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에 대하여

by 겨울색하늘

지난주 비가 며칠 내리더니, 금방 온도는 내려가 다시 쌀쌀해진 어느 초봄. 어느 날 문득 올려다본 하늘의 윤기 없는 모습이 마치 힘없이 구겨져 버린 화선지처럼, 군데군데 드리워진 그림자가 눈물자국 같다고 문득 생각이 들었다. 먹구름이 잔뜩, 이윽고 왈칵 쏟아낼 것 같은 표정으로 아래를 보고 있는 것 같아, 저 높은 곳에서 잔뜩 눈물이 고인 채로 아래를 내려다보는 건 무슨 기분일까. 언젠가의 내가 생각나 피식 하고는 발걸음을 재촉했던 어느 목요일의 퇴근 길.

날씨는 지난 주의 소나기를 마지막으로, 쭉쭉 떨어지는 기온과 하루가 다르게 쌀쌀해지는 바람은 봄이나 여름같은 건 안중에도 없다는 듯, 곧 있으면 가울로 건너뛸 것 같은 기세로 급변하고 있었다. 베토벤의 템페스트가 위태롭게 울리는 듯한 착각. 이어폰으로는 하루 지난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짧았던 토요일이 지나고 오랜만에 만난 대학 동기와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아주 오래전에 얘기했던 재능에 대한 게 다시금 화제로 떠올랐다. 신입생때 세부 전공을 선택하면서부터 지금까지도 끝없이 이어져 오고 있는 고민, 재능에 대하여.

재능이라는 건 무엇일까. 언젠가의 대화에서 나는, "결과적으로 지금 당장 능숙하게 해낼 수 있는 게 재능이라고 생각해," 라고 말했다. 불과 십 년도 지나지 않은, 대학교 1학년 때의 이야기다. 지금 당장 능숙하게 해내고 있는 일. 그래──, 말은 잘한다. 생각해보니 그때도 달변이었다. 지금도 그런 관점에서라면 사회 각 곳에는 그곳에 맞는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뭐──, 크게 다르지는 않다. 재능이라는 건 근본적으로 현재, 그러니까 지금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잘했던 것도, 미래에 잘할 수 있는 것도 모두 현재가 이어주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게 아닐까. 인간의 재능이라는 건, 태어나는 시점에 염색체로부터 정의되는 성별처럼 영구불변의 것이 아니니까, 있던 것도 사라질 수 있고, 없던 것도 생겨날 수 있는 불가사의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태어났다가 성인이 되면서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리는 경우, 그러니까 유망하다고 모두가 기대했던 어린 운동선수가 성장하며 점점 기록이 엉망이 되어버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고, 또는 혜성처럼 등장한 신예가 감탄할 만한 실력과 성장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다. 아니면 처음부터 끝까지 첨부적인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해서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경우라든지. 요컨대 모차르트 같은.

모차르트는 여섯 살 때 K1을 작곡했고 두 해 뒤에 제1교향곡을 여행 중에 작곡했다고 한다. 말 그대로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천재였다. 음악적 재능이 어린 시절부터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흘러 넘쳤고, 그럴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유감없이 재능을 발휘해 고전주의 음악에서 손꼽히는 작곡가로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으니, 그 재능이야말로 반박할 수 없는 천재의 것이다.

일반적으로 재능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천재들의 그것을 떠올리는 건, 아마도 그런 사람들의 에피소드가 인상깊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 시절에 그런 천재들에 대한 위인전 한 번 쯤은 읽어봤을 테니까. 한 마디로,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접해온 재능이라 부르는 허들이 너무 높게 설정되어 있다. 저건 천재라고 불릴 수준의 재능임을 감안한다면, 일반적인 재능이라는 건, 어쩌면 타인의 눈에 쉽게 발견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본인조차도 모르고 지나갈 수 있다. 일반의 재능을 재능으로써 확신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꾸준한 시도와 실패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런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어린 시절에 위인대백과를 읽은 시점에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차라리 위인전 따위보다 텔레비전에서 종종 보이는 소소한 성공담을 보는 게 조금 더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여담이지만, 그런 면에서 위인전이라는 건, 어린 시절에 절대로 글자 그대로 읽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여하튼 재능을 찾기 위한 노력이라는 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꽤나 고단할 지도 모른다. 그저 이쪽저쪽 조금씩 찔러보는 것만으로는 판단하기 어려울 것이다. 재능도 역시 결과로 판단할 수 밖에 없으니까, 어떤 분야에서 재능을 판별할만한 결과물을 내놓을 때까지 상당한 시간과 노력, 시행착오가 필요할 것이고, 그렇게 빚어낸 몇 가지 결과물로 판단한 재능의 유무가 얼마나 신뢰도가 있는지 되물었을 때, 그 판단은 얼마나 믿을 수 있는 걸까? 실상 그다지 믿을 만한 결과는 아니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즉, 재능이라는 건 큰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그럼에도 굳이 재능이라는 말의 의미를 찾아야만 한다면,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어떤 일을 시도히는 누군가에게 ‘너 꽤 재능있는 것 같아’라는 말 한 마디로 의욕을 고취시킬 수 있는 정도의 의미랄까, 이제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대학교 신입생이었던 스무살의 내가 이야기했던 재능이라는 건, 요컨대 그런 정도의 의미였지 않았을까. 조금 더 자주 칭찬을 받아왔던 분야. 되돌아보니 화학이 재미있었지만 언제나 물리가 성적이 더 좋았다는 결과. 문학은 재미도 없었고 성적도 엉망이었지만, 수학은 재미있었고 성적도 그나마 가장 꾸준히 괜찮았었다. 그렇게 선택한 기계공학의 끝에 연구원이 되어있지만, 지금은 취미로 글을 쓰고 독서도 즐기고 있다. 전공에 관련된 직업은 선택했지만 정작 수학 공식은 거의 잊어버렸다고 할 만큼 기억이 희미하다.

아아──, 정말이지 인생이라는 건 일단 살고 볼 일이다. 고등학생 시절, 평균 점수를 다 깎아먹을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던 문학 성적에, 세종대왕이 싫다고까지 말했었던 내가 읽고 쓰는 걸 취미로 갖다니, 미래에 대해서는 아무도 속단할 수 없다는 게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가.


여하튼 결국 재능이라고 말하는 것의 정체는 본질적으로 끈기와 인내, 그리고 집중의 다른 표현인 것으로, 결국 다시 제자리걸음을 한 셈이다.

그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과거의 우리가 어떤 재능이 있었는 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건 지금의 우리와는 다른 사람이니까, 지금의 내가 이어주지 못했다면, 그 재능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

지금 당장 내가 몰두할 수 있는 것에 대하여,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미미한 재능으로 여기까지 잘도 욌구나, 싶지만서도 보통의 재능이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단명하는 천재의 삶보다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도 든다고 할까. 천부적인 재능이라는 건, 물론 있으면 그만한 축복도 없겠지만 없다고 실망할 필요가 전혀 없을지도. 실제로 그런 것 없이 하루하루 잘 살고 있는 주변의 대부분을 봐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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