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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의 연금술사 Dec 22. 2021

영어 못하는 사람이 외항사에 취업하면 일어나는 일1

정답은 3글자. X고생.

결론부터 말하자. 진짜 고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으로 깡으로! 도전정신으로! 극복해 보겠다면, Go ahead :)

말리지는 않겠다.


세상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는 법이니,

이 무모한 도전에 따르는 단점은 엄.청.난 스트레스이고, 장점은 어마어마한 속도로 느는 영어실력이다.


흔히들 말하길, 언어 실력은 계단처럼 는다고들 하던데,

이건 뭐 계단이 아니라 거의 에스컬레이터 급의 속도를 맛볼 수 있다.

단, 매일매일 마주하는 식은땀 나는 순간들은 한동안 감당하시길. (땀일까.. 눈물일까…)


(물론 카타르에 와서 영어 실력이 더 줄었다고 하시는 분들도 꽤 있는 편이다.

그분들은 대부분 외국 경험이 있거나/영어실력이 좋은 케이스인데, 나는 뭐 원체 0인 상태로 들어와서 컴플레인할 것도 없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 지경까지 되었는가.


핑곗거리를 좀 찾아보자면,

첫째는 영어에 관한 나의 안일한 태도였고, (그 당시 졸업요건/회사 지원 토익 최소점만 넘으면 되겠지-라는)

둘째는 나의 전공이 제2외국어라서 (현재는 그 언어가 내 머릿속에서 거의 소멸된 상태이기에, 구태여 어떤 언어인지는 밝히지 않겠다.) 영어를 멀리했다. 대학교 때는 그 언어가 참 좋았다.

사실 지금도 읽고 쓸 수 있으나, 문법과 단어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공부했던 게 아까워서 슬슬 다시 공부해 볼까 생각 중이다.

셋째는, 영어를 그렇게 배울 절실한 이유가 없었다. (영어회화학원을 잠깐 다닌 적도 있지만, 수업 시간에만 잠깐 영어를 하고, 문을 나오는 순간 한국어를 사용하니, 그다지 효과도 없었던 것 같다.)




하늘이 도와 국비지원 지상직 반에 들어가게 된 나는(자세한 이야기는 전 편을 참고) 교육을 받는 동안 선생님들과 오빠 언니들의 도움으로 나만의 인터뷰 답변을 만들어갔고, 그걸 정말 교육  기간 동안 달달달 외웠다. 연습을 얼마나 했는지, 나중에는 서로의 답변을 대신 대답할 수 있을 정도였다.


나의 영어실력은 여전히 좋지 않았지만, 일단 몇 달간 공부하고 외워둔 답변들이 있기에, 그걸로 인터뷰를 보게 되었고, 합격하게 되었다.


무지해서 용감했던 나의 여정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그 후 실질적인 문제들이 닥치기 시작했다.


우선, 외항사에 합격했으므로 합격 통지 및 비자 발급, 입사에 관련된 모든 메일들이 영어로 날아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메일 하나의 양도 어마어마했고, 가끔은 답변을 보내야 하는 것도 있었다. 이 문제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차근차근 해결해 갔다.


그렇게 나는 카타르에 도착하였고, 도착 후 일주일 안에 일어난 딱 3가지의 사건으로 각성하고 영어 공부를 시작하게 되는데...


첫째는 카타르에 도착한 날, 공항에서 잃어버린 나의 짐가방을 찾기 위해 통역사를 자청해 준 동기 언니를 본 순간이었다. (거의 17시간 뒤에 찾긴 했다. 가방을 찾기까지 언니가 진짜 많이 많이 도와줬다.) 언니에게 너무 미안하고, 내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던 하루였다.


둘째는 물을 사야 하는데,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나 자신을 보는 순간이었다.

(카타르는 물에 석회질 성분이 많아서, 다들 식수를 사 마시는데, 한국의 정수기 통만 한 사이즈를 구매하거나 아니면 1.5L짜리 페트병 6병이 묶여있는 한 팩을 구매한다.)

물이 Water인 건 알겠으나, 이걸 도대체 뭐라고 주문을 해야 하는지 눈앞이 깜깜했다.

언니들이 나를 위해 적어준 물 주문용 영어 쪽지를 보며, 다시 한번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


세 번째는 신입사원 교육 첫째 날, 트레이너를 비롯한 다국적의 신입사원들의 영어를 듣던 순간이다.

평소 미국 영어에만 익숙해져 있던 내 귀에, 세상 온갖 악센트가 섞인 영어가 들려오니, 이건 무슨 언어인가 싶었다. (그나마 듣는 귀는 좀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내 귀에 들려오는 건 영어가 아니었다.)

게다가 속도는 또 얼마나 빠른지, 그간 내가 배운 영어들은 한국식 배려 영어였음을 여실히 깨달았다.

수업의 반도 채 알아듣지 못한 채, 트레이닝 내내 눈치로 언니들의 노트를 베껴 적으면서, 나는 다짐했다.

이렇게는 살 수 없다. 정신 차리자. 공부하자.


그날부터 나는 하루에 7-8시간의 트레이닝을 듣고, 트레이닝이 끝나면 숙소로 돌아와서 그날 나간 진도에 대해서 모르는 영어 단어를 전부 다 찾기 시작했다. 무식한 방법이지만, 내가 모르는 기본 영어 단어들과 항공영어가 섞여있는 책을 이해하려면 그 방법밖에는 없었다. 문법적으로 모르는 것은 언니들에게 물어가면서, 그렇게 한 달을 공부했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으로 인해 몸무게는 점점 줄어갔고, 가져왔던 옷들이 죄다 헐렁해졌다. (내 인생에서 가장 말랐던 시절이었다.) 나의 1차 목표는 트레이닝 과정의 모든 시험에서 살아남는 것이었고, 그렇게 정신없이 한 달이 흘러갔다.



*이전 이야기*  https://brunch.co.kr/@a7lchemist/1

*다음 이야기*  https://brunch.co.kr/@a7lchemist/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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