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설명하지 않는 AI 설명서-3장

기술 용어 없이 읽는 현재와 미래의 기록

by 박지원

3장. 이해도 못 하면서 왜 문제는 잘 풀까요


"이해하지도 못한다면서 시험 문제는 왜 그렇게 잘 풀까요?" 가장 많이 듣는 질문입니다. 상식적으로 이해 없는 문제 해결은 불가능해 보이니까요. 이 현상을 설명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근사(Approximation)'입니다. 근사는 대충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잡한 현실을 유용한 형태로 압축하는, 과학과 공학의 핵심 개념입니다.


AI가 잘 푸는 문제들을 한번 살펴볼까요? 시험 문제, 보고서, 요약. 공통점은 모두 '사람이 만든 문제'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문제를 만들었다는 것은, 이미 사람이 풀 수 있도록 조건을 명확히 하고 불필요한 변수를 제거하여 압축해 놓았다는 뜻입니다. 즉, 문제 자체가 이미 '사고의 압축본'인 것이지요. AI는 현실 전체를 이해할 필요 없이, 이 압축된 공간에서 그럴듯한 답을 찾으면 됩니다.


AI는 정답을 깊이 이해해서 맞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유형의 문제에는 통계적으로 이런 답이 따라오더라"는 패턴을 학습하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 근사치만으로도 사람이 만든 닫힌 문제의 상당수가 풀린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AI가 대단해서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문제들이 생각보다 근사적으로 풀 수 있는 구조였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나옵니다. 답이 정해져 있고 범위가 제한된 '닫힌 문제'에서 AI는 강합니다. 근사가 잘 통하기 때문이지요. 반면 답이 없고, 상황이 계속 변하며, 결과가 비가역적인 '열린 문제'에서는 근사의 한계가 빠르게 드러납니다.


회사 일이 AI에게 쉬운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미 형식이 정해져 있고, '적당히 그럴듯함'을 요구하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완벽함이 아니라 '충분히 괜찮음'을 요구하는 곳에서 근사는 빛을 발합니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사람이 만든 문제의 상당수는 완벽한 이해 없이도 풀 수 있었습니다. AI가 그것을 증명해 버린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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