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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의 연금술사 Feb 18. 2022

운수 좋은 휴가

월급날, 로스터가 나오는 날, 그리고 휴가.

이 세 가지는 승무원들이 가장 설레며 기다리는 날이 아닐까 싶다.


승무원들 또한 한 부류의 직장인이기에, 월급날을 기다리는 것은 당연지사이고, 다음 한 달의 운명이 결정되는 로스터가 나오는 날 또한 손꼽아 기다린다.

이날은 복권이나 사은품 당첨 발표 마냥 기대하게 되는 날인데 (다음 달에 가고 싶은 취항지나 오프 날짜를 10개 비딩 할 수 있기 때문에 약간 복권의 느낌이 나기는 한다.) 하지만 인생사 당연히 그렇듯, 복권이나 로스터나 내 맘대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걸 알면서 매번 기대하고 있는 나를 보고 있자면 스스로가 참 웃프다.)


휴가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아주 중요한 날인데, 우리 회사는 1년에 30일을 휴가로 준다. 최소 5일 단위씩 끊어서 사용할 수 있고, 앞뒤로 오프 신청도 가능하기에 운이 좋으면 엄청 긴 휴가를 즐길 수 있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상반기에 하반기 휴가를 신청하기 때문에 휴가 계획을 미리, 매우 미리 짜야한다.)




작년에 한국 설날에 맞춰 휴가 신청을 했는데, 운 좋게 원하는 날짜를 받게 되었고, 또 운 좋게 5일의 오프가 붙어서 무려 17일 정도의 긴 휴가가 생겼다.

로스터에 나온 5일의 추가 오프를 보자마자 나는 소리를 질러대며 좋아했고, 안 그래도 격리로 인해 걱정이 많았었는데, 이젠 시간도 충분하겠다, 한국에 가기로 결심을 하고 가족들에게 연락을 했다. 그러고는 신나게 격리 기간 동안과 격리 후의 휴가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그랬다. 운수 좋았던 나의 휴가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1월 말에 미국행 비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다음날 일찍 PCR도 받고, 짐도 싸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두어 번 자다 깨다 하니 한국에 도착했고, 부모님이 데리러 와주셔서 편하게 집까지 왔다. 이튿날 다시 PCR을 받고, 집에서 뒹굴뒹굴하며 한국에 온 것을 즐기고 있었는데... 휴가다운 휴가는 딱 거기까지였다.


다음날부터 연이어 터진 가족들의 코로나 확진에, 우리 집은 삽시간에 쑥대밭이 되었고, 보건소에서 걸려 오는 전화들과 주변 사람들의 안부 확인 전화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부모님께서 하루 차이로 연달아 확진이 되시고, 나는 해외에서 입국 경우라서, 뭔가 상황도 복잡했다.)


며칠 뒤에는 언니까지 확진이 되어서, 정말 거의 열흘 넘게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사실 비행을 하면서 비행기에서 확진자가 나와서 비행 후에 격리된 적도 있고, 주변 지인들이 코로나에 걸린 경우도 많이 봤지만, 내 가족이 직접 걸리니 상황이 너무 심각하게 다가왔다. 남의 얘기인 줄만 알았는데, 전염병의 무서움을 여실히 느끼게 되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한국에서의 코로나 확진자 수가 점점 급증해서, 부모님이 격리 해제가 되실 때 즈음에는 격리 절차가 간소해졌다. 이 와중에 해외 입국자 및 밀접 접촉자로 분류되었던 나는 여러 번의 이어진 PCR 검사에도 꿋꿋이 음성 결과를 받았고, 코로나를 피해 결국 휴가가 다 끝나기도 전에 카타르로 돌아왔다.


은 휴가 기간 동안 정리를 하고, 휴가 뒤에 있던 미국 비행에서 시험이 있어서 공부하고, (3개월마다 한 번씩 기내 안전 및 서비스, 기내 물품 등에 관한 지식을 평가하는 비행이다.) 평가가 있던 미국 비행까지 끝내고 정신 차려보니 오늘, 벌써 2월의 중순이다.




분명 한국에 다녀온 것 같은데, 갇혀서 잠만 자고 티비만 실컷 보다 온 것 같다. 그래도 오랜만에 티비에서 한국어가 잔뜩 나오니 좋았다. (개인적으로 내가 한국에 있구나를 실감하게 되는 순간 중 하나는 티비를 켤 때이다. 광고랑 티비프로에서 한국어 나올 때!!!)


아무튼 그렇게 길고도 짧았던 나의 휴가는 이렇게 막을 내렸고, 다행히 가족들도 모두 후유증 없이 다 나았다.




인천공항에서 입국하면서부터, 코로나 전염 예방을 위해 노력하시는 수많은 분들을 만났다.

공항 검역관님들, 입국 절차를 도와주시는 군인 분들, 청소와 소독해 주시는 분들, 방역 택시 기사님들 및 방역 대중교통 탑승을 도와주시는 분들, 보건소에서 검사 및 전화로 안내해 주시는 모든 분들...  어디를 가든지 마스크를 착용한 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수많은 분들.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전염병이기에 완전히 피해 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다들 노력하고 있기에 조만간 우리는 꼭 다시 일상을 회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코로나로 인해 공항에서부터 보건소까지 수많은 도움을 받으며 한국을 다녀와보니, 새삼 모든 분들이 너무너무 수고하고 계신다는 것이 느껴졌고, 뒤늦게 마나 감사의 말을 꼭 전하고 싶었다.


오늘 하루도 마스크를 쓰고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하루를 보내신 모든 분들, 방역과 검역에 수고하시는 분들, 코로나로 인해 고생 중이신 모든 분들께 큰 소리로 말하고 싶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다들 힘내세요!"




나의 운수 좋았던 새해맞이 한국행은 이렇게 허무하게 끝이 나버렸다.

그리고 엊그제... 또 다른 휴가 비딩 결과가 나왔다.

와우. 이번에는 추석맞이 비딩이 성공했다.


이번 추석에는 운수 좋은 날 2탄을 찍지 않기를.


나도 명절을 가족과 함께 보내고 싶다.

코로나야! 물렀거라!!!



*이전 이야기* https://brunch.co.kr/@a7lchemist/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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