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지 않으려고 한다

[4월호] 콤플렉스

by 강여자


너, 성격 세거든!



"엄마 성격 세지, 언니 세지, 동생 세지, 거기서 내가 명함이나 내밀겠어?"라는 말에 대한 반응이었다. 별 뜻 없이 말했는데 남동생과 남편 두 남자의 반발이 거세다. 재밌는 것은 올케는 바로 고개를 갸웃했다는 것이다. 처음엔 놀랐지만 곧 이해가 되었다. 나는 그들 앞에서 단 한 번도 순순히 고개 숙여 본 적이 없다.



콤플렉스는 어떤 결핍이나, 열등감, 두려움, 욕망 등이 강한 감정과 함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상태라고 한다. 그래서 특정 주제에 민감해지고, 감정적으로 과하게 반응한다. 외모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은 외모 이야기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가난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은 돈 문제에 예민해지는 것이다.



단점이 많이 있지만 그것들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다. 단점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노력해 왔다. 단점이 많은 만큼 장점도 충분하므로 가능하면 장점에 집중한다. 그편이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강 넘길 수 없고 또 콤플렉스인가 싶은 단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내가 남자들과의 싸움에서 절대 지지 않으려 한다는 거다. 그와 대조적으로 여자들과는 싸움 자체를 거의 하지 않는다.



나는 여성에 대한 보호 본능이 있다. 늦은 밤이 아니라도 가능하면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주고, 불필요한 총대를 메거나 싸움에 휘말려 들기도 했다. 반면 남성들은 적대시할 때가 있다.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닌데 뭔가 스위치가 눌러지듯이 그렇게 되고 만다.



나는 삼 남매 중의 둘째로 위로 언니, 아래로 남동생이 있다. 우리 엄마는 구 남매 맏이인데 딸이라는 이유로 이름이'여자'가 되었다. 그런 시대에 태어나 엄마에게도 남아 선호의 사상이 자연스레 대물림되었다. 게다가 나는 둘째 딸. 언니가 장녀라는 이유로, 남동생이 장남이라는 의미로 특별했던 것과 달리 나는 너무나 보통의 존재였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 남동생과 셋이 살 때였다. 유난히 좋아하는 이불이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자고 일어나면 동생 방에 가있는 거다. 동생은 가져가지 않았고, 필요도 없다고 했지만 며칠 동안 계속 이불이 사라졌다. 그 이불을 꼭 써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엄마는 시치미를 뚝 뗐다.



하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었겠는가. 그 사랑에 차등이 있다고. 하지만 나는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가장 좋은 것은 아빠를 위해 따로 챙겨두던 엄마였다. 가족 사진의 맨 위에 아빠 사진을 두려 한다던가, 최근 통화 목록의 맨 위에 동생이 있길 원하는 엄마를 나는 맨눈으로 바라보았다. 동생은 어느새 엄마의 마음속에서 부재하는 아빠의 빈자리를 채워 넣고 있었다.



오래 전부터 엄마는 당신은 남녀 차별을 하지 않는다고, 자식들 모두 똑같이 사랑한다고 자주 언급했다. 하지만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모두를 똑같이 사랑한다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고, 사랑에도 서열이 있다는 것을. 나는 모른척하는 쪽을 택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디 제 뜻대로 되던가.



문제는 그것이 상흔이 되었다는 것이다. 엄마의 사랑에 층위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자라면서 알게 모르게 쌓인 감정이 틈만 나면 표출되었다. 나는 남자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했다. 그다지 승부욕이 없는 성향에 비추어보면 이상한 일이다.



그러는 사이 입버릇처럼 '남자아이가' 외쳤던 동생에게도 어느새 딸이 둘 생겼다. 그가 가족을 사랑하는 방식은 내 눈에는 너무 유난스럽다, 어렵고 힘든 일은 남자가 하는 거라며 여자들은 아예 짐을 못 들게 하거나, 음식물 쓰레기는 손도 못 대게 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어떤 장면을 떠올리곤 한다.



엄마는 '하나는 업고 하나는 걸리고, 하나는 목에 걸고'라는 표현을 자주 쓰셨다. 아이 셋을 그렇게 붙들고 다니는 엄마. 혹은 양손에 짐을 가득 들고 아이들을 챙기며 걷는 엄마. 그리고 빈손으로 앞장서 가던 아빠. 동생이 짐을 양손에 주렁주렁 들고 가는 모습은 묘하게 엄마와 닮아 있다. 다른 점은 작고 예쁜 핸드백을 멘 올케가 아이 둘을 챙겨서 먼저 가는 것.



아빠가 된 동생을 보는 것은 묘한 일이었다.



결혼 전, 동생과 몇 년 간 둘이 지내면서 정말 많이 싸웠다. 우리는 누구 하나 논쟁에서 물러나는 법이 없었다. 결혼 후에도 그랬다. 가족이 으레 그렇듯이 우리에겐 얽힌 역사도, 감정도 많다. 하지만 나는 늘 결국 내가 이길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전날 그렇게 물고 뜯고 치사하게 싸워놓고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가족을 품어야 한다면서 너그럽지 못했던 자신을 반성하는 동생의 태도 때문이었다. 나는 그 점을 항상 어이없게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진심임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를 좋아했다. 나의 장점과 단점을 잘 알듯이 그의 장점과 단점 역시 잘 알았다. 내가 도무지 참아줄 수 없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내가 유난히 좋아하는 그의 선함 때문에 나 자신을 어리석게 생각할 때도 많다.



그동안 지독하게 싸워 온 두 남자가 이 지구상에서 내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남자들이기 때문이다. 내게 이런 스위치가 없다면 (아니, 차라리 그들이 여자였다면) 그들을 오롯이 사랑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집 안에서건 밖에서건 차별받았다고 느끼지 않았다면, 싸우는데 시간을 좀 덜 썼을 텐데. 내가 물려받은 문화적 유산이 무엇인지 가끔 한탄스럽다.



다행인 것은 그 지난한 싸움을 거쳐 이제는 내 감정의 실체를 조금 알 것 같다. 세상이 여성과 남성에 관한 이런저런 논쟁에 휩싸여 있을 때도 나는 오로지 나에게 유효한 두 남자와의 관계 속에서 싸움을 이어왔다. 사실 나는 지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무조건 이기고 싶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타당한 이유가 있을 때만 이기고 싶다.



나는 이제야 들을 준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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