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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리셋하다

당신의 아몬드는 안녕하십니까?

by 리플로우

운동을 하고 싶지만, 우린 알고 있다. 내 시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24시간은 광속 페달을 밟은 것처럼 돌아간다. 끝도 시작도 없는 반복의 연속에서 아무리 빛내고 광을 내도 티 안 나는 실패의 경험이 쌓이고 또 쌓이면, 성취감도 사라지고 자신감도 행방불명된다.

성취감을 회복하고자 올해는 큰 마음먹고 헬스클럽에 등록한 사람도 초기엔 각성하며 운동하지만, 어느 날 천국의 계단을 하다가 정말 노란(?) 천국을 본 사람은 슬슬 운동 시간이 다가올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한다.


'다음에 하자. 다음에 두 배로 운동하자.'

'어제 많이 뛰었으니, 오늘 하루 정도는 쉬어도 괜찮아.'


운동은 다음에 해도 되고, 하루쯤 쉬어도 상관없다.

그러나 문제는 다음과 같은 생각이 우리 마음을 지배할 때이다.


'내가 그렇지, 뭐.'

'이 나이에 살 빼서 뭐 해.'

'배가 나온 것은 인격이야. 나이 들어 살이 없으면 진짜 없어 보여.' 등.


이 생각의 근원은 불안과 두려움이다.

다이어트나 운동에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일종의 기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이다. 처음에 마음먹은 목표가 결국 실패할까 봐, 그 모습을 들킬까 봐 조마조마하고, 다이어트를 한다고 결심해도 정작 불안은 뇌에서 단 것과 짠 것, 그리고 기름진 것의 탐식으로 경로를 안내하고 있으니, 유혹을 못 참고 먹는다. 결국 탐식 뒤에는 자기 비하로 이어진다.

뇌과학에 따르면, 두려움은 뇌의 편도체에서 활성화된다. 이곳은 우리의 감정과 기억을 담당한다. 생김새가 아몬드 같아서 편도체(Amygdala)는 아몬드(amygdalē)와 소리가 같다. 이것은 작고 타원형에 대뇌의 측두엽(temporal lobe) 깊숙한 곳에 쌍으로 존재한다. 대략 1~2cm 정도의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감정, 기억, 공포 반응 등 뇌의 핵심 기능을 담당한다. 편도체는 두려움이나 공포로부터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작동하는데, 이 반응이 매우 과할 경우 불쾌한 생각이 자주 떠오르고 우울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편도체가 과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지속적인 불면과 스트레스 때문이다.

나는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일을 하면서 불면증에 시달렸다. 불면증은 몸의 상태를 가라앉히고, 이를 해결하고자 단맛의 탄수화물 중독을 일으켰다. 탄수화물은 빠르게 우리 몸에 흡수되어 혈당을 높이고 포만감을 준다. 나이가 들면 이 루틴이 살찌는 지름길이다.

왜 적게 먹어도 살이 찔까? 왜 기분이 늘 안 좋고 피곤할까? 왜 아침이면 손발이 부을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건넸을 때 그 원인이 지속적인 스트레스와 불면증으로 인한 탄수화물 중독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이것은 가공 식품의 영양 성분표를 유심히 들여다보면서 깨닫게 된 것이다. 간혹 불면증을 해소하기 위해 먹은 가공 식품은 대부분 정제 탄수화물 덩어리였던 것!


DALL·E 2025-03-15 09.59.03 - A fun and imaginative digital illustration of the amygdala as two animated almond-shaped characters sitting deep inside a glowing brain. One amygdala .jpg 스트레스와 불면은 우리 감정과 신체에 막대한 영향을 준다(Dall-E)


나는 다이어트를 하면서 식품 성분표를 비교하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평소 잠을 잘 자는지, 스트레스 해소는 잘하고 있는지, 불안한 감정, 우울하거나 가라앉는 기분은 언제 나타나는지 체크했다.

이때 주변인(가족도 포함) 중에 습관적으로 외모를 평가하고 질 낮은 대화를 이어가는 사람과의 관계를 차단했다. 대신 함께 운동하고, 성취감을 주는 사람을 가까이했으며, 어깨와 목, 눈에 힘이 들어가는 자세를 고쳐나갔다. 이중 자세 교정이 가장 힘들다. 뿐만 아니라, 각종 뉴스와 사건사고로 가득한 유해 정보를 차단했다. 이 과정에서 대화 내용에 참여할 수 없는 문제가 종종 발생하지만, 내 몸이 더 소중하니 타인과의 대화에서 제외된다고한들 그리 서운할 필요도 없었다. 처음부터 큰 목표를 세우지 않는 대신 온전히 아래 질문을 스스로 던지며 다음과 같이 답했다.


'왜? 나를 위해서, 내 건강을 위해서, 갱년기로 숨이 차고 땀이 나고 불면증으로 고통받기 싫어서.'
'어떻게? 용기를 내어 정한 시간에 정한 분량의'
'무엇을? 운동과 식이 조절을'

'한다. 그냥 한다.'

나는 풀잎처럼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한다.

눈을 뜨면 살아있고, 눈을 감으면 죽어있다. 그러니까 가장 행복하고 건강한 하루를 내게 꼭 선사하자.
최근엔 지자체마다 걷기 앱을 내려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앱에 쌓인 포인트는 지역 화폐처럼 쓰이기도 하고, 이웃에게 기부도 가능하다. 비가 오고 미세먼지가 심한 날엔 실내에서 걷기 앱을 켜고 제자리에서 걷는다.

걷다가 무릎과 팔이 동시에 올라가 스텝이 꼬이기도 하지만, 그러면 어떤가? 내 아몬드가 안녕하면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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