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5월호] 얼굴

by 구기자

몇 년 전 일이다. 대학동기 단톡방에 올라온 기사에는 동기 중 한 명의 얼굴이 환하게 찍혀있었다. 2학년까지 같은 과였던 그 친구는 나랑 꽤 자주 어울려 다녔다. 우리는 수시로 술잔에 웃음도 붓고, 울음도 따랐고, 밤이슬을 맞을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그이는 다른 지역의 학교로 편입하고 나 역시 취업 준비로 몇 년간 영 소식이 뜸했는데, 접한 첫 소식이 산업재해 피해자 중 한 명이라는 것이다. 어디에서든 그럭저럭 잘 살고 있는 줄만 알았는데 몇 년 만의 첫 소식이 실명이라니, 황망했다. 내 핸드폰에 여전히 저장되어 있는 그 친구의 연락처만 띄워놓고 연락을 해서 뭐라고 해야 하나, 혹시 내 연락이 더 상처를 주진 않을까, 본인 입으로 직접 듣지 않은 근황을 함부로 입에 담아도 되나 여러 가지 생각으로 복잡했다. 기사 속 사진에는 말갛게 웃는 모습이 참 예쁜, 내가 기억하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망설이기만 하던 것이 몇 주, 낯선 번호로 걸려 온 전화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 기자야, 나야, ○○. 잘 지내지?


세상에. ○○야, 너 이제 괜찮아 진거야? 내가 소식 전해 듣고 얼마나 놀랬는지 몰라. 전화는 얼마나 하고 싶었다고. 그래, 그럴 리 없다고 나 생각했잖아.

라는 말이 입술 끝에까지 걸린 순간,


- 기자야, 나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니?


벌린 입술을 곧 닫았다. 그녀는 작업장 내 사용되던 화학약품으로 시신경이 녹아서 이식 수술도 불가능한, 완전 실명 상태라고 했다. 나는 네게 뭐라고 해야 할까. 연락은 반갑고도 슬펐다. 내가 해야 할 말은 위로일까, 아니면 놀라움일까. 그도 아니면 이렇게라도 연락이 되어서 반갑다일까… 해야 할 말을 찾지 못해 횡설수설하는 나에게 그녀는 오히려 연락이 되어서 반갑다고, 근처 병원에 입원해 있으니 조만간 보자는 말을 하고 끊었다. 다음날 부리나케 병실에서 만난 그녀는 마지막으로 봤을 때 얼굴 그대로였다. 뽀오얀 얼굴에 속눈썹은 유난히 길어 그윽한 눈에 담긴 다정한 인사. 직접 보고서도 내 눈을 의심했다. 너는 이렇게나 그대로인데 앞으로 영영 볼 수 없다니.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만 수백 번 했건만, 보자마자 친구의 얼굴이 일렁일렁거렸다. 눈물이 그렁그렁 찼다.


- 기자야, 너는 목소리가 그대로다. 얼굴도 그대로겠지, 그럴 것 같아.


나는 이미 세월로 꽤나 달라진 얼굴이건만 친구 기억 속에는 나는 영원히 이십 대 초반 싱그러운 모습 그대로 이리라. 그저 ‘너도 그대로야, 참 예뻐.’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지만 사실이었다. 여고생 같은 단발머리에 꽂아 넣은 핀까지. 친구는 내가 기억하던 그 얼굴, 그대로였다. 바뀐 것은, 실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할 말을 찾지 못해 뱅뱅 맴도는 나와 달리, 눈이 보이지 않아 불편한 점보다는 눈이 보이지 않아서 생긴 에피소드를 웃으며 말하는 그녀는 얼굴도, 이십 대의 싱싱함까지 그대로였다. 시간이 날 때마다 오리라 약속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야기 동무가 되는 것뿐이라 한 달에 두세 번씩은 꼭꼭 갔다. 눈이 보이지 않아도 그녀는 매번 말끔한 얼굴에 동그란 눈은 언제나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녀는 시신경을 복구시키는 의술이 언젠가는 발명될 것이라며 희망을 노래했다. 때때로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깜박할 정도로 친구의 얼굴에는 조금의 구김도, 절망도 없었다.

그러던 중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나는 조금 바빠졌고, 그녀는 퇴원하여 본가로 돌아가 생활하게 되었다. 가끔 전화는 했지만, 예전만큼 만나진 못하며 또다시 연락은 뜸해졌다. 운명이란 때론 얼마나 잔인하던가. 아이 하교를 기다리며 훑어보던 SNS의 알고리즘은... 화학약품은 그녀의 시신경뿐만 아니라, 뇌까지 손을 뻗쳤나 보다. 뇌졸중이었다. 친구의 마지막 얼굴을 나는 또다시 누군가로 인해 대신 보게 되었다. 부정도 할 수 없게 환한 얼굴을 담은 영정 사진이 또렷이 찍혀 있었다. 피해보상 시위와 치료를 위해 서울로 올라간다는 소식이 마지막이었는데, 나는 네 마지막 얼굴을 내 눈에 직접 담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또다시 너의 얼굴을 나는 죄책감으로 맞이해야 했다.

그녀의 마지막 소식을 들은 후로 삼 년이 지났다. 우리가 안 지는 이십 년이 지났다. 이상하게 나는 너를 생각하면 병실에서의 마지막 얼굴보다, 학교 안 벚나무 아래 봄비처럼 흩날리던 벚꽃 잎 사이에 서 있는 모습이 자꾸만 떠오른다. 너는 영원히 내 기억 속에서 싱그럽고 앳된 얼굴 그대로일 것이다. 내가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도 너는 내게 영원히 스무 살이다. 나는 이제 네 얼굴을 떠올릴 때 괴로워만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나 밝게 웃던 네 얼굴을 죄책감 때문에 지우려는 것이 네게 더 미안할 일인 걸 알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면서 오랜만에 너의 얼굴을 다시 떠올린다. 그리고 네가 나를 나의 가장 빛났던 얼굴로 기억하듯이, 나 역시 네가 가장 빛났던 얼굴로 기억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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