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강아지든 고양이든 키울 일이 없을 줄 알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고 했던가,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집에는 두 살도 채 되지 않은 강아지가 오늘도 소파 아래서 자그마한 돼지뼈를 정신없이 물어뜯고 있었다.
가족 중에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는 동생밖에 없어서, 여담이지만, 겉으로 보기엔 절대 그럴 것 같지 않아도 의외로 마음 만큼은 따뜻한 녀석이라고 생각한다.(나와는 다르게) 아무튼,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 강아지가 같이 살고 있게 되었다는 태평스런 이야기.
동생과 내가 모두 성인이 되고서는 집 안은 언제나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기본적으로 감돌고 있었고 동생이 예전부터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했을 때는 당연하게도 모두가 반대했다. 그러나, 끝내 못이겨 결국 태어난 지 두 달 정도 지난 강아지가 처음 오게 되었을 때는 모두의 관심이 온통 이 녀석에게 집중되어 분위기는 환하게 밝아졌고 눈에 띄게 웃을 일도 많아졌다. 이런 모습으로 미루어보아 나중에 둘 중 누구라도 결혼해서 손주를 데리고 오는 날이면 이런 분위기가 되는 걸까, 하고는 미리 짐작해보며 동생과 나는 고개를 끄덕끄덕 거렸다. 비록 강아지이긴 해도 아기가 집 안에 있다는 건, 언제나 특유의 신선하고 밝은 기운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그러나 강아지라고는 해도, 역시 아기이고 체구도 엄청나게 작다 보니 이것 저것 신경쓰이는 것들이 여간 많은 게 아니었다. 단적인 예로, 처음 녀석이 왔을 때는 손바닥 안에 네 발이 전부 들어갈 정도로 작아서, 행여나 걷는 중에 미처 아래를 살피지 못해 발에 체이거나 밟히거나 할 것 같아 많이 신경이 쓰였었다. 실제로 몇 번인가 이리저리 체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눈치가 생긴 건지 알아서 요리조리 잘 피하는 걸 보면 새삼 성장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고 해야할까, 지금은 물론 처음 왔을 때에 비해 덩치도 조금 커져서 살짝 체여도 뻥뻥 나가떨어지진 않지만.
작은 체구로 어찌나 뛰는 걸 좋아하는지, 좀처럼 얌전하고 도도하게 걷는 모습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작은만큼 민첩하기도 해서 손으로 장난이라도 칠 때면 관심 없는 척 고개를 반쯤 옆으로 돌리고 있다가 잠깐 방심한 틈을 타 잽싸게 낚아채는 걸 보면 확실히 보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도 장난기가 발동해서 이리저리 속여가며 놀리곤 했는데 이제는 좀처럼 통하지 않는다.
게다가 눈치도 엄청나게 빨라서 사고를 쳤거나 하면 잽싸게 도망가서 숨어버린다.
그러나 이랬던 녀석이 지금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 게을러져 버렸다. 일례로 일광욕을 엄청 좋아한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되었다. 주말 오후 쯤에 맑은 날, 창가의 화초들 옆에 볕이 잘드는 곳으로 푹신한 침대라도 옮겨주면, 전날 술판을 거하게 벌인 사람같은 표정을 하고는 벌러덩 누위서 좀처럼 일어날 생각을 하질 않는다.
바로 누워있다가 조금 지나면 다시 몸을 살짝 옆으로 뉘여, 옆쪽의 털들을 보송보송하게 건조시킨다. 그리고는 조금 전까지 뜯던 뼈를 다시금 입에 물고 이리 저리 돌려가며 물어 뜯다가 어느 순간 눈을 스르르 감는다. 해가 적당히 기울어 침대에서 볕이 사라질때까지 입에 여전히 돼지뼈를 물고 있는 채로 졸기도 하고 다시 뼈의 반대쪽을 물어뜯다가 몸을 반대로 돌려 뉘인 채로 다시 잠들고의 반복.
