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의 생산과 판단 - 11장

무한한 생산의 파도 속에서 우리가 지켜내야 할 의미들에 대하여

by 박지원

11장. 가속은 멈추지 않는다, 다만 층위가 나뉜다


이 글은 결코 인공지능이 만든 이 과잉의 환경에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인공지능 사용을 줄입시다"라거나 "옛날로 돌아갑시다"라고 주장하지 않아요. 판단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지도 않고, 멈춤을 강요하지도 않지요. 왜냐하면 이 세상의 가속은 앞으로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의 발전은 계속될 것이고, 생산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며, 콘텐츠의 양은 더 늘어날 것입니다. 과잉은 이제 우리의 기본 조건이 되었고 시스템은 그 위에서 아주 안정적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이 흐름 안에서 안정을 누릴 것이고 그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 될 것입니다.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대로 소비하고, 시스템이 제공하는 대로 받아들이며,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 그것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동시에 이 가속과 끝내 어긋나는 감각들 역시 반복해서 나타나겠지요.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계속해서 "충분하다"는 감각에 도달하고, 조용히 멈추고, 흐름에서 비껴날 것입니다. 판단은 시스템을 멈추지는 못하겠지만, 시스템이 모든 층위를 완벽하게 덮지는 못했다는 사실을 조용히 증명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변화는 방향의 전환이 아니라 '층위의 분화'로 나타납니다. 전체가 왼쪽으로 가다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트는 것이 아니라, 여러 층위가 각자의 속도로 공존하게 되는 것이지요. 계속 흘러가는 가속의 층위와, 그 가속을 더 이상 따라가지 못하는 지점들이 공존하게 되는 것이지요. 빠르게 흐르는 강물과, 강가의 고요한 웅덩이가 함께 존재하는 것처럼요. 이 둘은 서로 충돌하지도 통합되지도 않은 채 각자의 속도로 존재하게 됩니다.


인공지능 생산 과잉 이후의 세계에서 의미는 더 이상 하나의 중심에 모이지 않습니다. 예전처럼 모두가 같은 것을 보고 같은 의미를 느끼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어떤 것은 끝없이 흘러가고, 어떤 것은 조용히 멈춥니다. 어떤 사람은 가속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그 속에서 숨이 막힙니다. 그 둘 사이의 벌어진 간격이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진실한 풍경이랍니다. 이 풍경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그것이 이 글이 하고자 했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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