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창 밖으로 보이던 단풍이 어느새 앙상한 가지만 남겨둔 채 낙엽이 되어있었다. 그렇게 부스러기가 된 가을의 흔적들이 하늬바람에 흩어지는 익숙한 초겨울 풍경. 새벽 내내 허공을 채웠던 개구리의 울음 소리가 어느새부터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러고보면 올해 마지막 매미울음소리를 언제 들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아, 시간이라는 건 의식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10월에는 아이가 태어나, 새로운 가족이 하나 늘었다. 그리고 12월이 된 지금, 한여름의 개구리를 대신해 매일 밤마다 울음 소리로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어째서인지는 모르지만 신생아는 신생아만 알 수 있는 사정이라는 게 있는 모양이다.
요즘은 매일 밤에 잠깐이나마 기도를 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혼자였던 그 시절과는 다르게 이제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만들고 아이까지 태어난 지금, 더 이상 평온이라는 건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게 되어버렸다. 내 손이 닿지 않는 순간과 영역에서, 사고라고 할만한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매일 기도한다.
기도라고 해봤자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다. 그저 주기도문과 성모송, 영광송을 작은 소리로 읇조릴 뿐이며 아주 잠깐이면 되기 때문에 잠들기 전에 십자가 형태로 성호를 긋고 영광송 끝에 스스로에게 하고싶은 이야기를 멋대로 할 뿐이다.
개인적으로 영광송 기도문의 마지막 부분은 울림이 컸던 부분이라 내면 깊숙한 곳에 또렷하게 각인이 되어, 꼭 기도할 때가 아니더라도 종종 머리 속에 떠올리곤 한다. 그리고 기도를 할 때면 주기도문으로 시작해 영광송으로,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기도를 마친다.
저 짧은 문구 속에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모두 포함되어 있고, 그건 모두 같은 걸 의미하고 있다. 과거에 그랬듯 지금도, 그리고 미래도 그러할 것이라고 흔들리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건 마치 자기암시와도 같아서, 이 기도문을 외우게 되는 시점은 공교롭게도 언제나 가장 격렬하게 흔들리고 있을 시점이다. 본래 기도라는 건 원래 그런 것이라, 가장 위태로운 순간에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뜻대로 잘 되지 않는 순간에 약간의 힘을 보태고자 하는 것이다.
기도의 끝에는 언제나 감사의 기도가 화답한다. 그 순간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작은 소리로 읇조린 몇 마디의 기도문 덕분이었다고, 어디서 어떤 힘이 마지막 순간에 나를 지탱해준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꼭 하게 된다.
비슷한 의미로 좋아하는 문구가 하나 더 있다. 저녁하늘의 종이비행기라는 노래 가사의 일부인데, 어쩐지 뉘앙스가 영광송의 마지막 문구와 비슷하다.
처음의 마음이 한결같기를 시간이 지나가도 언제나 변치않기를 좀더 좀더 지금보다 강해지는 내가 되기를 시련이 닥쳐도 언제나 이겨내기를 조금의 자만심도 내안에 사라지기를 좀더 좀더 오늘보다 당당하기를
나는 이 노래를 거의 중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한 곡 반복으로 자주 들었고 지금도 종종 듣는다. 정말 지겨울 정도로 들었지만 아직도 플레이리스트에는 이 노래들이 포함되어 있다. 뭔가 이노래를 듣고 있으면 소년시절의 내가 정글짐 꼭대기에 걸터 앉아서 석양을 바라보며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풍경이 연상되지만 돌이켜보면 실제로 그렇게 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럼 어째서 정글짐이냐고 물어도 그 시절에 내가 놀이터에서 가장 높게 올라갈 수 있었던 곳이 정글짐 꼭대기였던 게 막연하게 떠올랐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다.
이야기한 김에 조금 더 얘기하자면 가요중에서도 몇 곡이 있는데, SES의 달리기에서,
단 한 가지 약속은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것 끝난 뒤엔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쉴 수 있다는 걸
이 부분도 좋아하는데 마치 지금을 견디고 나면 달콤한 휴식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희망을 주기 때문이다. 물론 현실과는 다르지만 알면서도 지금을 견뎌내기 위해 스스로를 속이는 이런 가사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오르막길에서,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그 곳은 넓지 않아서 우린 결국 만나 오른다면
이 부분도 좋아하는데, 지금 이 가파른 오르막길 끝에 펼쳐진 내려다본 풍경과, 그 꼭대기의 공기는 다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게 한다. 사실 지금 이 오르막은 끝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어느 시점에 뒤를 돌아보면 '이만큼이나 올라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드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문구들을 수집하는 건 그저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스스로를 바꾸기 위함도 분명히 있다. 이 문구들은 마음 속에 선명하게 새겨져 항상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격려한다.
이렇게 고작 몇 마디의 문구를 귀에 꽃아넣는 것만으로도 사람이라는 건 이정도로 마음가짐이 달라지게 되는 걸 보면, 어린 시절에 좌우명이라던가 하는 것들이 마냥 쓸모없는 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