가 끝나면 사람들은 작은 통에 돈을 넣어주었다. 많이 감동적이어서 ‘멋지다.’고 인사하고 싶어 다가갔을 때, 나는 검고 주름진 얼굴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분장으로도 감출 수 없는 눈동자를 마주하였다. 슬펐다! 어떤 언어로도 소통할 수 없었지만 아픔의 감정들이 고스란히 내 마음과 눈에 들어와 아려왔다. 그 이후로 해마다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길목에 닿으면 그날 만났던 애보리진의 아픔이 진하게 떠오른다. 인디언의 얼굴과 연주 멜로디가 아닌 그의 슬픔 자체의 기억이다.
이렇듯 인디언 썸머는 내게 슬픔 중에 피어나는 여름의 열정과 쾌활함으로 읽혀왔다. 그런데 요즘은 불꽃 같은 열정 쪽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되는 것 같다. 한글학교 포함해 약 사십 년을 근무하고 정년퇴직한 지 막 일 년을 넘기고 있는 나는 인디언 썸머의 의미를 다시 설정해 보는 중이다.
직장인 학교 현장 곳곳에서 보람된 기억도 제법 많고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힘들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 좀 거리를 둔 지점에 서 보니 다 감사하다. 모든 하나하나의 순간들이 나를 전보다 강하게 성장시켜 주었음을 깨닫고 확인한다. 직장뿐 아니라 가족과 형제의 일로도, 늘 아끼고 서로 응원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기쁨과 염려가 교차되었다. 그러나 상처가 있으면 어떠한가? 금간 사이사이로 스며든 빛이 그래도 버틸만한 힘을 가진 사람으로 숙성시켜 주고 있는 게 아닐까?
요즈음 외손녀를 돌보는 데에 시간을 쓰면서 일상 패턴이 바뀌고 있다. 버킷 리스트인 글쓰기 시간을 언제로 확보할까 고심 중이지만 아기를 돌보며 웃고, 분유를 먹이며 트림을 시키는 일이 색다른 빛을 선사해 준다. 아기와 딸의 건강을 챙기며 떠들고 웃을 때는 ‘인디언들’이 떠오르지 않는다.
나의 중학교 때 한 선생님은 너희는 지금 무한대의 가능성이 열리는 벌판에 서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 말이 참 좋았다. 가능성이 얼마나 펼쳐졌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제 60의 나이가 넘어 더 큰 가능성의 대지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보다는 확실한 자기 파악이 있으니 새로운 인디언 썸머의 시간을 고대하며 그것이 다가올 때 활짝 꽃을 피워볼 것이다. 인디언들의 아픔도, 문명도, 원시의 자연도, 내게 허락된 시간과 상황 안으로 다 수용하고 안아서 황홀하고 찬란하게 피워낼 인디언 썸머를 기다린다.
The best is yet to c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