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그 선명함에 대하여

[4월호] 콤플렉스

by 최소소
시력이 안 나오네요.
일주일 정도는 렌즈 빼고
안경만 쓰다 오세요.


안경사의 덤덤한 말투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부쩍 눈곱이 자주 생기고 부옇게 보였으며, 눈이 건조하다 느끼던 참이었다. 슬슬 렌즈를 바꿀 때가 되었나 싶어 집 근처 안경점에 들렀다가 시력측정이 안될 정도로 눈이 나빠졌다는 소리를 듣고야 만 것이다. 렌즈 없이 출근이라니 일주일이나 이 못생긴 안경을 얹고 다녀야 한다니 마주한 현실에 암담했다. 안경이 제법 잘 어울린다는 소리도 종종 듣고 다녔지만 그래도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다. 렌즈 위에 안경을 멋내기용으로 낀다면 모를까. 정성껏 화장을 하고 그 위에 안경을 얹는 일은 공들여 양치하고 귤을 먹는 거마냥 찝찝한 일이었다. 안경만 쓰면 제아무리 공들여 화장을 해도 안경테 안으로 갇힌 시야만큼 이상하게 내 마음도 옹졸하게 움츠러들곤 했다. 그렇게 '안경 쓴 나'를 견디며 출근한 지 사흘째 되던 날, 평소 아버지처럼 따뜻하게 챙겨주시던 직장 상사분이 슬쩍 말을 건네셨다.


"라식 한번 해보는 게 어때? 회사 지원도 되니까 이번 기회에 안경 벗어봐."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그 길로 일사천리 수술 예약이 잡혔다. 금요일 퇴근 후 수술대에 올랐고, 주말 내내 어둠 속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 나는 안경 없이 세상을 마주하며 출근했다. 세상은 놀라울 정도로 선명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내 눈앞에 손가락을 흔들며 시력 테스트를 자처했고 나 역시 자다 깨서 머리맡의 안경을 더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아이처럼 신이 났다. 누워서 TV를 볼 수 있는 자유, 라면 먹다가 김이 서리지 않는 쾌적함. 그 소소한 재미와 편안함에 취해 며칠을 보냈다.


퇴근 후 평소처럼 샤워를 하러 들어간 날이었다. 욕실 거울 속에는 낯선 이가 서 있었다. 거울에 서린 김을 손바닥으로 쓱쓱 밀어 걷어내고 나니 차가운 거울 너머로 마주한 나의 민얼굴. 안경 렌즈의 왜곡과 흐릿한 시력 뒤로 적당히 타협하며 숨겨왔던 잡티, 모공, 그리고 보이고 싶지 않았던 실루엣들이 고화질 화면처럼 적나라하게 쏟아져 들어왔다.
'세상 사람들은 그동안 나를 이렇게나 선명하게 보고 있었던 걸까?'
경악에 가까운 당혹감이 밀려왔다. 안경을 썼을 땐 세상이 나를 못생기게 볼까 봐 움츠러들었는데 정작 눈이 좋아지고 나니 나는 이전보다 더 작아져 있었다. 내 눈이 좋아진 만큼, 내가 나를 검열하는 잣대의 해상도 역시 1.5로 높아져 버린 것이다.


한동안은 거울을 봐도 힐끗 보는 둥 마는 둥 했고 사람들과 눈이라도 마주칠까 봐 시선 둘 곳을 애써 찾아 헤매기도 했다. 렌즈를 껴도 가끔은 잘 안 보이는 눈으로, 아는 사람을 보고도 몰라보고 지나칠까 두려웠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때는 그 한 사람의 잣대만 두려웠다면, 지금은 길에서 마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 모습이 어떻게 비칠지가 더 두렵게만 느껴졌다. 1.5라는 숫자가 주는 선명함은 예상보다 훨씬 더 무거웠다.


그 선명함에 익숙해질 때쯤 나의 겁도 사그라들었다. 그 선명함이 영원하지 않을 줄 알았더라면 그깟 타인 시선에 몸을 사리기보다 더 밝고 아름다운 것에 시선을 두고 즐기기나 할 것을. 웃프게도 출산을 기점으로 나는 다시 1.0에 못 미치는 적당히 선명하고 적당히 흐린 눈을 가지게 되었다. 그때 내 눈이 좋아진 진짜 이유는 나를 정교하게 검열하기 위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나의 '초점'을 어디에 맞추느냐의 문제였다. 내가 초점을 아주 조금만 바깥으로 돌리면, 거기엔 눈부신 햇살이 있었 나를 향해 웃어주는 다정한 눈매가 있었으며 길가에 핀 이름 모를 작은 꽃들의 세밀한 결이 있었다. 그동안 흐릿해서 놓치고 살았던 세상의 다른 것들에 제대로 초점을 맞추기 위한 시간들은 오로지 거울 속의 나의 결점을 향해서만 과도하게 맞춰져 있었다. 모두의 시야가 1.5는 아닐 것이다. 설령 1.5라 할지라도 그들이 나의 단점에만 초점을 맞추고 살 만큼 한가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저 모두가 적당히 선명하고 적당히 흐린 눈으로 집을 나선다. 나를 향한 초점은 조금 느슨하게, 그리고 세상을 향한 초점은 조금 더 다정하고 세밀하게 맞춘 채로. 잘 보이고 안 보이고가 아니라, 내가 어디를 보느냐에 따라 나의 세계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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