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오고 있나 보다. 창문을 열어 놓아도 더운 걸 보면. 선풍기를 꺼낼 때가 되었다. 땀이 차오를 만큼은 아닌데, 글을 써 내려가는 속도가 더디다. 글을 쓰다가 손으로 부채질하게 된다. 그러다 다음에 써야 할 문장을 놓쳐버린다. 다시 문장을 붙잡으려면 자판 위에 손을 올리고 잠시 생각에 잠겨 머뭇거려야 한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손가락을 한동안 바라본다. 폭염이 와도 글 쓰다 보면 시간이 가고 땀이 차오르는 줄도 몰랐다. 지나온 나날을 돌아보면, 무언가에 홀린 듯 여기까지 왔다. 날 홀린 건, 무너져 내리는 나를 방치하지 않으려는 마음이었다. 365일 중 300일 이상, 하루에 6시간 글쓰기 루틴을 지켰다. 육아, 살림을 병행하며 글을 쓰느라 컴퓨터 앞에서 밥 먹고, 많은 걸 포기하며 살았다. 유일한 쾌락은 자기 전에 짧은 유튜브 영상 보기, 맥주 한두 캔 마시기였다. 글쓰기뿐 아니라 무엇이든 이렇게 3년을 하면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걸 깨달았다. 3년을 했더니 최근 엄지 쪽 뼈가 돌아가 버리고 목 디스크가 시작되었다.
출간작가가 되고 나서 안타까운 몇 분이 나에게로 왔다. 그분들은 나에게 물었다. “빨리 작가가 되신 것 같은데 어떻게 하신 거예요?” 하고. 그분들의 공통점은 세 가지였다. 전업 작가가 되려고 회사를 퇴사했다는 것, 경제력이 없다는 것,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분은 15년이나 다닌 회사를 퇴사했다고 말했다.
직장, 인맥, 스펙, 인지도 그 어떠한 것도 없는 사람이 전업 작가가 되려면 10년은 걸리는 듯하다. 실용서나 자기 계발서가 아닌 책을 쓸 경우, 이렇게나 오래 걸리는 게 현실이다. 글쓰기는 인풋 대비 아웃풋이 적어서이다. 그에 비하면 나는 3년 만에 되었으니 빠르게 이루어 낸 편이다. 구구절절 말해주다가 비슷한 사정을 가진 분들이 어딘가 또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인터넷 신문사에서 글쓰기 수업을 오픈하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그래서 6주간 글쓰기를 지도하며 강의 내용에 맞춰 《나답게 살기 위한 글쓰기》를 집필했다.
쓰는 근력이 탄탄하면 몸에 쌓인 언어를 빠르고 정확하게 밀어낼 수 있다. 첫 책 집필 기간 18일. 두 번째 책 6주. 쓰는 근력을 확인할 방법은 집필 기간 외 알지 못한다.
10년 걸릴 거 3년으로 단축할 수 있었던 건 별다른 비법이 있는 게 아니다. 지독하게 쓰고 퇴고하면 된다. 처음엔 무작정 쓰다가 정답이 없는 글쓰기에 혼란스러워서 나만의 글쓰기 훈련법을 구축해 나갔다. 책에 담긴 ‘글쓰기 3단계 훈련법’이 무조건 정답은 아니다. 누구나에게 다 맞는 방법론도 아니다. 다만, 내가 걸어온 길이 누군가에게 길라잡이가 될 수 있다는 건 확실하다.
사람들은 말한다. “당신이니까 열정적으로 글을 썼지, 저는 못써요.”라고. 욕을 얻어먹는다고 해도 말은 바로 하는 게 옳다. 열정적으로 지독하게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정해져 있지 않다. 나니까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게 아니라, 당신이 그만큼 글쓰기에 진심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만큼 글쓰기가 고프지 않다는 말이다. 그만큼 글쓰기가 간절하지 않다는 뜻이다.
첫 책을 출간한 지 6개월 만에 두 번째 책을 집필한 이유이다. 전업 작가의 꿈을 품고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해 빠르게 출간작가가 되는 방법을 전하고 싶었다. 12년 중 11년을 전교 혹은 반에서 성적이 밑바닥이었던, 심각한 난독증을 극복하고 우울증과 사회 불안증을 앓던 나 같은 사람도 작가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간 만나온 습작생들이 100여 명에 달한다. 상당수가 작가는 특별한 사람이 되는 거라고 여겼다. 그러면서 본인은 특별하지 않다고 말했다. 안된다는 생각은 버리고 된다는 생각만 해도 될까 말까인데. 그런 생각을 가지면 작가가 되기 어렵다.
나는 대체로 긴 호흡의 글을 써왔다. A4용지로 3~5장 정도 되었으니. 그러다 조금씩 2장으로 줄여나갔다. 지금도 여전히 긴 글을 종종 쓰지만. 짧게 쓰는 게 더 어렵다. 그렇게 쓰인 글들이 천 편이 넘는다. 하염없이 이야기가 손끝을 타고 흘러나왔다. 지금 와 그게 왜 그리도 신기한지. 마음이 상한 날엔 어김없이 컴퓨터 앞에 앉았다. 기억에서 삭제하고 싶은 지나온 기억을 반복해 쓰기도 했다. 나조차도 이해하지 못할 외계어 같은 묘사가 담긴 글을 한 장씩 쓴 적도 있다.
