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원하지 않았지만, 피하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사고 실험
이 글은 예언이 아닙니다. 미래를 점치거나, 반드시 이렇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어떤 사회를 만들자고 제안하지도 않습니다. 유토피아를 그리거나 디스토피아를 경고하는 것도 아닙니다. 기술을 낙관하지도, 비관하지도 않습니다. 인공지능이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거나, 반대로 파멸시킬 것이라는 식의 극단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의 사고 실험입니다. 조용히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이 이끄는 곳까지 따라가 보는 것이지요. 마치 물리학자가 마찰 없는 평면을 가정하고 물체의 운동을 계산하듯이, 저도 특정한 조건을 설정하고 그 조건 아래에서 사회가 어떻게 움직일지 추적해보려 합니다. 현실은 물론 이보다 복잡하겠지만, 단순화된 모델이 때로는 복잡한 현실의 본질을 더 선명하게 보여주기도 하니까요.
질문은 이렇습니다. 만약 인공지능이 인간의 생산을 대부분 대체한다면, 그리고 그 변화에 대해 사회가 충분히 개입하지 않는다면, 그때 인간 사회는 어떤 형태로 접힐까요? 이 질문 안에는 이미 몇 가지 전제가 숨어 있습니다. '대체'라는 단어, '충분히'라는 정도, '개입하지 않는다'는 조건. 이것들을 조금 더 명확하게 풀어보겠습니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세 가지 전제를 세워보았습니다. 어렵거나 복잡한 전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나 당연해서 평소에는 굳이 말하지 않는 것들이지요. 하지만 사고 실험에서는 이런 당연한 것들을 명시적으로 꺼내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첫째, 인간은 대체되길 원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거의 본능에 가깝습니다. 누구도 자신의 자리가 사라지는 것을 반기지 않습니다. 자신이 하던 일을, 자신이 가지고 있던 역할을, 자신의 존재 이유를 누군가에게 빼앗기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것은 이기심이라기보다 생존 본능입니다. 자신의 자리가 있어야 세상 속에 발을 딛고 설 수 있으니까요.
둘째, 인공지능은 인간이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정교해지고, 아무리 인간처럼 대화하고, 아무리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더라도, 그것은 도구입니다. 의식을 가진 존재가 아닙니다. 물론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사고 실험에서는 인공지능이 의식을 갖지 않는다는 전제를 유지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의식을 가진 인공지능이 등장한다면, 그것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사고 실험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사회는 언제나 변화보다 늦습니다. 기술은 빠르게 달리지만, 제도와 문화는 그 뒤를 헐떡이며 쫓아갑니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그것을 규제하거나 활용하는 법과 제도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언제나 시간이 걸립니다. 그 시간 동안 사회는 일종의 무방비 상태에 놓입니다. 자동차가 발명된 뒤 교통법규가 정비되기까지, 인터넷이 보급된 뒤 개인정보보호법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생각해보세요.
이 세 가지 조건을 유지한 채,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 도착하는 세계를 끝까지 따라가 보려 합니다. 여기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개인의 노력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회적 차원의 체계적인 개입이 없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각자의 자리에서 발버둥 치겠지만, 그 발버둥이 모여서 하나의 방향을 만들어내지는 못하는 상태. 각자도생의 상태를 가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경고도 희망도 아닙니다. 그저 하나의 가능한 풍경을 미리 그려보는 작업입니다. 지도 위에 절벽의 위치를 표시해두는 것과 비슷합니다. 절벽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과 절벽으로 걸어가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니까요. 어쩌면 이런 풍경을 미리 보는 것 자체가, 아직 우리에게 선택지가 남아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