뭐──, 개인적으로는 굳이 강아지에게까지 부지런함을 요구할 필요하는 없고, 덤으로 귀찮게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녀석이 조금 더 게을러지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바보같은 이야기지만, 가만히 보면 종종 강아지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따스한 햇볕아래서 새하얀 털을 보송보송하게 건조시키며 옆으로 누위 돼지뼈를 뜯는 건 대체 어떤 기분일지 너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다. 얼마나 행복하면 저런 표정으로 주위에서 무슨 소리가 나도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귀만 쫑긋거리며 오로지 눈 앞의 뼈다귀에만 집중할 수가 있는 걸까.
모처럼 한가했던 주말 오후에──, 통닭 한 마리를 시켜두고는 아주 오랜만에 커다란 텔레비전에 플레이스테이션을 연결해 게임을 즐기다가, 잠깐 쉬면서 축 늘어진 강아지를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잠깐 옆에 몸을 뉘여 팔로 고개를 받친 채로 지켜보다보니 햇볕아래 거실 바닥에서 그대로 잠들어버려, 눈이 뜨였을 때는 강아지가 품 속에 파고들어 둥글게 똬리를 틀고는 고개만 내민 채 팔을 핥고 있었다.
아아──,이런 햇볕아래 잠들었던 게 얼마만인지,
지난 봄에 근교의 수목원에서 사람들이 없는 구석 쪽에 적당한 그늘 아래 돗자리를 펴고 준비한 도시락을 순식간에 뚝딱 해치우고는 몇 시간인가 세상 모르게 잠들어 버렸다. 뉘엿뉘엿 해가 질 무렵이 되어서야 조금 쌀쌀해진 바람결에 깨어나야 했다.
주변엔 풀냄새로 가득했고 적당한 그늘을 만들어준 나뭇잎 사이로 노을 빛이 새어들었다. 풍경도 풍경대로 볼만했지만, 깨어났을 때는 어째서인지 고민하던 문제의 해결 방향에 대한 결심이 굳어진 상태였다.
침대처럼 푹신한 잠자리는 아니었고, 실제로 일어났을 때는 튀어나온 돌부리들 덕에 몸의 이곳 저곳이 아프기도 했지만 그건 그것대로 운치있는 하루였다고 생각한다. 나름대로의 매력있는 휴가였다. 실제로 탁한 도시의 공기로 가득 차있던 몸 속을 다시금 맑은 공기로 채워 넣은 청량한 느낌.
'돌아가서 좋은 꿈을 꾸기 위해서야──' 라고 말했었다. 여기서의 좋은 꿈이란 비단 잠들며 빠져드는 그것 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 나갈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한 선명한 윤곽, 그리고 뚜렷한 방향.
물론 주말 오후에 숲에서 나태함을 즐기는 걸로 명쾌한 해답 같은 건 떠오르지 않겠지만, 반대로 종종 이렇게 다른 풍경 속에서 잠들거나 하는 것만으로도 사소하게는 많은 것들이 다르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의 삶을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볼 수 있다던가 하는 점들은 지금 스스로의 상황과 처한 문제, 해결 방법 등에 대한 부분을 조금 더 냉정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물론 이렇게 말해도 와닿지 않을 테니 풍경 속에 감정을 덜어내고 지긋이 당면한 문제를 응시하는 것이 어떤 건지, 역시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요컨대, 내면의 작은 톱니바퀴가 도는 속도가 변하는 것 만으로도 커다란 바퀴는 상당히 큰 영향을 받는다. 조금 속도를 늦춰──, 가끔씩 나태하게, 당분간은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것처럼 하루쯤은 늘어지는 것도 많은 생각을 이끌어 낼 수 있다.
'그래──. 굳이 지금 이 시점에 이렇게 빨리 돌릴 필요는 없잖아. 빨리 돌면 돌수록 마모되는 시점만 빨라져. 그렇게 자주 교체하다보면 금방 재고가 바닥나게 되지.'
그리고 그게 어떤 결과로 나타나는가, 에 대한 부분은 글쎄, 올해 마지막 즈음에는 확인할 수 있을테니 조바심 낼 필요가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 그나저나 강아지로 산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역시 한숨을 푹푹 내뱉으며 매일매일 쉬는 것도 지겹고 지친다고 이야기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