지금은 트라우마로 남은 기억을 반복해 쓰지 않는다.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내 마음을 헤아려주는 몇 사람이 생겨서이다. 감사하게도 그 수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과 이해를 받고 싶어 한다. 나 역시도 그러했던 듯하다. 가족 이외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는 타인의 인정과 이해는 힘이 크다는 걸 감각한다.
8개월간 3권의 단행본과 1권의 공저를 출간했다. 원 없이 쓰고 또 썼던 날들이었다. 단행본 출간 전, 언젠가는 내 손으로 책 한 권을 지어보고 싶다고 먼 미래를 그렸다. 꼭 그렇게 하겠다고 계획을 세운 건 아니다.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하고 짐작만 했을 뿐이었다. 계속 글을 쓰고 있으니까. 앞으로도 글을 꾸준히 쓸 거니까. 그런데 운이 좋아서 기획출판으로 첫 책을 손에 쥐었다. 운도 준비된 사람에게 찾아온다는 걸 알았다. 삶은 늘 예기치 않게 흘러간다. 인생은 그런 거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예기치 않은 상황을 마주할 때면 늘 새삼스레 자각한다.
출간 순서 : 에세이 - 인문교양 - 장르 모음
내가 지은 단행본 3권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첫 번째 책인 《외로움을 마주하는 자세》에는 그간 훈련해 온 작법 2가지를 교차로 담아내었다. 그 작법들과 다른 작법을 추가해 두 번째 책인 《나답게 살기 위한 글쓰기》에 자세히 쓰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했다. 두 번째 책 마지막에 습작한 소설 일부를 발췌해 ‘습작 노트’를 만들어 넣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책을 지어주신 출판사 M 실장님께서 아이디어를 내주셨다. 덕분에 두 번째 책과 세 번째 책의 연결고리가 생겼다. 참 감사한 일이다. 습작 노트에 담긴 소설들의 전문이 세 번째 책인 《한 사람의 세계》에 적혀있다.
세 번째 책은 독립출판으로 출간되었다. 드디어 막연하게만 그리던 미래를 스스로 실현했다. 기왕 출간작가가 되었으니, 망설일 것 없이 손수 책을 지어보자는 마음이었다. 기획출간으로 단행본을 낸 작가 중에는 나처럼 독립출판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원하는 데로 마음껏 책을 지을 수 있는 장점이 있어서가 아닐까.
독립출판을 실현해 나가면서 독립출판사를 차렸다. 출판사에 ‘독립’이라는 단어를 붙인 건, 스스로 모든 걸 다 해서이다. 도서 기획, 원고 집필, 편집, 디자인, 인쇄, 유통, 홍보 등을 혼자 한다. 이러한 경험을 하면서 책을 출간해 주신 출판사에 너무나도 감사했다.
책 업그레이드, 표지 리커버 및 내지 사진과 문장 추가
독립출판으로 세 번째 책을 출간하고 활동무대가 넓어졌다. 여력이 될지 모르겠지만, 기획출판과 독립출판 양쪽을 오가며 책을 집필하고 싶은 소망이 있다. 생각만으로도 무척이나 멋지다. 두 분야는 각각의 매력을 갖고 있다. 기획출판으로 책이 출간될 때 출판사 관계자분들과 작업하면서 원고가 업그레이드된다. 얼마나 멋진 원고가 되고 어떠한 걸 배우게 될까, 하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독립출판으로 결과물을 얻게 되면 자기 효능감 상승이라는 선물을 받게 된다. 혼자의 힘으로 책을 출간했다는 자체가 큰 기쁨으로 다가온다. 아마, 독립출판물을 출간할 때마다 성취감을 맛볼 수 있을 듯하다.
출간작가가 되고 싶다면 출판사의 문을 두드리거나 독립출판을 계획하면 된다. 준비할 건 습작과 마음가짐이다. 아무리 독립출판이어도 자신이 쓴 글에 자신감 없이는 곤란하다. 당당히 내보일 수 있는 자신감이 있어야 추진력도 발휘된다. 독립출판은 책 권수에 해당하는 인쇄비도 준비해야 한다.
출판사에 투고한 메일, 사진을 넣으면 신뢰도가 조금은 높아지는 듯하다
어떤 문이든 두드려야 열린다. 문을 열어야 다른 세계로 진입할 수 있다. 내 글을 받아주는 출판사가 있을까? 스스로 책을 출판할 수 있을까? 이런 마인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안되면 마는 거지 별거 없다. 얼굴에 철판 깔고 출판사에 원고를 돌렸다. 독립출판은 정말이지 아무것도 모르고 다짜고짜 발을 내디뎠다. 이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성장하고 있음을 알아가는 중이다.
독립출판의 세계를 경험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무척 흥미롭다.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있다. 그 속에서 저마다의 시시콜콜함을 알게 된다. 모르던 사람들이 만나서 이야기를 피운다. 오래 간직하고 싶은, 작지만 우리의 예쁘고도 향기로운 꽃이 여기에 있다.