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호] 콤플렉스
“편리함으로 가정과 직장,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멀티탭. 하지만 멀티탭으로 인한 화재사고는 매년 늘고 있다. 그래서 멀티탭의 정격 용량을 확인하고, 고용량 가전제품을 멀티탭에 여러 개 꽂아 과부하가 생기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오늘도 내 멀티탭엔 빈자리가 없다. 글쓰기, 스터디, 연설 원고, 인간관계, 자기 관리, 그리고 엄마라는 이름의 코드… 하나라도 빼면 큰일이 날 것 같은 불안함에 나는 오늘도 코드를 뽑는 대신 과부하를 견디며, '중년의 열정'이라는 새 코드를 꽂을 자리를 찾느라 쩔쩔맨다.
연설 원고를 붙잡고 째려본다고 글자 하나 절로 써지지도 않건만 노트북 화면을 뚫어져라 노려본다. '이걸 내가 왜 시작했을까' 싶으면서도 쉽사리 덮지 못한다. 그런 내 모습 위로, 밖에서는 긍정 에너지가 넘치는 연설을 마치고 돌아와 아이에게 짜증 섞인 한마디를 참지 못한 내 모습이 겹쳐진다. 잘하고 싶어 켤 때마다 전압이 휘청거린다. 꽂을 자리가 없는데도 꾸역꾸역 어댑터를 추가하며 내가 진짜 두려워했던 건, 전원이 꺼지는 것이 아니라 꺼진 전등 아래 드러날 나의 초라함이었다.
나에게는 '뭐든 잘 해내 보이고 싶다'는 고약한 콤플렉스가 있다. 이 콤플렉스는 나를 몰아넣어 과부하가 오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코드를 꽂게 만든다. 이 중 하나의 코드라도 뽑는 순간, 나는 나 자신에게 지독하게 실망할 준비가 되어 있다. 어느 날은 정말로 퓨즈가 타버린 듯 모든 게 멈춰버리는 상상을 한다. 칠흑 같은 어둠. 그 막막한 정적 속에서 가장 먼저 차오르는 건 해방감이 아니라 지독한 불안감일 것이다.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하는 나는 과연 누구일까. 나를 움직이는 건 열정이 아니라, 이렇게나 후진 나를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절박한 방어기제인지도 모른다. 빛이 흐려질까 봐 나는 더 세게 플러그를 눌러 꽂는다. 과부하로 멀티탭이 뜨거워질수록 내 몸과 마음은 타들어가지만, 역설적으로 그 열기가 살아있다는 유일한 증거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젠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과부하는 내가 열심히 살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라, 나를 너무 몰아세우고 있다는 비명이라는 것을. 결국 내 멀티탭이 뜨거워진 이유는 이토록 후진 나를 견디지 못하는 나의 자격지심이었다.
나는 여전히 코드를 뽑지 못하고, 여전히 잘 해내고 싶어 안달하며, 여전히 나 자신에게 실망할까 봐 두렵다. 다만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구석구석 환하고 완벽하게 밝힐 빛이 아니라, 그저 부드럽게 어루만져 줄 따스한 온기가 아닐까. 밝진 않아도 빛은 어디까지나 빛인 법. 그러니까,
후진 나, 대충 퉁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