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이라는 ‘기회’를 내 돈 주고 내가 샀습니다.
나의 직장 특성상 육아휴직을 오래하면 승진에서 자동 배제가 된다. 경력이 승진 점수에 반영된다. 소수점 점수로도 당락이 좌우되는데 경력 점수가 없다는 건 이미 틀렸다는 소리.
“OO이 이번에 부장 됐대.”
동기들이 부장을 달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기분이 요상하다. 그래도 나는 육아휴직을 내야 한다. 그런 상황을 안 제부는 유독 안타까워했다.
“처형도 유능한 인재인데 승진에서 완전히 배제된다는 건 너무 안타까운 선택이야.”
방법이 없었다. 남편 따라 온 낯선 곳, 아이를 맡길 곳이래야 등하원 조차 맡길 데가 없었다. 이 동네는 아이돌보미도, 베이비시터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낯가림이 유독 심한 아이를 억지로 어린이집에, 베이비시터에게 맡길 수도 없었다.
‘그래도 애가 먼저지.’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해가 갈수록 현실은 현실이었다. 그래도 남들과 다른 내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리고 내 연봉 다 주고 산 육아휴직을 경력, 승진이나 걱정하면서 보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건 내 연봉 주고 시간을 산거야!’
생각을 고쳐먹었다. 휴직이라는 시간은 직장맘이 잠시 전업맘으로 살아갈 수 있는 한정된 시간이다. 직장인이 유일하게 ‘돈으로 시간을 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하루하루를 정말 열심히도 살았다. 아토피가 있는 아이 덕분에 하루 삼시 세끼 다 해먹이고, 낯가림이 심해 남의 집 대문 앞에도 안 가는 아이 덕분에 가정 보육 독박육아를 했다. 아이가 조금 크고 하루 생활 패턴이 잡히니 이 시간을 더 소중하게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OO는 X억을 모았는데 그 돈으로 산 집이 2배로 올랐대.”
경력, 승진은 일찌감치 포기했는데 경제적인 문제는 더 현실이었다. 나는 당장 아이 내복 5천원짜리 사겠다고 손품, 발품 팔고 죄다 중고물품으로 육아하고 있는데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든다.
‘핫딜 찾아다닐 시간에 경제 공부를 해야겠다.’
현실에 부딪쳐 경제 공부를 시작했다. 다른 세상이 보였다.
‘나는 지금까지 월급, 직장만 알던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이미 다른 사람들은 월급 외의 투자 소득에도 관심을 두고 있었다. 단지, 나에게 말을 하지 않았을 뿐.
이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를 두고 직장에 나갈 자신은 없었지만 휴직 동안 경제 공부를 할 수는 있겠다 싶었다. 꼬박 1년을 매진한 것 같다. 아이가 잠자는 시간에 책을 읽고, 강의를 들었다. 이제 흐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에게 또 다른 세상의 문이 열리고 기회의 문이 열렸다.
육아 휴직은 나에게 어마어마한 무형의 가치를 선물했다. 유형의 가치로 따지자면, 육아휴직 동안의 연봉, 그 이후의 월급 상승분 차액, 경력 기간 등 분명 어마어마한 마이너스이다. 하지만 무형의 가치로 따진다면 연봉의 가치를 훨씬 상회하고도 남는 무한의 가치가 숨어 있었다.
아이와 함께 할 시간을 얻었다는 것 외, 내 자신에게도 가치는 있었다.
‘새로운 도전과 내 자신의 가능성 발견’
휴직으로 인해 유형의 가치 손실로 마음이 어지럽다면 ‘무형의 가치’에 조금 더 집중해 보길 권한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육아 휴직 중에 얻은 무형의 가치 중 하나다.
육아휴직 기간 동안 ‘어느 한 기관의 부속품’이 아니라 ‘내 스스로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삶’을 경험했다. 직장이라는 굴레에 갇혀 다른 세상을 모르고 살 뻔 했다. 육아 휴직을 선택할 때에도 그 굴레가 나를 힘들게 했다. 가진 것을 놓지 않고 싶은 마음, 육아로 인해 나의 미래 가능성을 닫아버리고 싶지 않은 마음.
이제는 굳이 직장에 매이지 않더라도 다른 길도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철모를 시절 가지게 된 직업보다 ‘나를 더 행복하게 하는 일을 찾을 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엿보았다. 진짜 젊음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졌나보다.
또 다른 한 가지 무형의 소득은 남들과 비교를 덜 하게 되었다. 승진, 경력, 아이들 학력보다 내 위치에서 내가 나아갈 방향에 더 관심이 많다.
놓치고 싶지 않아 손에 꽉 쥐고 있을 때는 오히려 자유롭지 못했는데 놓아버리고 나니 저절로 자유가 찾아왔다.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며 살았던가! 각종 시험과 수많은 평가들. 이제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가질 수 없으니 자유로워졌다. 자유로워지니 더 많은 가능성의 문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진정한 나’로 살아가고 싶다면 휴직을 권한다. 그리고 부지런히 탐색해보자. 육아라는 건 나 자신을 완전히 잃는 것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나를 제대로 찾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남들이 가치 있다고 하는 것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보자. 다시금 진짜 가치를 생각해 볼 기회이다.
그 어떤 일이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꾸준히 해나갈 힘이 있고, 포기하지 않고 해나가다 보면 결국 결과는 보일 것이다. 이런 경험들은 아이들의 진로를 결정하는 데에도 조금 더 열린 시각으로 바라봐 줄 수 있을 것 같다. 내 삶을 사랑하고 세상살이에 예리한 관찰력과 통찰력을 기르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내는 사람에게는 언젠가 가능성의 문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