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호] 콤플렉스
착하기로 소문난 세 사람이 있었습니다.
평생 자신을 위해서는 사치 한번 해 본 적 없는 소박한 생활에, 손끝이 야무져 살림에 빈틈이 없는 한 엄마. 그리고 그의 착한 아들은 정돈된 생활 속에 모자랄 것 없이 자라, 애정 표현이 많고 통이 큽니다. 그가 최근에 좋아하게 된 여자 친구는 부모의 도움 없이 묵묵히 자라 혼자서 척척 일을 해내는 순둥이입니다.
착하다는 것은 인물을 형용하며 내리는 평가입니다. 착함은 추상적으로 각자의 기준에 맞춰 가늠하는 정성평가에 해당됩니다. 그러면 이 세 사람이 착하다고 하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앞서 수식을 한 말을 살펴보면 엄마에게는 소박함과 살림 재주가 있군요. 그녀의 아들은 표현이 솔직하고 통이 크고요. 그의 여자 친구는 큰 내색 없이 자립해서 어른들에게 효녀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 착한 세 사람의 관계가 시작되려 합니다. 아들이 여자 친구를 좋아하기 시작하면서부터요. 사랑은 대물림된다고 하지요. 아들은 엄마가 자신을 사랑해 준 울타리의 모양대로 친구를 아낍니다. 아들의 울타리는 꽤 넉넉한 데다 최선을 다해 마음을 채우니 사랑이 넘치는 모습이네요. 낯설지만 따뜻한 언어와 제스처로 사랑을 받은 여자 친구가, 이번에는 아들의 엄마에게 마음을 표현해 보려 노력합니다. 착한 사람들의 다정한 굴레가 보기 좋았습니다.
착한 줄 알았는데...
그렇게 착한 사람들의 관계가 생기는가 싶었더니 불협화음도 들립니다. 묵묵한 것은 순식간에 말수가 적어 답답한 것으로 둔갑합니다. 본인의 힘으로 독립한 여자 친구 역시 세심한 타인의 관심이 판단의 자유에 방해가 되나 봅니다. 예상치 못하게, 착한 사람들 사이에 갈등 발생 소지가 보입니다. 그래서 아들이 나서봅니다. 솔직한 아들은 여자 친구가 했던 뒷말을 엄마에게 그대로 전합니다. 엄마는 미주알고주알 촉새같이 말하며 쓸개 간 다 빼줄 것처럼 행동하는 아들에게 실망하고 말지요.
착한 사람들도 싸울까요? 착하다는 세간의 잣대와 자기 성찰의 감옥에 갇혀 이 사람들은 싸울 수도 없습니다. 싸워서 명백히 승부를 겨루려면, 정량화된 수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착한 것은 점수로 매길 수 없어요. 엄마가 평생 자신을 위해서 사치품을 사지 않았다고 백 점을 주는 사람의 주장은 힘이 없습니다. 엄마의 엄마가 살아서 돌아온다면 자신을 위해서 돈을 쓰지 못했다고 빵점을 줄지도 모릅니다. 여자 친구의 묵묵한 말과 행동은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이지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고 씩씩하게 컸다고 효녀라 포장해서는 내면의 상처가 커질 수도 있습니다. 아들의 빈틈없는 표현은 꿀처럼 달콤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독이 되어 마이너스가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이 세상에 착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저도 사실은 무려 사십 년간 거절 못 하는 병을 안은 채 만인에게 착한 사람인 줄 알고 살았습니다. 갑작스레 변해서 성격이 나빠진 것은 아닙니다. 착한 것은 증명하면 할수록 반증이 나오므로 착한 것을 더 이상 주장할 수 없게 된 것뿐입니다. 엄마에게 착한 딸이 되어보려고 한 노력이 동생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고, 예비 올케의 편을 들어보자니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어리석은 딸이 될 수가 있으니 말입니다. 쓰고 보니, 착하다는 것은 상대방의 마음에 전적으로 따른다는 말 같기도 합니다. 이 사람 마음에 따르게 되면 저 사람 마음에는 따르지 못하는 게 되니 착해지려다 괜히 편이 나눠지기도 하는군요.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고 상황마다 평가가 달라지는 ‘착함’에서 벗어나 ‘마음 읽기’에 중점을 둔다면 모든 관계가 더 자유로워질 것 같습니다. 자, 그럼 마음은 과연 헤아릴 수 있는 것인지, 모두가 납득할만한 것인지 정량평가 해보겠습니다.
엄마, 서운했어요? 그랬지. (O)
동생아, 솔직히 말해주고 싶었어? 응, 답답했어. (O)
예비 올케, 표현하는 게 어색하지? ...(O)
마음은 꺼내어 확인할 수 있으며, 주인에게 물어볼 수 있으므로 정확히 헤아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상대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만으로 착하지는 않아도 공감할 줄 아는 믿음직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서운할 수 있지요. 화를 내고 싸운다고 해서 나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는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착해 보이기도 하고 나빠 보이기도 하는 게 아닐까요. 착한 사람이 되려고 너무 애쓰지 마세요. 늘 주변의 기준에 맞춰 착한 사람이 되려다 정작 본인에게 중요한 것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자신의 마음부터 잘 들여다봐야 합니다.
애초에 착한 것은 없으며, 모두에게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며 글을 마치려 합니다. 물론, 내가 내 마음을 잘 읽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산다면 나는 나에게 착한 사람일 수는 있겠지요. 아, 끝까지 착한 사람이 되어보려 미련을 갖는 내 모습을 발견합니다. 여러분에게도 묻습니다.
나는 나에게 착한 사람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