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설명하지 않는 AI 설명서-4장

기술 용어 없이 읽는 현재와 미래의 기록

by 박지원

4장. 추론을 한다는데, 그럼 생각하는 걸까요


"추론까지 하는데, 이쯤이면 생각하는 거 아니야?" 이 질문은 AI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경계선 질문입니다. 인간의 추론은 언어 이전에 '세계 시뮬레이션'입니다. 머릿속에서 상황을 그려보고, "만약 이렇게 하면?"을 떠올리고, 결과를 감각적으로 예측합니다. 말은 그 뒤에 붙는 것이지요.


반면 AI의 추론은 출발점부터 다릅니다. AI는 머릿속에 세계를 그리지 않습니다. 상황을 직접 겪어본 적도 없습니다. AI가 다루는 것은 사람들이 문제를 풀 때 남긴 '언어적 흔적'입니다. 사고의 순서, 설명의 패턴을 학습하는 것이지요. 즉, AI는 논리를 배운 것이 아니라 논리가 남긴 궤적을 배운 것입니다.


AI의 추론 결과는 종종 인간과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구조가 거의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 과정까지 똑같잖아?"라고 느끼곤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결과의 유사성이지, 과정의 동일성은 아닙니다.


결정적인 차이는 '기준점'에 있습니다. 인간의 추론에는 기준점이 있습니다. '물리적으로 말이 되는가?', '실패하면 어떤 대가가 있을까?' 이 기준점은 세계와의 상호작용에서 옵니다. 반면 AI의 기준점은 '문맥상 자연스러운가?', '앞뒤가 맞는가?'입니다. 인간은 세계를 기준으로 추론하고, AI는 언어를 기준으로 추론합니다. 그래서 AI의 추론은 가끔 무너집니다. 말은 완벽한데 현실과 어긋나니까요.


체스나 바둑에서 AI가 인간을 압도하는 이유는 그곳이 규칙이 완전하고 닫혀 있는 시뮬레이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실 세계는 체스판이 아닙니다. 규칙은 불완전하고, 정보는 부족합니다. 여기서는 언어 기반 추론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현실의 추론은 '다음 말'이 아니라 '다음 상태'를 맞혀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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