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타주

[5월호] 얼굴

by 오아린

문득 떠오르면 그렸다. 수학 문제를 풀고 난 연습장에 공간이 남으면 어김없이 등장하던 남자였다. 소리도 색채도 없는 독서실에 그는 때때로 책상 위로 나타나 내 머리를 쓰다듬거나 어깨를 토닥여주기도 했다.


얼굴이 없었지만, 표정은 그려졌다. 늘 웃고 있어 다정한 사람이었다. 키는 나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컸고, 어깨도 넓었다. 남자는 연상이라서 씩씩하고 때로는 장난기가 있었다. 빈 얼굴에는 여러 상이 끼어들었다. 처음에는 유명한 외국영화 속 주인공이, 조금 현실을 깨달은 후에는 국내 발라드 가수로, 사회생활을 할 때쯤에는 일반인 외모에 가까운 만화가의 모습으로 변했다.


남편을 처음 봤을 때 이상형이라고 확신했다. 무수히 그려본 네모진 턱과 세모난 코, 반달 모양으로 웃는 입과 눈이 그에게 있었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것은 아니었다. 희미한 선들이 오히려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부드러운 목소리는 몽타주를 그리던 내 손을 멈추게 했다.




본 것을 그리라 하면 쉬울 것인데, 나는 계속하여 보지 못한 것을 보고 싶어 했다. 나와 그를 닮을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몹시 궁금했었다. 두 사람의 사진을 합성해서 2세의 얼굴을 보여주는 어플을 써보았다. 진하고 희미한 두 얼굴의 합은 강단이 있으면서도 순해 보이는 유아의 얼굴로 그려졌다.


가상의 이미지는 첫 아이를 가진 산모의 마음을 들뜨게 했었나 보다. 실제 뱃속 태아의 모습을 입체초음파 사진으로 받아봤을 때는 솔직히 걱정이 되었다. 눈은 감긴 채로 부어있고, 코는 눌렸으며, 이가 없는 입이 수상했다. 미완의 얼굴에 실망한 철없는 예비맘은 태동을 느낄 때마다 엄마다운 얼굴을 갖추었다. 출산을 끝낸 산모와 세상에 태어난 아기가 하루하루 부기가 빠져 원래의 윤곽을 되찾을 때쯤 비로소 안심했었다. 너는 부모를 쏙 빼닮은 아이구나. 공식대로 나왔으니, 애초에 가상의 이미지를 그릴 필요도 없었다. 가족은 유전자의 틀 안에서 모두 비슷하게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또 그려보게 된다. 한 배에서 나고 함께 자랐으니 분명히 본 적이 있는, 그러나 기억나지 않는 얼굴이다. 분명 나와 비슷하게 생겼을 것이고, 부모님 얼굴의 윤곽 안에서 생겨졌을 남자아이. 나보다 세 살 위라고 했는데. 참 잘생겼었다고 했던가. 그리 순하다고 했었던가. 그러나 그의 몽타주를 그려볼 수 있는 기억이, 질문이 내게는 없다. 현상을 수배하려고 인상을 물어보면 기억을 가진 자들은 눈물부터 보일 것이다. 나는 그릴 수도 그리지 않을 수도 없다.




여섯 살이 된 둘째 아이가 유치원 쉬는 시간에 색종이에 그린 그림을 보여준다. 이제 쓸 줄 알게 된 '엄마 사랑해' 글자 아래 네모나고 동그란 사람들이 있다. 이건 아빠고, 이건 엄마, 이건 형아야 라고 말해준다. 가슴이 따뜻해지다 한편으로 서늘해진다.


어린아이였던 내 오라버니도 아빠와 엄마, 그리고 여동생의 얼굴을 그렸을 텐데. 삐뚤삐뚤한 아이의 그림은 과연 몽타주가 될 수 있을까. 그러니까 앞으로도 나는 당신을, 당신은 우리를 알아볼 수 있을까.


지켜진 기억으로 내 사람들을 있는 힘껏 그러안아본다. 연필 끝으로, 초음파로 그린 선과 면은 입체가 되었다. 이제는 키보드를 두드려 그려본다. 언젠가 완성될 눈, 코, 입은 나에게 어떤 눈빛을, 숨결을, 단어를 전할까.


태어난 이유를 묻는다면, 사랑하고 싶어서라고 답한다. 나는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을 그리며 산다. 보고 있어도 그리운, 볼 수 없어서 더 그리게 되는 얼굴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